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에 한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한 남자와 헤어진 뒤 다른 남자를 만났지만 늘 감정적으로 복잡했다. 한 남자와 진지한 사이가 되고 나면 싫증이 나는 패턴에 빠졌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해보려고 몸부림쳤다. 솔직히 어떤 여자가 성관계가 시들해졌다고 냉정히 다른 남자한테 갈 수 있겠는가? “그 남자 정말 괜찮은 남자야!” 나는 나 자신에게, 또 내 성적 본능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내 성욕은 타협이 없었으며 다른 남자에게 끌렸다. 물론 헤어지는 과정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다(내가 바랐던 해결책은 이런 게 아니었으니까). (…)
놀랍게도 내 주변 여성들도 나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배타적인 성관계를 유지하는 여성들은 대다수가 마음속으로는 충실하지 못했다. 일부는 다른 남성을 꿈꿨고, 일부는 여성을 꿈꿨다. 그리고 그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이쯤 되니 성욕을 행동으로 옮긴, 즉 일탈하는 여성은 어떤 심리를 가졌을지 궁금했다. 불륜을 저지르는 여성과 불륜을 상상만 하는 여성의 차이는 뭘까? 일탈하는 여성은 어떤 식으로 불륜을 경험하고 또 그걸 감수할까?
--- p.11~13, 「프롤로그」중에서
기원전 6,000년 전쯤 처음 소를 이용해 쟁기를 끌기 시작한 사람들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살던 메소포타미아인들이다. 보다 작은 쟁기들이 사용된 것은 그보다 2,000년 전쯤이다. 그다음에는 이집트인들, 그다음에는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이 노새를 동원해 보다 무겁고 큰 쟁기를 끌게 했다. 덴마크 경제학자 에스테르 보스럼(Ester Boserup)이 말한 ‘이동 경작’의 도구인 괭이와 땅 파는 막대기와는 달리, 쟁기는 우선 쥐는 데 상당한 악력이 필요했고, 쟁기를 직접 끌거나 밀려면(또는 쟁기를 끄는 동물을 다루려면) 상당한 상체 및 전신의 힘이 필요했다. (…)
따라서 남녀 간 성에 따른 엄격한 분업이 이루어지게 되고, 남성들은 밖에서 농사일을 하고 여성들은 집 안에서 자식 양육과 음식 준비 같은 2차 생산을 맡게 된다. 여기서 ‘여성의 타고난 역할’과 관련된 믿음들이 생겨난다. 여성은 늘 집 안에 있어야 하며, 당연히 엄마가 자녀 양육을 전담해야 하고, 여성의 노동은 남성의 노동에 비해 생계와 수입에 덜 중요하다는 믿음들 말이다.
--- p.111~112, 「쟁기, 재산, 예의범절」중에서
인간의 DNA와 거의 99% 일치하는 보노보들을 살펴보자. 보노보 암컷들은 어떤 수컷이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다 싶으면 둘 이상이 연대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수컷들을 지배한다. 그리고 수컷은 오래지 않아 누가 지배자인지 깨닫고는 도전을 멈춘다. 그런데 주변에 친족도 없는 암컷들이 대체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패리쉬는 그건 바로 섹스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노보 암컷들의 경우 서로 마주보고 섹스를 하는 데다 클리토리스가 밖으로 삐져나와 있어, 다른 암컷들과 섹스를 해도 충분히 쾌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실제 어떤 보노보 암컷에게 수컷과 암컷이 동시에 구애할 경우, 그 암컷은 거의 늘 암컷을 선택한다. 내가 패리쉬와 함께 보노보를 관찰한 두 번째 날, 당시 3살이었던 보노보 암컷 벨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바로 우리 앞아 앉아 있었다. 벨은 기다란 두 다리를 벌린 채 한 손가락으로 그 사이를 쑤시고 있었다. 커다란 연필 지우개만 한 자신의 클리토리스를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아주 기분 좋아 보였다. 또 다른 날 패리쉬와 나는 벨이 바닥에 누워 있는 자기 큰 언니뻘인 매디 위에 올라타는 걸 보았다. 두 암컷은 서로 성기를 부딪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 p.205~206, 「낙원에 사는 보노보들」중에서
나는 스커트 클럽의 주소를 받았고 또 전날 열린 파티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주소지는 시내의 한 아파트였다. 문 앞에서 수위나 누가 물어올 경우, C의 초대를 받았다고 말하면 됐다. 주제는 올 타이드 업, 즉 신체 결박으로 정각 오후 8시 30분에 ‘시바리(신체 결박을 뜻하는 고대 일본어)’ 행사가 있을 예정이었다. 파티는 오전 2시 30분에 끝날 예정이었다. 내 남편은 내가 스커트 클럽에 초대받았다는 사실에 재미있어 하면서도 꼭 가보라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아직 감기도 다 안 떨어진 상태여서 하루 더 침대에 누워 쉬고 싶었지만, 남편이 강하게 권하기도 해 몸을 일으켜 긴 소매에 길이가 무릎까지 오는 아주 꽉 끼는 검은색 가죽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장례식이나 여자들만의 섹스 파티에 딱 맞는 복장이야.” (…) 그는 내게 허락해줄 테니 원하는 건 뭐든 하라고 했다. 내가 허락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쏴붙이자, 그는 깜짝 놀라는 듯했다. 이렇게 해서 내 연구는 내 주관 하에 진행됐고, 나는 시내로 가면서 아주 초조해졌다.
--- p.212~213, 「낙원에 사는 보노보들」중에서
나는 팀이 릴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그녀가 자신에게 자유도 주지만 지속적인 도전 과제, 그러니까 두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야 한다는 과제도 안겨주기 때문이리라. 그는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릴리는 내게 결혼은 서로의 소유물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준 사람이에요. 그녀는 우리가 결혼할 때부터 그걸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원칙으로 정했어요.” (…)
팀은 지금처럼 오픈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자신과 릴리를 위해 괜찮은 방법이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자칭 ‘폴리아모리’ 지지자들이 성취하려 애쓰는 게 어쩌면 이런 종류의 재앙을 미연에 방지할 대비책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방식은 사람들이 일부일처제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지 않게 해주고, 또 일부일처제라는 허약한 개념이 붕괴될 경우 고통을 맛보지 않게 해주면서, 동시에 남녀 관계의 이점들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 p.277~278, 「바람피우는 여성 사랑하기」중에서
어떤 여성들은 능력이 되기 때문에 혼외정사를 갖는다. 와이언도트 족 여성들이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리듯, 산업화된 서구 사회에서는 가진 게 많거나 특히 한 가정에서 가장 내지 주요 부양자 역할을 하는 여성들은 성적으로 자유로워져 자주성을 갖게 된다. 이런 범주에 속하는 여성으로는 영화배우 틸다 스윈튼이 떠오른다.
부유하고 아름답고 권력까지 지닌 그녀는 한때 자신의 평생 파트너(그와의 사이에 쌍둥이를 낳았다)는 물론 20살 가까이 어린 남자친구(스윈튼은 두 남성과 ‘이중관계’를 맺고 있다는 건 부인했으나, 일부 사람들 눈엔 특이해 보일 수 있는 남성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았다)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한 성 안에서 살고 있다. (…) 남녀의 성에 대한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세상은 지금 다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원칙과 공식들은 계속 유효하며, 세계 각지의 문화와 당신이 알고 있는 여성들로부터 배운 교훈은 분명하다. 선택할 자주성이 없고 강요나 제약이 있다면 진정한 자주성은 없다.
--- p.319~323, 「인생은 짧다. 거짓되게 살 것인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