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여, 책을 들어 읽어 보시게. 자네가 이 책을 통독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책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네. 자네를 가르치기보다는 훈련하는 데 목적이 있으니, 내가 제시한 생각에 관심만 갖는다면야 그 생각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내 알 바는 아니네. 자연이 발휘하는 힘에 대해서라면 더 능숙한 사람에게 배우도록 하시게. 자네의 힘을 시험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일세. 안녕히.
추신. 책을 읽기 전에 한 마디만 더 듣고 가게나. ‘자연’은 ‘신’이 아니고,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가설’은 ‘사실’이 아님을 항상 염두에 두시게. 어디서든 이 세 원칙에 반反하는 무언가를 찾았다고 생각한다면 자네는 내 생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임을 명심하시게.
---「지은이의 말」중에서
우리는 철학을 두 종류로 구분했으니 실험철학과 합리주의 철학이 그것이다. 실험철학은 눈에 안대를 하고 항상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가, 손에 집히는 모든 것을 이용하여 마침내 값진 것과 만나게 된다. 합리주의 철학은 이들 값진 것을 수집하고 그것으로 횃불을 밝히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횃불이라는 것보다는, 함께 경쟁했던 실험철학의 암중모색이 더 유용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실험이 거듭될수록 그 폭은 무한히 커지고, 끊임없이 작동한다. 이성이 유추를 찾고자 온통 시간을 쓸 때 경험은 현상들을 찾고자 한다. 실험철학은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치게 될지, 연구가 무엇으로 귀결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쉴 새 없이 노력한다. 반대로 합리주의 철학은 어떤 가능성이 중요하고 어떤 가능성이 중요하지 않은지 따져보고, 말을 하다가도 돌연 말을 끊기도 한다. 합리주의 철학은 ‘빛은 분해가 불가하다’고 과감히 선언하지만, 실험철학은 그 선언을 가만히 듣고 몇 세기를 꼬박 침묵하다가, 갑자기 프리즘을 들고 나와 ‘빛은 분해가 가능하다’고 선언한다.
--- p.47-48
몇 가지 편견들. 자연에 존재하는 사실들에서도, 삶의 정황에서도 우리가 발을 헛디뎌 빠지게 될 함정이 아닌 것은 없다. 나는 모든 국가에서 양식(良識)을 따르는 것으로 간주하는 저 대부분의 일반 공리(公理)를 그 증거로 제출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들 한다. 이 말은 조잡한 외관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실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눈에 띄지 않는 차이들을 이해해보려고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철학자들은 이 격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나무 전체에서 똑같은 초록색이 ‘뚜렷이’ 두드러지는 두 잎이 없으리라는 점을 확신하게 될 사람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 모든 존재는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차이들을 차례로 거치면서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라면,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으니 아주 오래 전에 존재했던 형상들과, 오늘날 존재하는 형상들과,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 존재하게 될 형상들 사이에 결국 가장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nil sub sole novum)”는 말은 그저 우리가 가진 신체기관에 결함이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가 완전하지 못하고,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에 만들어진 편견에 불과하다. 도덕에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quoi capita, tot sensus)”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문학에서는 “취향을 갖고 논쟁해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이를 어떤 이에게 그의 취향은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유치한 생각이다. 이를 좋은 취향도 없고 나쁜 취향도 없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오류에 빠지는 일이다. 철학자는 민중의 지혜에서 나온 이런 공리들을 모조리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 p.145-147
내가 인간의 작업에 시선을 돌려, 사방에 지어진 도시들을, 사용된 모든 요소들을, 고정된 언어들을, 개화된 민족들을, 건설된 항구들을, 항해했던 바다들을, 측정된 지구와 하늘을 바라볼 때 내게 세상은 대단히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의학과 농업의 제일원리들, 대다수 실체들의 속성,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들의 지식, 가지치기剪枝, 쟁기의 형태를 불확실한 것으로 본다는 것을 내가 알았을 때 지구에는 사람이 어제에만 살았던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현명했다면 물질적인 안락을 추구하는 데 관련된 연구에 몰두하고, 내가 제시한 하찮은 질문에는 아무리 빨라도 천 년 후에나 답변할 것이다. 아니면 사람들이 차지하는 자리가 얼마나 작은지 그들이 누리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내가 말한 그런 질문에는 결코 답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