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로렌초는 그 무엇도 자신의 흔적을 지울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병마도, 화형대도, 예술과 문화를 탄압하려는 엄격한 수도사도. ‘시대는 되돌아온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르네상스, 라고 장차 사람들은 말하리라. 르네상스는 견줄 데 없이 찬란했다. 피렌체와 피렌체의 건축물, 정원, 팔라초 들은 그 빛 속에서 꽃피었다. 머지않아 르네상스가 전 유럽을 빛내고 그의 이름을 구석구석까지 떨치리라.
--- p.12
“할아버지, 왕들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으세요?”
코시모가 미소를 지었다.
“로렌초, 왕들은 세상에서 제일 큰 채무자란다. 그들은 늘 외상으로 살아가지.”
--- p.27
“난 너를 잘 안다, 로렌초. 넌 혈기 넘치고 단호하고 열정적인 청년이야. 예술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에 민감하지. 내가 그랬듯이 너도 학자들을 보호하고, 화가들과 조각가들에게 일을 맡기고, 이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고, 귀한 서적과 미술품을 수집해야 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사업이란 걸 잊지 말거라. 네 야망을 실현하고 욕망을 충족시키려면 사실 누구보다 부자가 아니면 안 되거든. 저녁에는 외국에 파견된 대리인의 공문과 추방된 메디치가의 적들을 감시하는 밀정들의 보고서를 읽어야 한다. 피렌체 구석구석 심어둔 밀정들도 수시로 접견해 갖가지 음모의 싹을 미리 잘라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 p.65~66
로렌초는 조금씩 왕관 없는 제후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메디치가의 팔라초가 예술가, 문인, 상인, 장인을 아우르는 모든 방문객에게 열려 있기를 원했다. 그곳은 선대부터 수집한 예술품으로 넘쳤지만 과시나 허영은 없었다. 호화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좋은 취미가 엿보이는 메디치가의 팔라초는 원칙적으로 소박함과 단순함을 추구했다.
로렌초 데 메디치는 검붉은 긴 옷만 검소하게 걸치고 소탈하게 사람들을 맞았다. 상대가 귀한 신분이건 아니건 피렌체의 손님 앞에서는 자신도 그들과 똑같다는 것, 아무 특권도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상대가 외국의 제후일 때면 ‘일 마니피코’는 대등하게 그 앞에 나섰다. 피렌체의 진정한 주인이 로렌초란 것이 명백한 이상 그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인정되었다.
--- p.184~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