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혐오감을 주기도 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성. 분노, 짓궂은 말, 창장력, 변덕스러움, 극단적 성경, 친절함, 유머, 관대함 등이 샤넬이라는 독특한 인물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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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을 아름답게 꾸며놓고도 가브리엘은 아주 가끔씩만그 곳에서 묵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녀가 나는 늘 그 집에서 도망치곤 했다. 그 집은 중앙난방을 가설하고 벽난로를 없앴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을 믿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프랑스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야 했던 것과 비슷한 억제할 수 없는 방랑벽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유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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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은 미첼 레이센이나 길버트 에이드리언 같은 영화 의상 담당자나 무대 장치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녀가 러시아 발레단의 무용수들과 콕토의 연극 배우들에게 의상을 만들어 준 적은 있어도 스크린 경험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녀는 미국에 온 목적을 잊지 말아야 했다. 가브리엘은 글로리아 스완슨 - 1951년 <황혼의 거리>에 출연해서 훌륭한 연기자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 의 옷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샤넬은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된 희극을 시나리오로 각색한 영화 <오늘 저녁, 아니 영원히>에서 스와슨이 입을 의상제작에 들어갔다.
<추억>이란 영화를 찍을 때 스완슨은 가봉을 하러 두 번이나 파리에 갔는데, 임신 중이라 그 사이에 자신의 몸이 약간 불어나 있었다면서 이렇게 술회했다. "샤넬은 언제나 그렇듯이 가봉을 하는 동안에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성미가 급한 샤넬은 바닥까지 끌리는 까만 새틴 드레스를 입느라고 진땀을 빼는 나를 보며 노기 띤 시선을 던졌다. 그 멋진 드레스는 6주 전에 잰 치수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샤넬이 임신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고려하면, 그때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지 가히 짐작이 된다.
'할리우드의 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골드윈의 진취적 계획이 무리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영화에는 영화의 법칙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연극보다 의상을 훨씬 더 강조해야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런데 단순한 디자인의 샤넬 의상을 입은 여성은 우아하기는 해도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여배우들과 구별되기를 바라는 인기 여배우는 미국에서 '글래머'라고 하는 것, 다시 말해서 다른 여배우들을 단번에 압도하는 매혹적인 성적 매력으로 자신을 드러내야만 했다.
인기 여배우 중에 눈에 띄지 않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샤넬의 의상은 여배우가 가진 이미지의 가치를 높이기에 알맞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 pp.342~344
1919년 12월 22일 새벽 4시. 뢰유의 '라 밀라네즈'별장. 자갈길을 달려오다 갑자기 정지한 자동차에서 내린 키 큰 남자가 현관 층계를 올라가더니 신경질적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미시아의 시종이었다가 2년 전부터 가브리엘의 시중을 들고 있는 조제프는 불안했다. 이 시간에 찾아올 만한 사람이 누구일까? 그는 1층 창문으로 내다 보았지만 방문자의 신원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 남자는 레옹 드 라보르드라고 이름을 밝히면서 카펠 대위에게 일어난 사고를 알리러 왔다고 말했다. 조제프는 문을 열어주고 손님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어서 마드무아젤을 깨워주게!" 라보르드가 말했다.
"아침까지 기다리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소식을 듣고 가브리엘이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늦게 알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조제프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중략)
무슨일이 일어났다는 것인가? 보이 카펠은 운전사 맨스필드가 모는 차를 타고 성탄절을 함께 보내려고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칸으로 출발했었다. 칸까지 자동차로 가려면 쉬지 않고 달린다고 해도 18시간에서 20시간 가량 걸리는 때였다. 프레쥐와 생라파엘의 중간쯤 되는 곳에서 타이어가 펑크나면서 차가 도로를 벗어났던 것 같다. 운전사는 경상이었지만, 카펠은 두개골절로 즉사했다.
(중략)
몹시 지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가브리엘은 잠을 자려고 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락 의자에 꼬박 앉아 있다가 새벽이 되자 사고가 일어난 곳으로 데려가달라고 부탁했다. 그곳으로 데려간 운전사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아직도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엉망으로 찌부러지고 반쯤 타버린 자동차 주위를 한바퀴 돈 다음 차체를 더듬더듬 만져보더니 마침내 보도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떨구고 몇 시간 동안 통곡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렇게 해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를 잃었다.
-- pp.206~209
1895년 3월. 브리브에서 튈로 가는 구불구불한 오르막길. 오늘날보다는 훨씬 좁은 길이다. 가까운 언덕에는 겨울 햇살이 미처 녹이지 못한 눈이 군데군데 보인다. 회색 방수포를 씌운 낡은 마차 한 대가 흔들거리며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는데, 검은 머리에 콧수염이 있고, 구깃구깃한 셔츠를 입은 40대 남자가 걸음이 느려터진 말을 몰고 있다. 마차에는 너덜너덜한 스카프로 머리를 싸맨 계집애 세 명이 침울한 얼굴로 바짝 붙어앉아 있다.
한 시간 후, 옛 수도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마을 오바진의 고아원 앞에 마차가 서 있고, 마치 안에는 아무도 없다. 광장에 늘어선 플라타너스들 중 하나에 고삐가 묶인 말은 주인을 기다리며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얼마 후, 수도원의 육중한 문이 열리고 마차 주인이 혼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온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 같다.
마차를 몰던 그 남자는 알베르 샤넬이고, 직업은 장돌뱅이이다. 그가 방금 고아원에 내버린 계집애 세 명은 그의 친딸들이다. 며칠 전에 아내를 잃었기 때문에 그는 그 무거운 짐을 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딸들은 다시는 아버지를 보지 못한다…….
딸들의 이름은 열세 살의 쥘리아, 열두 살의 가브리엘과 여덟 살의 앙투아네트이다. 가브리엘, 20년 후에 전 세계인은 바로 이 소녀를 코코 샤넬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 pp.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