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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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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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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5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660쪽 | 538g | 115*170*35mm
ISBN13 9788962609202
ISBN10 8962609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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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시키는 대로 침실을 나서기는 했지만 좁은 복도가 어디로 통하는지 몰라서 계속 서 있다가 본의 아니게 집주인의 미신적인 일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겉보기와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그는 침대에 올라가 창을 비틀어 열어 잡아당기면서 억누를 수 없는 격정적인 눈물을 터뜨렸다.
“들어와! 들어와!” 그는 흐느꼈다.
“캐시, 들어와줘. 오, 다시 한 번 와줘! 오! 내 사랑! 이번에는 내 말을 들어, 캐서린, 이제는!”
하지만 유령은 유령답게 변덕스러웠고, 자신이 존재한다는 흔적을 어디에도 남기지 않았다. 눈과 바람만이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더니 내가 있는 곳까지 휘몰아쳐서 불을 꺼트렸다.
그처럼 미친 듯이 슬픔을 표출하는 이면에는 엄청난 비통함이 있으리라 짐작한 나는 연민을 느낀 나머지 그의 행동을 못 본 척하려고 자리를 피했다. 내가 그를 엿봤다는 사실이 유감스럽기도 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괜히 터무니없는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서 그에게 극심한 고통을 준 것 같아 괴로웠다. --- p.57

천국에서 편안하지 않았던 것처럼 에드거 린튼과 결혼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 사악한 오빠가 히스클리프를 천하게 키우지 않았다면 에드거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젠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내 품위가 떨어질 거야. 그래서 히스클리프는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야 해. 그리고 그는 잘생기지도 않았으니까, 넬리. 하지만 그는 나보다 더 나 같은걸.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든 간에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아. 그리고 에드거의 영혼과는 마치 번갯불과 달빛, 서리와 불이 다르듯이 전혀 달라. --- p.156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지만 넬리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누구나 스스로를 넘어서는 자신의 존재가 있다고, 또 그렇게 넘어서야만 한다고 생각하잖아. 내 존재가 완전히 이곳에만 있다면 창조물로서 나의 가치는 어디 있겠어? 내가 이 세상에서 목격한 가장 큰 슬픔은 히스클리프가 당한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하나하나 지켜보며 살아왔어. 지금껏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대상도 히스클리프였지. 다른 모든 것이 죽어 없어져도 그만 남아 있다면 나는 계속 존재하는 거야.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이 남아 있더라도 그가 죽어 없어지면 내게 온 세상은 아주 낯선 곳이 되고 말 거야. 내가 이 세상의 일부로 생각되지 않겠지.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나뭇잎과 같아. 겨울이 오면 나뭇잎이 변하듯 그 사랑도 변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아. 하지만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나무 아래 있는 영원한 바위를 닮았지. 눈에 보이는 기쁨의 원천은 아니지만 필요한 존재.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나, 항상 내 마음에 있어. 내 존재가 나 자신에게 항상 기쁨은 아닌 것처럼,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그러니까 두 번 다시 우리가 헤어질 거라고 얘기하지 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리고…… --- p.159

네가 날 생각한 것보다 좀 더 많이 했을걸, 캐시. 네 결혼 소식을 얼마 전에야 들었어. 내가 저기 아래 마당에서 기다리면서 어떤 생각을 한 줄 알아? 나를 보고 놀라면서도 반가운 척할 네 얼굴을 한 번 보고, 힌들리에게 원한을 갚으러 갈 생각이었어. 그리고 법의 판결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 그런데 네가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니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이 싹 사라지더군. 설마 다음에 만날 땐 달라져 있는 건 아니겠지? 또다시 나를 내치지는 않겠지? 넌 정말 나한테 미안해해야 해. 그렇잖아? 네가 원인이었으니까. 네 말을 들은 그 순간 이후로 난 쓰디쓴 삶을 살아왔어. 그러니 넌 날 용서해야 해. 오직 너 하나 때문에 이리도 힘들게 살아왔으니! --- p.188

하지만 내 손으로 괴롭히지 않으면 히스클리프가 아무리 벌을 받은들 어떻게 만족할 수 있겠어? 차라리 그가 벌을 덜 받더라도 내가 괴롭히고 나 때문에 괴로워했으면 좋겠어. 그자에게 갚아줄 빚이 너무 많아. 내가 그자를 용서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야.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모든 괴로운 상처는 상처로 복수해서 나 같은 고통을 맛보게 해야 해. 그가 먼저 상처를 주었으니 먼저 용서해달라고 애원하게 하는 거지. 그러면…… 그래, 엘렌. 그러면 내가 좀 너그러워질 수도 있어. 하지만 그에게 복수하는 건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 그러니까 그를 용서하는 일도 없을 거야. --- p.350

나에게 그녀와 관련되지 않은 게 뭐가 있겠어? 무엇 하나 그녀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 게 있어야 말이지. 바닥을 볼 때마다 깔려 있는 돌에 그녀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걸! 구름마다 나무마다 온통 그녀가 있어. 밤에는 그녀가 대기를 가득 채우고, 낮에는 보이는 물체마다 희미한 형상으로 나타나서 늘 그녀의 모습에 둘러싸여서 살지. 가장 평범한 얼굴을 한 사람들, 남자건 여자건 할 것 없이, 심지어 내 얼굴마저도 그녀와 닮은 구석을 갖고 나를 조롱해. 세상은 온통 그녀가 존재했었고 내가 그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적어놓은 끔찍한 비망록이야.
--- p.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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