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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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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

이근화 | 난다 | 2015년 11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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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74g | 138*210*15mm
ISBN13 9788954635585
ISBN10 89546355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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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자칫하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나는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한 명 더 만난 적이 있었다. 반쯤은 신에 들리고 또 반쯤은 수행을 통해 득도한 어느 스님께서, 나도 알 수 없는 나와 나의 미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동안 종이 위에 무엇인가를 쉬지 않고 적고 계셨다. 나는 나에 대한 얘기인데도 그 말의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글자도 아니고 글자가 아닌 것도 아닌 그 이상한 모양의 글자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나에 대한 어떤 불안과 걱정의 말이 오갈 때 그 글자들은 더욱 휘어져 내려갔다. 두 바닥 반 정도가 채워지고 나서야 피곤하다는 듯이 말을 멈추셨고 나는 들은 것도 본 것도 뚜렷하게 없는데 복비를 지불했다. 속은 것도 속지 않은 것도 같았지만 그 종이들은 다음 페이지로 넘겨졌고 또다른 누군가의 삶을 담아내기 위해 희고 차가운 얼굴을 내밀었다.
등단 소감에 나는 기중기와 칠레산 홍어와 사라지는 꼬리, 커다란 입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적었다. 그동안에 기중기에 관한 시를 한 편 썼는데 너무 시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칠레산 홍어에 관한 시는 아직 쓰지 못했고 경동시장에서 홍어를 한 마리 사다가 된장을 풀어 끓여 먹었다. 칠레라는 이름의 긴 나라에 대해 생각하면서 말이다. 뒤돌아보면 꼬리뿐인 고양이들과 자주 마주치고, 나는 새로운 것들을 해야 할 때마다(요즘에는 운전이 그러한데) 커다란 입속으로 들어가는 공포감을 맛본다. 도로를 긴 혀로 생각하니 또 시적인 것 같다.
그러나 시적인 것에 대해 의식하거나 몰두하지 않으려는 힘이 나에게 시를 쓰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못된 아이처럼. 그러나 또 지금 착한 아이를 꿈꾸며 나는 참 고분고분해져서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사람들은 조금 다르거나 이상하면 금방 주목한다. 그러한 주목과 관심은 참 여러 방향으로 힘을 갖는다. 살면서 사랑하면서 나는, ‘감정선이 붕괴되었다’고 며칠 전 생각했었지만 오늘은 산고개를 넘으며 단풍이 참 곱다고 ‘가을이 깊었다’고 생각했다.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중에서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면 좋겠다. 날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 계절마다 이름을 바꾼다면 이 어수선한 봄날, 내게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이름이 두 글자가 아니라면 또 어떨까. 오늘 나는 ‘고양이 목걸이를 하고 걸어가는 목 쉰 사람’. 내일은 ‘꿈속의 물컹한 손가락’. 이름이 없으면 좋을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냥 나를 ‘빵’이라 불러줬으면 좋을 것 같은 날도 있다. 내가 쓴 작품들을 나의 긴 이름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래서 내가 길어지거나 뚱뚱해지거나 재밌거나 지루하거나. 그런데 오늘도 내 이름은 가지런하고 딱딱하다. 내 앞으로 우편물이 세 개 도착했다. 우리집 꼬마는 나와 좀 다른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다 ‘까까 꼬꼬’라 부른다. 밥도 과일도 책도 텔레비전도 까까 꼬꼬가 되고, 지나가는 사람도 나무도 돌멩이도 까까 꼬꼬라 한다. 하루이틀 사이 정교해져서 ‘깜깜 꼭꼭’이 되기도 한다. 나도 그런 ‘무서운’ 까까 꼬꼬가 있으면 좋겠다.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아무나에게 손을 흔들고 무엇에게도 다 인사를 한다. 다 사랑할 수 없어서 나는 날마다 다른 이름을 꿈꾸고 헤매고 멈추고 넘어지는 것 같다. 앞으로는 좀더 창조적으로 살아보겠다.
---「가지런하고 딱딱한 이름」중에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이근화와 길을 걷다 갈림길에서 헤어지던 어느 저녁을 잊지 못한다. 눈인사를 건넨 다음, 어깨를 끌어올려 묘하게 등을 구부리며 돌아서던 그녀의 자세 때문이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의아한 눈으로 따르다가 나는 그 어깨와 등의 윤곽을 손가락으로 그려보았다. 수줍고 유연한 동물만이 취할 수 있는 곡선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몸에 밴 감정의 자세였을까, 이 책을 읽으니 비로소 그 곡선의 비밀을 엿본 기분이 든다. 고사리손으로 만든 모래굴에 나뭇잎을 숨겨두던 여자아이가 어떤 마음의 굽이를 지나 시인이 되었는지를. 칠레라는 이름의 긴 나라를 따라 어떻게 구불거리게 되었는지를. 바구니나 주머니가 된 것 같은 엄마의 몸으로 지금은 어린것들과 함께 어떤 리듬으로 출렁이는지를.
“국수를 비비듯 물결을 가르듯” 이근화는 삼박자로 읽고 사박자로 쓴다. 작품 속의 세계와 고단한 삶을 넘나들며 애틋하게 읽고 경쾌하게 쓴다“. 일상에 복수를 하듯” 간절하게 읽고 사뿐하게 쓴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남아 있는 것을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내가 아닌 나를, 아닌 채로 환대하기 위하여. 이근화의 곡선을 다시 손가락으로 그려본다. 이런 곡선을 제외하고 무엇을 문학적이라 말할까. 무엇을 간곡하다 말할까.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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