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그 꿈들이 사라져버렸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취도 없었다. 장엄한 비극적 종말이 아니었다. 다만 삶에 찌든 옹색함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아무런 불편 없는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삶, 일상의 중독, 자고 먹고 일하고, ‘성공과 출세의 교과서’를 선물로 받고, 업무적으로 만난 이들과 둘러앉아 타인을 시기하고, 내일이 새로울 거라는 기대가 없는 삶, 마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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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선착장에 내리니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든다. 아는 사람도, 가야할 행선지도, 해야 할 일도 떠오르지 않고 형언할 수 없는 막막함만 파도처럼 출렁댄다. 섬이 나를 완강히 거부한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이 보내는 경계의 눈빛을 보는 듯한데, 거부하는 게 어디 섬뿐이랴. 바다의 본질에 다가서려 하면 바다가 나를 거부하고, 돌의 본질에 다가서려 하면 돌이 나를 거부한다. 세상 천지에 대뜸 속살부터 만져보자고 달려드는 수상쩍은 인간에게 호락호락 당할 사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섬이 나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고 나는 외롭다. 만약 섬사람이 처음 육지를 찾았다면, 그도 나와 똑같은 외로움을 느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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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아침 하늘은 맑았는데, 배에 올라 10여 분 나가니 먹구름 낀 하늘과 망망대해다. 금세 내릴 것 같지는 않으나 꼭 비가 내릴 구름이니, 승봉도를 찾는 길은 설렘보다는 어떤 두려움이 앞선다. ‘사랑도 없고 증오도 없는데 내 마음은 한없이 괴로워라’라는 베를렌느의 시 구절을 떠올린 것도 분명 그 때문이다. 날씨를 놓고 누굴 탓하기엔, 그 날씨가 너무 오묘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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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섬, 서방바위, 슬픈여, 독립문바위 등 바위 여행은 계속된다. 탑섬은 큰 바위가 시루떡처럼 쌓였는데, 전체가 붉은 색을 띠고 있고 바위 상단 좁은 평지엔 푸른 풀이 자라고 있다.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 독립문바위는 서울의 독립문을 아주 미세하게 빼닮았다. 풍랑에 세상을 뜬 부모를 기다리다가 이내 바위가 되었다는 일곱 남매의 전설이 서린 슬픈여. 일곱 개의 바위섬이 먼 듯 가까운 듯 애처롭게 흩뿌려져 있다. “와, 와!” 배에서는 감탄사가 끊이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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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리 마을길을 걷는다. 어촌보다는 농촌의 시골 풍경. 추녀 밑엔 메주가 걸렸고 헛간에 콩깍지들이 그득하다. 빨랫줄엔 꽁꽁 언 내복이 겨울바람에 서걱댄다. 겨울잠을 자는지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낯선 행인을 향해 짖는 개소리만 요란하다. 딱히 찾는 집도 없이 이집 저집 기웃거리는데, 돌담 사이로 솟아오른 굴뚝 하나가 눈에 띤다. 진흙과 돌을 이겨 세우고 끝에는 날렵한 옹기를 꽂아 맵시를 더한 굴뚝. 그 굴뚝을 세운 사람은 아마도 유명한 건축가가 아니었으리라. 아니 십중팔구 해 뜨면 매일 들로 바다로 나가는 촌부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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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넋을 놓고 등대섬을 바라보다가 바닷길을 건너 등대섬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등대섬을 밟았을 때는 더 이상 아름다운 등대섬은 볼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등대섬이 바라다 보이는 소매물도 언덕에서 발길을 돌렸다면 나는 정말 괜찮은 놈이 되었을 것이다. 등대섬도 진짜로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욕심으로, 저 딱딱한 등대 한번 만져보고 싶어서 나는 꾸역꾸역 등대섬을 걸어 올라갔던 것이다. 아름다움, 애틋함은 없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등대는 나는 언덕에서 돌아서야 했던 것일까. 영원한 짝사랑으로 끝내야만 했던 것일까. 정말로?
---- p.185
장자봉(142m)으로 향했다. 장자봉 중턱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형상을 한 할매바위엔 젊은 새댁이 할매가 되고 바위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과거를 보러가서 아예 소식이 없던 남편이 어느 날 불쑥 나타났는데 과거급제 대신 다른 부인과 아이 셋을 데리고 왔다나. 그래서 그 슬픔에 바위가 되었다나 어쨌다나.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람 사는 이야기. 왜 이리도 허망하고 슬픈 이야기가 많은지. 장자봉 정상. 저 멀리 관리도 뒤편으로 붉은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 노을을 흠뻑 묻힌 배 한 척이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12월의 낙조는 사람을 참으로 겸손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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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에서 배를 탈 때는 동백꽃 몽우리가 터지고 있었는데 보길도에 내리자 동백꽃은 지고 있다. 보길도의 동백도 다 그런 것이 아니라 부용동 일대가 그랬다. 마을 모양이 보길도의 주봉인 격자봉을 비롯해 광대봉, 망월봉 자락에 둘러싸인 분지여서 특히 온화한 날씨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떨어져 뒹구는 동백꽃잎으로, 부용동 세연정의 봄은 와 있었다.
---- p.249
묘한 아름다움 끝, 향리는 바다와 산의 경계에 놓여 있다. ‘섬둥반도’라는 거대한 기암절벽이 고구마처럼 길게 한참을 뻗어나가다가 바다 가운데서 뚝 떨어져내렸다. 꿈속에서 벼랑으로 자꾸만 떨어져내리는 나를 내가 보고 있는 느낌. 그 자유와 고독의 벼랑에 서서 “왜? 왜?”삶을 물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살고 있는가, 왜? 그 단단한 물음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나를 느끼며, 나는 바다를 바라봤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저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 나는 그 ‘왜’에 대답할 수 없다. 인생은,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갖고 괴로워하는 것. 그래서 회피한다는 것이 아니다. “왜?”를 끊임없이 물으며 애써 침묵한다면, 거기 ‘뭔가 흔적’이 굳으리라. 저기 바다 가운데, 별처럼 뿌려진 국흘도, 개린여, 두억여 등등 섬들도 어쩌면 그렇게 굳어진 것이 아닐까.
---- p.263-264
이러한 전설 때문에 이 섬은 ‘사랑(愛)도’가 되지 못하고 ‘사량(蛇梁)도’가 된 것일까. 뱀의 대가리 같이 귀 없는 사랑, 뱀의 눈 같이 야비한 사랑, 뱀의 몸뚱어리 같이 징그러운 사랑. 답답한 마음 둘 곳 없어 허정대는데, ‘옥녀는 사량도의 실제 인물이다. 인물이 너무 고왔다. 사량도 아가씨들도 옥녀를 닮아서 인물이 좋다.’ 김 할머니의 자랑이 쏜살같이 들려온다. 사량도 토박이 김 할머니는 옥녀를 매우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옥녀 축제에는 서울 광양 대구에서도 와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잔치를 벌여요.” 할머니가 얘기하는 옥녀 축제 풍경에는 근친상간도, 죽음도 없다. 오랜 세월에 걸쳐 옥녀를 원혼을 달래온 마을 주민들의 삶이 마침내 옥녀의 슬픔을 극복해낸 것이리라.
---- p.290
좌 노인의 얘기는 제주도 토박이들의 깊은 슬픔, 연대의식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제주 민초들의 기층에 깔린 무의식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노인과 헤어져서 민박으로 돌아오는 길. 바다 저편에 검게 떠 있는 차귀도를 보았다. 지금 이대로 바닷물을 찰박찰박 밟으며 뛰어가고 싶었다. 안과 밖이 없는 차귀도로, 그 상태로 완전히 자유로운 차귀도로.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 쓸쓸한 바람, 울렁이는 파도, 좌 노인의 제주도, 그 모든 이야기를 무욕의 상태로 보듬어 안고 있는 저기 차귀도의 품으로.
---- p.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