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이기(天地理氣): 하늘과 땅은 어디서 시작하였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무한한 우주 속에서 이 땅에 온 우주적 존재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여기까지 온 길이 다 다르고 모두가 개성을 가진 귀한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온 존재들은 우주의 운행 원리인 음양(陰陽)이 사회적 질서로 해석된 이기(理氣)의 조화 속에서 살게 됩니다. 태초의 시작인 하늘과 물이 상호 작용하듯이 음양(陰陽), 건곤(乾坤), 이기(理氣)는 모두 서로 살리고 살립니다. 이론과 실천, 마음과 정성, 나아감과 물러남, 유위와 무위,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가 제각각 분리된 것 같지만 이 세상이 자리 잡고 변화 발전하도록 서로 돕는 길입니다. 세상은 크게 봐서 하나입니다. 선하고 악한 것에 지나치게 매달릴 이유가 없습니다. 큰 긍정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 안을 수 있습니다. [55~56쪽]
● 천지부모(天地父母):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잊지 맙시다. 밥은 하늘입니다
천지인(天地人)은 다시 재해석, 정명되어야 할 운명에 놓였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천지인(天地人) 속에 무엇을 담아야 역동성이 살아날까요? 우리 시대 인류의 관계성에는 자유로움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자유로움이 고독의 벽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관계가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천지인 속에 ‘자유로움과 창조적 역동성’을 담은 새로운 정명(正名)을 저는 조심스럽게 ‘천지마음’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개인의 자유로움과 창조성 속에서 우주적 존재로서 하늘과 땅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길입니다. [63쪽]
● 천지인·귀신·음양(天地人·鬼神·陰陽): 마음이란 무엇인가? 의식과 무의식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기운이 마음을 움직일까요, 마음이 기운을 움직일까요? 기(氣)가 마음에서 생겨났을까요, 마음이 기(氣)에서 생겨났을까요? 생겨난 것은 기(氣)이지만, 움직이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조화롭지 않으면 기(氣)는 갈 길을 잃어버립니다. 기운이 바르지 않으면 마음도 자기 궤도를 벗어납니다. 바른 기운이 있어야 마음이 편안히 자리 잡고, 마음이 안정되어야 기운이 바르게 됩니다. 기가 바르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마음이 불안하면 기운도 바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음 또한 기로부터 나옵니다. [74쪽]
● 대인접물(待人接物): 사람과 자연 생명을 대하는 마음
인간은 합리적 이성을 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영적 존재, 우주적 존재입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이성과 함께 영성이 있습니다. 19세기 지식인들이 인간의 이성을 자각시키기 위해, 우매한 민중을 깨우기 위해 계몽 활동을 해 나갔다면, 21세기 지식인의 과제는 인간의 영성을 인식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성은 생각의 훈련을 통해 길러나갈 수 있지만 영성은 마음의 훈련을 통해 기르는 것입니다. 이성의 훈련을 위해 책이 필요하다면 영성의 훈련을 위해서는 삶을 도구로 써야 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 속에서 자기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97쪽]
● 성경신(誠敬信): 정성, 공경, 믿음은 마음의 실천입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은 유교의 다섯 가지 도덕 지침인 오상(五常)입니다. 동아시아 사상에서 오행(五行)은 삶의 곳곳에 배여 있습니다. 동아시아 우주관과 자연관의 기본입니다. 믿음에서 정성과 공경이 생겨난다는 생각은 오행의 변화를 수행자의 삶에 반영한 이야기입니다. 안정되고 발전하는 사회는 사회 전체가 믿음에서 나오는 신뢰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회는 수레에 바퀴가 빠진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믿음과 정성, 공경이 잘 어우러지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집니다. 동학의 개벽운동은 한국사에서 성경신이 잘 어우러진 결과 중의 하나입니다. [122쪽]
● 개벽운수(開闢運數): 정신과 물질이 함께 진화해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지금의 시운은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던 시기의 운수가 다시 온 것과 같습니다(天地開闢初之大運). 세상 모든 것이 다시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간 것처럼 되었습니다. 『동경대전』, 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에는 ‘세상의 큰 운수가 모두 동학으로 돌아오는 것은 동학의 근원이 지극히 깊고 이치가 멀리까지 닿아 있기 때문(山河大運盡歸此道 其源極深其理甚遠)’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동학이 여는 운수가 새 세상이 열리는 시운이고, 개벽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144쪽]
● 이천식천(以天食天): 한울이 한울을 먹습니다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다’는 개념은 생태계라는 관념이 생기기 전까지 서양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서양의 정신 세계는 선악이 명확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주체는 ‘나’이기에 ‘하느님의 자녀인 나를 공격하는 타자’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에 대해서도 인간에게 유익한 것과 무익한 것을 나누어 유익한 것에는 가치를 더하고, 무익한 것은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에는 절대적으로 유익한 것이나 무익한 것이 따로 없고 서로 연결되어 생태적 고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후 재난, 동물과 식물종 멸종, 사막의 확대 등 갖가지 재난으로 인해 생태적 전일성을 누구나 삶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인간의 무지로 인해 끊어졌던 생태적 고리를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세계적인 과제입니다. [198쪽]
● 해월잠언 1 일상적인 삶이 진리의 길입니다
우주는 큰 기운과 신의 의지로 창조되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수많은 형상들이 그 모습은 다 다르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이치는 ‘일(一)’입니다. 일(一)은 한울입니다. 한울이 사물의 조직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 것입니다. 다 같은 비와 이슬에 복숭아 나무에는 복숭아 열매가 열리고 배나무에는 배 열매가 익어 갑니다. 이것은 한울이 다른 것이 아니라 사물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공기를 마시고 음식을 먹는 것은 그래서 한울로써 한울을 키우는 일입니다. 사람이 이것을 따르면 그것을 바르다고 하고, 이것을 어기면 악하다 하는 것입니다. [246쪽]
● 해월잠언 7 환난은 환난대로, 곤궁함은 곤궁함대로
4차원에서는 3차원이 입체로 보입니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은 대부분 4차원의 인식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상의 앞면과 뒷면을 입체적으로 보고, 시간의 흐름도 과거, 미래, 현재가 서로 연결되어 이해됩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눈을 통찰(通察)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통찰이라는 눈으로 세상을 보면 미래를 직관한 상태에서 현재를 살게 됩니다. 우물을 팔 때 나뭇가지의 미세한 흔들림을 읽어 물이 나오는 걸 알고 우물을 파는 사람과 어딘지 긴가민가 하는 사람이 우물을 파는 건 확연히 다릅니다. 통찰을 한 사람은 의심없이 자기 과제에 집중합니다.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큰 고통과 괴로움도 고통 자체로만 느끼는 게 아니라 전체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269~270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