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온통 워킹맘 이야기가 흘러넘치고 워킹맘이 손만 내밀면 도움 받을 곳이 널려 있는 듯하지만, 막상 아이 문제로 힘들 때는 선뜻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이 없다. 일과 가정,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기에 워킹맘에게 이 문제는‘생존’과도 같은 것이다. 이 책에는 그간 물에 빠져 허우적대기를 수없이 반복한 끝에 무사히 균형을 잡게 된‘노잡이’엄마의 경험이 담겨 있다. --- 「프롤로그: 삶의 우선순위는‘엄마’에 두기로 마음먹었다」중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선택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때만큼 고민의 시간이 짧았던 때는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지금까지 목숨 바쳐 일했던 직장이 한순간에 하찮게 느껴졌다. 내 죽음 앞에서 울어줄 사람은 누구일까, 내 이름 석 자를 그리워할 사람은 누구일까. 그런 본질적인 질문 앞에서 답은 명확했다.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박란희’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요, 존경받는 엄마 박란희’였다. --- 「워킹맘, 시애틀에서 처음 전업주부가 되다」중에서
내 삶의 우선순위는 가족과 아이들로 바뀌었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어찌 됐든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춰나가야 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돌봐주는 친인척 없이 혼자 하느라 죽도록 고생은 했지만 양육의 주도권을 엄마인 내가 놓치지 않은 것은 아이와 엄마 모두에게 좋았다. 내 아이를 잘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워킹맘과 전업주부 사이, 반인반수」중에서
워킹맘은 아이와 정서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길어야 2~3시간 안에 저녁을 먹고 숙제도 봐주고 밀린 집안일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아이의 마음을 돌봐줄 여유가 없고, 아이와 감정적으로 부딪힌 후 이를 풀기도 쉽지 않다. 엄마는 엄마대로 회사일이 급하니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 그 감정을 묻어놓는 게 편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속상하거나 억울한 감정을 공감 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 「경쟁에 지친 아이와 소통하는 법」중에서
엄마의 퇴근시간이 들쑥날쑥이라면, 아예 남의 손에 맡기는 게 낫다. 소규모학원이나 공부방의 경우 선생님이 엄마처럼 아이를 챙겨줄 수 있기 때문에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대형학원보다 훨씬 낫다. 시험기간에도 따로 관리해주니 도움이 된다. 대형학원의 경우 아이에 대한 개별 케어가 제대로 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흔히 고학년이 되면 저절로 공부습관이 잡힐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습관’이란 게 뭔가. 여러 번 되풀이함으로써 저절로 굳어진 행동이다. 공부습관은 나이와 상관없다. 공부습관이 있느냐, 없느냐 둘 중 하나다. --- 「결과보다는 과정, 결국 공부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는 것」중에서
워킹맘에 대한 직장 내 편견은 이렇듯 이중적이다. 일을 많이 하면 독종이라고 욕하고, 일을 적게 하면 아줌마라고 욕한다. 내가 만나본 많은 워킹맘들은 둘 중 하나였다. 조직 내 권력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시하는 유형 아니면 가정을 포기한 채 아저씨 직원 못지않은 워커홀릭 정신으로 일에서의 성취를 이뤄내는 유형이었다. 중간은 없었다. ‘과연 제3의 길은 없을까. 여자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조직에서도 입지가 있어야지, 저렇게 자기만 생각하는 아줌마 직원으로 사는 건 옳은 걸까? 가정을 포기한 채 회사에서 승승장구해봤자 그만두고 나면 끝인데, 한 번뿐인 인생을 저렇게 사는 건 행복할까?’ --- 「이중적인 직장 내 편견, 독종과 아줌마 사이」중에서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도 점점 겸손해진다는 의미다. 후배 기자의 사표와 아이 학교 선생님의 지적을 받고 나니 밑바닥으로 꼬꾸라진 느낌이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함이 많은 인간인지’처절한 반성을 하고 나자, 새로운 관계가 싹텄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며, 아이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봐주는 것. 육아의 기본 원칙이지만 살다 보면 이것만큼 실천하기 힘든 게 없다. 바쁘기 때문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경험이 더 많다는 이유로 내 선택이 옳다고 판단하며, 아직 어리니까 부족한 걸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믿고 존중하는 생활을 6개월만 해보면 알게 된다. 아이가 얼마나 많이 바뀌고, 자신감이 넘치는 ‘보석’으로 바뀌는지.
--- 「에필로그: 아이가 자라면 엄마는 겸손해진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