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8월 13일, 쿠바 올긴 주의 비란에서 태어났다. 산티아고와 아바나에 있는 명문 사립 가톨릭 학교에 다녔으며, 1950년 아바나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반(反)정치부패 학생조직에 가입해 정치활동을 했다. 1947년 도미니카공화국의 트루히요 독재에 저항하는 무장 원정에 자원했으며, 1948년에는 콜롬비아 보고타 민중봉기에 참여했다.
1952년 바티스타 독재에 저항해 무장투쟁 혁명세력을 조직하기 시작했으며, 1953년 7월 26일 몬카다 무장 수비대를 공격했으나 실패하여 체포되었다. 재판 당시 변론을 담은 책 『역사는 나를 용서할 것이다』는 수만 부가 배포되어 7월 26일 운동의 실행 프로그램이 되었다.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사면을 위한 대중 캠페인으로 1955년 5월 석방된 후 멕시코로 망명, 게릴라 수비대를 조직했다. 1956년 12월 동생 파울, 체 게바라,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등과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 해안에 상륙했다. 이후 2년에 걸쳐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쿠바 전역으로 투쟁을 확대한 끝에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고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다.
1959년 2월 신정부의 총리가 되어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외국 자본을 몰수하는 등 사회개혁을 단행했다. 1976년 국가평의회 및 각료회의 의장이 되었다. 1965년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설립한 이래 제1서기를 맡았다.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사임했으며, 2016년 11월 25일 세상을 떠나 산티아고 데 쿠바에 묻혔다.
브라질의 사제. 1944년 벨루 오리존치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가톨릭 학생 청년회에서 활동했다. 언론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던 1964년 군부 독재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했다. 철학과 신학 공부를 병행하면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브라질 군부 체제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파울로 프레이리와도 함께 일했다. 1969년 다시 투옥되었다가 1974년 석방되면서 가난한 노동자인 이웃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를 조직하는 데 가담했다.
1980년대에는 니카라과, 쿠바, 중국, 소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종교와 국가 문제에 대한 자문 일을 했다. 그 후 무토지농민운동(MST)과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널리 알려졌으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정부의 사회 정책과 기아퇴치(Zero Hunger) 프로젝트에서도 자문을 했다.
제3세계 신학자들의 국제 에큐메니컬 협회 회원이며, 해방신학에 관한 열두 권이 넘는 책의 저자로 폭넓은 인정을 받았다.
성균관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대학원과 충남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철학박사). 협동조합 운동가로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대전사회적기업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소셜경영연구소 소장,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대전·세종 희망새물결 공동대표 겸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사회적경제의 발견』(공저), 『참 좋은 의료공동체를 소개합니다』(공저), 옮긴 책으로 『평화에 이르는 길』, 『간디, 그리스도교를 말하다』, 『피터 모린, 20세기에 살다 간 예언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