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는 헤겔이 사망하고 2년 후인 1833년 11월 19일에 독일 비스바덴(Wiesbaden)의 비브리히(Biebrich)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비스바덴에서 김나지움을 다녔고, <희랍의 고대 문화가 젊은이들에게 미친 영향 연구>라는 졸업논문을 작성했다. 이후 부모의 권유로 1852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고, 세 학기를 다닌 후 1853년 베를린대학교로 옮겨 역사학을 공부했다. 당시 독일 대학의 주류였던 칸트는 물론 레싱, 게르비누스의 철학과 역사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사목 활동을 하는 부모의 소망에 부응하기 위해 신학 국가시험에 응시해 수석으로 합격한 후 잠시 설교 활동을 했다. 이후 자신의 학문적 관심을 지속하고 생활의 안정을 찾기 위해 국가 시행 교사 자격시험을 치러 베를린 소재 김나지움에서 2년 정도 교편을 잡기도 했지만 건강 문제로 포기하고, 약 6년간 역사 및 철학 연구에 매진했다.
1859년 슐라이어마허 재단의 현상 논문에 선정되면서 교사직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해석학과 철학 연구에 몰두했다. 1864년에 <슐라이어마허의 윤리학에 관한 연구>로 베를린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같은 대학에서 1865년 <도덕의식의 분석 시도>라는 연구로 교수 자격 논문이 통과되어 사강사가 되었다. 1866년에 스위스 바젤에서 처음으로 정식 교수직을 얻어 활동하기 시작한 후 독일의 킬, 브레슬라우 등으로 자리를 옮겨 교수 생활을 했다. 1882년에는 한때 헤겔이 재직했던 베를린대학 교수직을 루돌프 로체의 후임으로 물려받아 1905년 퇴임할 때까지 가르쳤다. 1883년 ≪정신과학 입문≫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대학 교수로서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브레슬라우 시절부터 교제해 오던 요크 백작과 철학적으로 깊이 교제했다.
베를린대학에 정착한 후 딜타이는 전형적인 학자로서 강의와 저술 작업에 매진했다. 1887년 베를린 학술원 회원으로 임명된 후 칸트 전집의 출간에 기여했다. 이후 대표 저술인 ≪체험과 시≫(1906), ≪철학의 본질≫(1907),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설≫(1910) 등을 발표했다. 특히 ≪체험과 시≫는 딜타이의 필명을 철학 외의 영역으로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1911년 10월 1일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 걸쳐 있는 남(南) 티롤 지방 슐레른 강변의 자이스(Seis)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최성환은 독일 본(Bonn)대학에서 철학을 주전공으로, 교육학과 비교종교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고, <딜타이의 체계사상>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7년부터 중앙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철학 오디세이 2000≫, ≪오늘날 우리는 왜 니체를 읽는가≫ 등의 공저와, ≪니체 유고≫,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 ≪철학적 해석학 입문≫, ≪행복의 철학사≫, ≪현상학의 지평≫과 같은 역서와, <딜타이 철학에서의 심리학적 연구의 의의>(2002), <음악작품과 해석>(2004), <방법과 진리>(2005), <해석학과 수사학>(2006), <W. 딜타이와 G. 짐멜의 삶의 개념과 이해 개념>(2009), <해석학에 있어서 자연의 문제>(2010), <해석학과 마음의 문제>(2013), <다문화 인문학과 해석학>(2015) 등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