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떠 있는 별은 먼지에서 태어나고 다시 먼지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우주의 먼지에서 왔다가 다시 우주의 먼지로 되돌아간다고 합니다. 과연 인간은 육체가 땅에 파묻히거나 화장당한 후 영혼도 같이 죽게 되어 영원히 한 줌의 흙으로 되돌아가나요? 선사 이래로 인간들은 신화나 문학 작품 그리고 여러 종교에서 영혼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연 인류가 이 지구상에 살게 된 이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이야기할 천당과 지옥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요? 어떤 사람들은 사실로서 받아들이기도 하고 일부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거짓으로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인가요?라고 저는 반문하고 싶습니다. 눈이 가장 나쁜 증인입니다. 당신이 보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이 전체 우주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원본인가요? 아니면 복사본인가요? 우리은하를 포함한 전체 은하만도 1,000억 개의 은하에 700해라는 어마어마한 별이 있고 전체 은하의 지평선을 넘어서면 또 다른 수많은 은하들이 있는 다중우주가 있어 나와 똑같은 분신(도플갱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이 지구조차도 나와 똑같은 도플갱어들이 있습니다. --- p.10
여성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방청석의 아더라는 이름의 남자가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남자들이 한 여자와 영원한 사랑을 위해 남자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곳저곳에서 ‘돈’, ‘미남’, ‘키가 큰 남자’라는 것이 미선이 귀에 들렸다. 아더는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필요하겠지만 좋아하는 여자와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는 여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해 주는 것입니다.”라고 말을 하고 나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제가 지상에서 살 때 옆 나라의 포로가 되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그 나라의 왕이 여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답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지요. 저도 여자라면 많이 사귀어 보았지만, 그 물음에 대해 도저히 알 수가 없어 그 왕에게 제 나라로 되돌아가 모든 백성들에게 물어보겠다고 요청했지요. 그 왕은 저의 요구를 들어주어 그 나라에서 석방되어 저의 나라에 왔죠. 여성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스스로 주도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에 관해 남성들이 이것해라 저것해라 간섭받지 않고 자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늙은 마녀 때문이었죠. 하루 중 절반은 미녀이고 나머지 절반은 추녀로 살았던 마녀가 있었어요. 그녀는 결혼 할 예비 남편인 저의 기사(knight)에게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지 물어보자 남편 될 사람이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자율권을 준 말에 감동 받지요. 그 여자는 스스로 평생 동안 미녀로 살기로 마음먹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한 후 남편과 평생 동안 사랑하면서 살았습니다.” --- p.271
지구촌뿐만 아니라 천국에도 왜 전쟁이 있는가? 가 아니라 왜 전쟁은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죠. 먼저 결론적인 것을 말하면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주는 신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로 구분됩니다. 다시 인간의 나라로는 지구촌과 같은 나라와 천국의 나라에 사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지구촌이 물질만을 추구하여 먼 훗날 종국에는 신의 나라가 지상의 나라인 지구촌을 멸망시킴으로써 영원한 평화의 세계가 올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붉은 여왕이 소녀 앨리스에게 “보렴, 이곳에서는 계속해서 힘껏 달려야만 제자리에라도 있을 수 있단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인간과 인간, 나라와 나라, 기생충과 인간, 또는 질병과 인류의 대결처럼 서로 간에 공격과 방어가 한없이 반복되면서 우위에 있고자 하는 것이 진화하기에 끊임없는 전쟁이 일어나겠죠. 또한, 만일 전쟁이 없었다면 인터넷도 출현하지 않았죠. 즉, 전쟁을 통해 지구촌의 문명은 군사 무기를 포함해 생활에서 항상 쓰는 휴대전화를 포함해 모든 물건이 최첨단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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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강풍에도 대나무는 흔들리기는 하지만 대나무 속은 비어 있어 쉽게 부러지지 않습니다. 만일 대나무의 속이 비어있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키가 커서 속이 비어있지 않으면 작은 바람에도 쉽게 부러지겠죠. 요즘 지구의 건물은 현대판 바벨탑처럼 높은 건물 위로 건축 하는데 나라마다 경쟁이 심한 것으로 압니다. 고층 건물을 세우는 건축용 파이프는 속이 비어있죠. 그래서 외부 충격에 훨씬 강합니다. 대나무는 생존력이 강해요. 히로시마 원폭에도, 월남전 고엽제에도 살아 삼은 유일한 식물이니까요. 대나무의 자식 사랑은 인간보다 더 강합니다. 후손들을 위해 모든 양분을 땅속에 비축한 다음 자신은 말라죽고 자식인 죽순 하나를 땅 위로 쑥 밀어 올리죠.”라고 답했다.--- p.421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중 어느 사람이 더 위험한지요? 물론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비관적인 사람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이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이 최고의 사람입니다. 올라가는 용은 곧바로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 p.509
?신숙주 선생님도 그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며 “‘맞다와 틀리다’와 같은 참과 거짓의 이분법적인 흑백 논리로만 세상을 바라보려는 한국인들이 일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흑백 논리가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깊게 관습화 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물은 흘러야지 고여 있으면 안 됩니다. 동남아시아 수상 가옥의 기둥이 썩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야자수 나무가 물에 잘 썩지 않는 요인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물이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터보트의 물살에 물이 고이지 않고 흐르게 되어 황토 땅의 자정 작용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한국인들도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아야 되겠죠. 흐르는 물처럼 사고의 유연성을 가져야겠어요. 클래식 음악의 경우 바로크음악, 고전음악 그리고 낭만주의 음악의 흐름 순서로 발전 해왔어요. 바로크 음악은 음악가 비발디처럼 인간과 자연현상의 변화 등에 관한 감정을 음악으로 나타내고자 했지요. 하지만 그 다음에 등장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고전주의는 바로크 음악과는 다르게 아름다움과 완벽한 화음을 추구했어요. 쇼팽 등은 고전주의에 반기를 들고 다음에 등장한 인간의 감정을 중시하는 한 낭만주의입니다.”라고 정반합에 의한 논리로 한국의 발전 모습을 주장했다. --- p.513
?서영수각님은 미선에게 “로또 1등 당첨과 번개에 맞을 가능성중에 어느 경우가 높겠니?”라고 묻자 미선은 “로또 1등이 될 가능성이 더 많이 있지 않나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서영수각님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1/8,000,000로 번개 맞은 가능성인 1/1,000,000보다 가능성이 훨씬 적어. 즉, 로또 1등에 당첨될 가능성이 8배나 적지. 그래서 인생을 살 때 너무 요행만 바라지 말고 현실에 만족하며 살기 바래. 인생은 어려운 것이란다. 목표하는 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금방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어. 그래서 기다리고 참을 줄 알아야 해. 그리고 시계추처럼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지. 원하는 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 또는 소망이 달성되더라도 곧바로 건방을 떨다가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날려 보낸 후에 깊은 허탈감에 빠져 또 다시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불행하게 된단다.”라고 말했다. --- p.586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타인의 눈만을 의식하여 ‘나 수준 있지? 그게 나야’라는 과시 행동 때문입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찾는 것은 자신들이 반드시 필요해서 구매하고 소유하는 물건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명품 혹은 과시용 물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타인에게 자신이 물질적으로 별로 가진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풍요가 있는 것처럼 허세를 하게 되죠. 또한, 머리가 텅텅 비어있지만 마치 자신이 늘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처럼 지식의 과시를 하려고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죠. 그래서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만 신경을 써 자신의 주체성을 잃고 불행이란 늪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자신에 만족해서 살지 못하고 타인만을 의식하는 욕망에 둘러싸여 살아가기 때문에 항상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이와 더불어 불행의 가장 큰 요인은 자신이 생각했던 목표를 달성 한 후 성공한 자리가 천년만년 변치 않을 거란 오만과 환상에 기인합니다.
그러면 울타리에 감두어진 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타인의 눈에 묶여 사는 삶이 아니라 나를 넘어 나를 만나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타인을 의식하여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자신이 진실 된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진면목이 세상에 널리 알려집니다. 그래야 삶의 의미는 충만해집니다. 행복한 사람은 천재 수학자 ‘페르만’처럼 타인의 관심 중심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부담스러워 합니다. 리더의 지위에 있거나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자리에 연연하지도 않아요. 당신만의 집중된 고독을 즐기세요.
그리고 완벽한 행복을 꿈꾸지 마세요. 항상 더운 곳에서는 온열기의 고마운 존재를 알지 못하고 늘 추운 곳에서 냉장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북극에 사는 사람이 냉장고에서 냉수 물을 먹는 경우와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쬐는 사하라 사막을 걸으면서 심한 갈증을 겪은 후 오아시스에서 마시는 물 한잔을 마실 때의 행복과 같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천상의 세계보다는 매일 매일 수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의 세계를 이겨내고 얻는 행복이 더 값진 행복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더 없는 행복한 천국입니다. 플라톤과 헉슬리와 토마스 모어가 그리는 유토피아와 같은 호모토피아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란 ‘헤테로토피아’가 최고의 천국이죠.
나 자신을 넘어 나를 만나기 위해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은 희망은 외부에서 찾아오지 않고 내 자신 안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희망은 바다의 밀물과 썰물처럼 가까이 온 것 같지만 한 순간에 멀어지고,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본인이 자각하지도 않았는데 가까이 다가옵니다. 죽고 싶을 만큼의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자기 자신을 믿어 주면 희망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인간은 출생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여정의 길을 가는 것이기에 노력하지 않고 살아도 죽는 것은 똑 같습니다. 고생하는 것이 무서워하지 않거나 중간에 그만두는 것 보다 열심히 해 보는 것이 더 멋진 인생입니다.
--- p.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