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가 일주일의 한계로 공략한 도시들을 전한다. 각 요일의 장면을 여행 노트에 그리고, 요일들을 넘나들며 얻어 낸 이야기들을 글로 쓴다. 이것은 가이드북이 아니다. 매우 주관적인 하나의 여행.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 그 도시를 요리한 하나의 레시피에 불과하다. 우리 각자의 일주일은 서로 다르고, 그래서 여러분의 여행 노트는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어쨌든 이제 일주일 여행자의 트렁크를 싸자. ---「위크 트리퍼의 여행법」중에서

샌프란시스코는 기울어진 도시다. 그곳을 떠나고 한참 뒤, 문득 깨달았다. 나는 또 다른 낯선 도시의 카페에 앉아 있었고, 건너편 남자가 든 신문을 보았다. 어느 화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 얼핏 보였고, 작은 프레임 안에 그의 그림이 있었다. 화가의 창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 마치 배가 기우뚱 기운 듯 사선으로 움직이는 차와 사람들… 샌프란시스코다. 거기가 아니면 어디일 수 있겠나? ---「기울어진 도시의 핀볼 게임」중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잘 관리된 탈것들이 체계적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다른 도시와 달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하철 탈 일이 많지 않다. 역사와 자유로운 생각이 만들어 놓은 풍경을 바라보며 도시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것. 샌프란시스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 방법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다니는 백 가지 방법」중에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을 말한다. 그리고 미션-돌로레스에 있는 작은 선물 가게의 이름이다. 버거를 먹고 난 뒤 우리는 뭔가 기분을 풀어 줄 물건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 왁자지껄한 수다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주인과 그 친구들이 작은 와인 파티를 하고 있었다. 또 잘못 들어왔구나, 여기서도 지들끼리만 놀고 있네, 싶어 발을 돌리려는데 여주인이 우리에게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유스호스텔의 이층 침대에 누워 있는 세렌디피티를 본 적이 있나요?」중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동안 많은 ‘노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뒷방늙은이로 남지 않았다. 다양한 활동에 얼굴을 내밀었다. 수트로 바스에서 마주친 유방암 퇴치 캠페인 걷기 대회에 참가한 노부부가 그랬다. 반짝거리는 토끼 머리띠와 분홍 발레스커트로 치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휠체어를 밀며 씩씩하게 걸었다. 할머니는 핑크색 카디건을 허리에 두르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티셔츠 위에 거대한 핑크색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다. ---「젊게, 늙다」중에서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파리의 모사가 아니라, 이 도시 자체의 과거를 되살리는 카페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일까? 위치는 폴저나 힐스처럼 부두에 가까운 게 좋겠지. 그리고 모양은 거대한 커피 공장처럼 생겼겠지. 그렇다고 구닥다리 박물관 같거나, 유럽을 동경하는 관광객들이 들끓는 분위기는 싫다. 바로 그 동네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의 카페로 여길 만큼 편안하면서도 멋들어진 곳이어야겠지? ---「올빼미는 어찌하여 푸른 주전자에 앉아 울어 대는가?

누군가 동전을 넣고, 도시는 불을 밝히고 돌아간다. 사람들은 걷고 웃고 먹고 마시고 일하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그들은 기괴하려 하지 않으면서 기괴하고, 귀여움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귀엽다. 다양함의 조합으로 더 다양함을 만드는 도시. 이곳에 오면, 모든 형용사들이 춤춘다. ---「기괴한 귀여움」중에서

히피 노인은 양쪽 검지만 쓰는 궁극의 독수리 타법으로 타이핑을 해 가다 눈을 찡그렸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 놓은 메모를 꺼내 뚫어져라 쳐다보고선 몇 줄을 더 써내려 갔다. 그러다 수정액을 꺼내 타이핑된 글을 고쳤다. 얼핏 훔쳐본 바로는 공적인 문서 양식 같았다. 단지 종이가 없어 거기에 쓰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떤 전언(傳言)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b>위크 트리퍼 박사와 이명석, 샌프란시스코를 공략하다.<br/>자, 이제 일주일 여행자의 트렁크를 싸자!<br/>일주일은 여행자에게 멋들어진 순환주기다</b><br/><br/>로망일 뿐인 여행을 실현하기로 한 오래전부터 같이 또는 각자 떠났다 돌아오기를 이어온 박사(P)와 이명석(M). 두 사람이 함께 또 다른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런데 문득 떠올리는 물음, ‘보통의 사람이 한 도시를 여행하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적절할까?’ 어떤 이는 스치듯 배회하다 재빨리 떠나며 도시 사이를 유랑하고, 또 어떤 이는 마치 자신의 고향인 듯 오랜 시간 동안 도시 속에 몸을 묻는다. 그 중간 지점에서 P와 M이 찾아낸 시간, 일주일. 먼 곳으로 떠나는 데 시간적인 한계가 있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자 한 도시의 다양한 모습들을 놓치지 않고 체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br/><br/>“일주일. 우리는 이 마지노선을 게임의 룰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 그걸로도 충분한, 그걸로도 전혀 다른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br/><br/>도시는 여행자에게 각각의 요일마다 서로 다른 얼굴을 내보인다. 매 순간 도시가 가진 전혀 다른 매력들과 마주칠 수 있기에, 일주일은 멋들어진 순환주기인 셈이다. P와 M은 위크 트리퍼(Week Tripper)가 되어 도시의 요일들을 넘나들며 만난 장면들을 보여 준다. 그 첫 번째 목적지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미친 도시 ‘샌프란시스코’다.<br/><br/><b>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모든 요일들</b><br/><br/>“다양함의 조합으로 더 다양함을 만드는 도시. 이곳에 오면, 모든 형용사들이 춤춘다.”<br/><br/>곳곳에 낭만적이고 예쁜 풍경과 더불어 저항과 혁명의 흔적이 배어 있는 샌프란시스코. 안개 속에서 떨다가 갑작스레 뙤약볕을 맞게 되고, 오래된 전차를 타고 해변을 따라 달리다가 거리에서 핑크빛 발레스커트 입은 경찰과 마주친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다양한 얼굴을 숨기고 있기에, 이 도시는 일주일 여행자와 어울린다. 취향 강하고 세상 오만 가지에 관심 많은 P와 M과의 궁합은 말할 것도 없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재미와 사유를 즐기는 두 사람답게 이 도시 안에서 풀어가는 이야기 또한 다채롭다. <br/><br/>일주일 동안, 그들에게 샌프란시스코는 ‘기울어진 도시’ ‘횡단 방법이 백 가지인 도시’, ‘거대한 유스호스텔의 도시’ ‘젊고도 늙은 도시’ ‘기괴한 귀여움의 도시’ 등 매 순간 다른 색깔로 다가온다. 그 풍경과 흔적들을 고스란히 쓰고 그린 이야기들을 7일간의 여행 노트와 7개의 테마 에세이로 담아 냈다. <br/><br/>“우리 각자의 일주일은 서로 다르고, 그래서 여러분의 여행 노트는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br/> <br/>자, 이제 일주일간의 여행을 떠날 트렁크를 꾸려도 좋고, 그전에 먼저 이 책을 펼쳐 들어도 좋다. 어찌됐든 지금은 떠날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