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집 뒤뜰에서 슛을 날리던 게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인 척한다.
아빠는 아직 꼬마인 나에게 작은 농구공을 주고 골대도 낮춰 준다. 아빠는 연속으로 100골을 넣을 때까지 공을 던지라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 아빠는 할아버지를 돌보러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그 즈음, 할아버지는 두 다리를 잃은 채 돌아가신 할머니의 묵주를 손에 꼭 쥐고 병원에서 퇴원했다. 우리 집은 침묵에 잠긴 지 오래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아빠가 시킨 대로 공을 던진다.
처음엔 공이 키를 낮춘 골대에도 닿지 않는다. 난 몇 시간이고 계속 공을 던진다. 위를 올려다보느라 목이 뻣뻣해지고 땀투성이가 된다. 해가 지자 아빠는 조명등을 켠다. 난 계속 공을 던진다. 집에 들어가서 할아버지가 울고불고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기억 속의 나는 밤새 공을 던진다. 몇 날, 몇 주, 몇 달이 지나도록 계속 공을 던진다.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화장실에 가지도 않는다. 마치 다시는 집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처럼 그저 던지고 밖으로 빼고, 또 던지고 뺀다. 그러면 마치 농구를 하기 전에 있었던 일은 두 번 다시 떠올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말이다.
반복하면 몰두하게 된다. 잡생각이 사라진다. 난 이 중요한 사실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 pp.6∼7
“넌 말이 별로 없구나? 그럴 만한 일이라도 있었어?”
그럴 만한 일로 말하자면 좋은 일, 나쁜 일 참 많이도 있었다. 그런데 그걸 다 설명하려면 많은 말이 필요하다. 나에겐 벅찰 정도로 많은 말이.
마음 한편으론 말로 설명하고 싶기도 하다. 나의 과거에 대해, 내가 왜 말을 많이 하지 않는지에 대해, 우주에 대해서든 뭐에 대해서든 전부. 하지만 내 마음은 늘 주먹처럼 꽉 쥐어져 있다. 그 말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보이21이 내 얼굴을 마주 보며 말한다.
“내가 우주에서 왔다는 말을 믿어? 내가 우주로 올라가면 그땐 믿게 될 거야. 하지만 일단 난 여기 지구에서의 임무를 완수하는 데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해. 넌 감정이 풍부한 사람 같은데, 난 지금 감정을 연구하는 데 아주 관심이 많아. 넌 믿을 만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대체로 믿을 만하니까. 하지만 동시에 빙긋 웃는다. 나는 전혀 감정이 풍부하지 않다. 어쨌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 pp.53~54
누군가와 어두운 방에 단둘이 있는 건 에린 말고는 처음이다. 에린하고 있을 땐 뽀뽀하고 싶어서 둘 사이의 그 고요한 침묵을 즐길 수가 없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앉아 있으니 기분이 좋다. 정말 희한한 소리 같지만, 보이21과 같이 있는 게 즐겁다. 내 또래 중엔 이렇게 일부러 침묵을 함께할 인간이 별로 없다. 학교 아이들은 쉬지 않고 떠들고 계속 움직인다. 스티커가 비현실적인 초록색으로 빛난다. 솔직히 말해 그 빛을 바라보는 게 재미있다.
(……)
보이21이 불쌍하다. 부모는 살해당하고, 자기는 우주에서 왔다고 믿다니. 그런데 별자리를 그처럼 잘 아는 건 흥미롭다. 무지하게 똑똑한 녀석인 것 같다. 어쩌면 나를 속일 정도로 영리하게 연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감독님의 해석대로 보이21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약 보이21이 농구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제정신을 차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
녀석 실력이 감독님이 생각하는 정도의 반만 돼도 난 선발 자리를 잃게 된다. 그런데 감독님은 나에게 보이21을 도와 달라고 한다. 녀석을 도와주면, 난 이번 시즌을 벤치에서 엉덩이나 덥히다가 끝낼 확률이 높다. 반대로 녀석이 벨몬트에 적응하는 걸 도와주지 않으면, 난 처음으로 감독님 말을 거역하는 게 된다.
보이21은 부모님이 살해당했어. 죽임을 당했단 말이야. 네가 이렇게 이기적으로 굴 때가 아니라고. 그렇게 되뇌어 보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이번이 마지막 학년, 마지막 시즌이야. 그동안 에린하고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는데…….
녀석은 정말로 자기가 우주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걸까?
녀석이 내 등번호를 가져가게 될까?
--- pp.6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