그는 비에 젖은 길을 천천히 거닐며 자신의 삶의 실타래를 거꾸로 추적해서 확실하게 풀어 보려고 했다. 그 단순한 직물을 그는 결코 명료하고 만족스럽게 바라본 적이 없었다. 이 삶의 길을 맹목적으로 걸어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지만 분노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마음에 드니?" 쉬는 동안 알베르트가 물었다. 그러자 피에르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곧 조용히 밖으로 나가 버렸다. 형의 질문 속엣 피에르는 모종의 어투를 느꼈다. 소년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쓰는 말투였다. 거짓된 진실과 거만함이 풍기는 말투여서 피에르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큰형이 온 것은 기쁜 일이었다. 피에르는 큰형을 손꼽아 기다렸고, 저 아래 역에서도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런 말투로 자기를 대할 줄은 전혀 몰랐다.
"아주 간단하지. 개나 고양이, 그 밖의 영리한 동물들은 모두 꼬리를 갖고 있어. 생각하고,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동요하는 마음에 따라, 또 생활감정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수시로 꼬리를 흔들어 표현하는 거야. 놀랍고 완벽한 아라베스크식 언어를 가지고 있는 거지. 그런데 우리는 그런 언어를 갖고 있지 않아. 그렇지만 우리 가운데 제법 활기찬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해. 그래서 그들은 붓이니 피아노니 바이올린 따위를 만들어 내는 거야..."
천장이 높은 작업실의 고요하고 희미한 햇빛 속에 그의 그림이 세워져 있었다. 조그마한 들꽃이 몇 송이 피어 있는 풀밭 위에 세 인물이 앉아 있었다. 남자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절망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 여자는 사라진 기쁨에 실망하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표정이다. 아이는 명랑하고 천진난만하게 꽃 속에서 놀고 있다. 이들 세 사람 위로 강렬한 햇빛이 넘실거린다. 햇빛은 의기양양하게 온 공간에 가득 넘쳐흐른다. 만발한 꽃잎 속에서도, 소년의 머리카락 속에서도, 그리고 우울한 여인의 목에 걸린 조그만 금장식에서도 마찬가지로 담담하고 정겹게 빛나고 있다.
여기에 그의 아들이 누워 있었다. 1시간 전만 해도 그 미소가 태양처럼 빛났고, 칭얼거리던 귀여운 목소리가 여전히 그의 가슴 깊은 곳까지 흔들어 놓던 그 아이가 말이다. 그 아이가 여기 누워 있었다. 그 아이는 이제 기계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육체에 지나지 않았고, 고통과 비탄의 절망적인 꾸러미에 불과했다.
그는 바로 일어나, 로스할데에서 하려고 했던 마지막 일에 착수했다. 우선 피에르의 침실로 들어가 커튼을 열어젖히고 서늘한 가을 햇살이 귀여운 아이의 작고 하얀 얼굴과 굳어 버린 두 손 위를 비추도록 했다. 그런 다음 침대 곁에 앉아 스케치북을 펼쳐 들고,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을 그렸다. 그가 그렇게도 자주 관찰해 왔고, 갓난아이 때부터 성장하는 내내 익히 잘 알아 왔고 사랑했던 얼굴, 이제는 죽어서 성숙하고 단순해진 얼굴,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괴로움이 넘쳐흐르는 얼굴, 그 얼굴을 그렸던 것이다.
페라구트는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아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마지막으로 피에르가 만들어 놓은 모래성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집어넣었다. 축축한 모래의 습기 때문에 양손이 시려 왔다. 그는 모래 속에서 나무로 된 물건을 더듬어 잡고서 들어 올렸다. 그 물건이 피에르의 조그마한 모래삽임을 알아보자, 그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 무서웠던 사흘이 지난 후 처음으로 목을 놓아 통곡할 수 있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