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씨는 ‘인간은 이층 건물 집’이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 요지는 대략 이런 것이지요
‘일층은 모두가 모여서 밥을 먹거나 대화를 나누는 공동 공간이다. 이층은 개인 공간으로 나뉘어 각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한다. 지하가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쟁여두거나 이따금 들어가 넋 놓고 있다가 나오기도 한다. 일반 소설이라면 이런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실은 지하 일층 아래에는 또 다른 지하가 있다. 그곳에는 특수한 문이 있어서 평소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어쩌다 들어가면,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어둠뿐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평소 집 안에서는 하지 못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건 자신의 혼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면 나오는 길을 몰라 복귀할 수 없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소설가는 의식적으로 그 지하 이층의 방을 들락날락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밀의 문을 열고 캄캄한 어둠으로 들어가서 그곳을 체험하고, 다시 문을 닫고 현실로 복귀한다. 그것이 직업적인 작가이고, 진짜 작가다.’ --- p.52~53
《1Q84》는 넓은 의미에서, ‘소설이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바탕에 깔린 작품입니다. 후카에리가 소설을 만들어냄으로써,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리더 계층과 싸워나가는 구도가 형성되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진짜 이야기란 일원적인 사고를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는 확신이 맨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지요. 이것은 또 하나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68
일반적인 소설의 주인공이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가를 중얼거릴 때는 현실의 세계, 우리의 시간, 우리의 공간 속에 살면서, 왜 이런 국면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묻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오마메는 그런 것과 다릅니다. ‘나는 왜 이 이야기 속에 있는가. 그것은 자신의 의지로 있는 것이다’라는 겁니다. 그 때문에 인생론도 세계론도 아닌 이야기론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달이 두 개인 이야기 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아오마메가 말할 때부터 세계가 바뀝니다. 이 이야기 세계가 바뀌는 모습은 전대미문이라고 할 정도로 소설 속의 소설론으로서 가장 멋진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 p.182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음의 어둠이라든가 영혼 속을 드나들면서 거기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많이 쓰지만, 그와 동시에 역사나 사회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평범한 현대인의 삶 속에 그런 것을 투영해내고 있지요. --- p.286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자신의 혼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인데, 거기서는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 마구 뒤섞여서 다가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각기 말이 다르고, 생활환경이 다르고, 사상도 다르지만, 혼까지 내려가면 거기는 같은 세계입니다. 언어도 없고, 선악의 기준도 없으며, 생사도 불분명하고, 캄캄한 어둠뿐이지요. 그런 곳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은 다양한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 세계의 인간이 함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계 곳곳의 문화가 그렇게 다른데도, 신화에서는 비슷하게 통하는 부분이 아주 많으니까요.’
--- p.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