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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 아닌 날들
중고도서

보통이 아닌 날들

: 가족사진으로 보는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필리핀, 베트남 여성의 삶

미리내 저 / 양지연 역 / 조경희 감수 | 사계절 | 2019년 03월 0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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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3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00g | 140*210*20mm
ISBN13 9791160944525
ISBN10 116094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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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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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재일조선인 여성

“재일조선인의 집에는 가족사진이 참 많다. 사진 속 ‘자이니치’ 가족들은 행복해 보였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당하는 비참한 삶이 사진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재일조선인 여성 8명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1950년대에 태어난 재일 2~3세대에 속하는 여성 4명과 이후 한반도의 가족들과의 관계가 많이 희미해진 시기에 태어난 30~40대 여성 4명으로 나눌 수 있다. 앞선 세대는 주로 여성이기에 학업을 포기하고 가족 부양에 몰두해야 했던 반면 최근에 올수록 ‘여성’에게 부여된 역할을 거부하며 새 길을 열고자 노력했던 것을 특징으로 한다.

처음으로 일본인 사회에 뛰어들던 순간에는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지만 일본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술을 바로 몸에 익힐 수 있었다. “어디서 전학 왔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나는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게 됐다. 학교에서는 나의 본명을 일본어 발음으로 소개했다. 한 친구의 어머니가 “독특한 이름이네. 황족의 친척이니?” 하고 물어서 선대에는 그랬던 것 같다고 대답한 적도 있다. 이 대답이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10살 무렵부터는 조선인이라는 내 뿌리를 부정하려 애썼다. --- p.35

19살에서 20살 무렵 어머니의 표정은 정말로 밝고 행복해 보였다. 어머니는 “여학교에 다니고 싶었어. 하지만 돈 많은 사람 아니면 갈 수 없던 시절이었어. 학교를 못 가서 원통했지”라는 말을 자주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공부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장녀라는 이유로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만 했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자랐다. --- p.51

오사카처럼 재일동포가 많이 사는 지역에는 한국계 학교와 민족학급이 있지만 내가 사는 지방 도시에는 한 군데도 없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를 다니며 성장하는 동안 ‘민족의 속성에 관계없이 일본인으로 대한다. 그것이 차별하지 않는 최선의 교육이다’라는, 국적과 민족성이 소거된 학교의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1노골적인 민족 차별을 받지 않는 대신 일본인이라는 가면을 씌우는 부조리가 존재했다. --- pp.68~69

가족사를 의식하게 된 것은 조선학교 초급부에 다닐 무렵이었다.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알아 오라는 숙제를 받고 집에 오자마자 취재를 시작했다. 그때 처음 내 고향이 전라북도라는 사실을 알았다. 재일조선인 1세인 할아버지는 전라북도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왔으며, 그 손주인 나는 재일조선인 3세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재일조선인이 역사의 뿌리, 특히 가족사를 되짚을 때, 남성의 경험이 기준이 되는 일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은 조금 더 뒤의 일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때부터 왜 할아버지만을 기준으로 삼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 p.74

나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생활하게 된 재일조선인이 아니다. 또한 일본 국적자이므로 참정권도 갖고 있으며 법제도에서 배제되는 일도 없다. 당연히 한국과 일본을 자유로이 오갈 수도 있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는 있어도 우리가 처한 사회적 위치와 제한은 너무나도 달랐다. 알면 알수록 내가 재일조선인운동에 가담하면 운동의 역사성과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고민에 빠졌다. --- p.114

2장. 피차별부락 여성

“어떤 경우에는 직장이나 남편의 친척, 푸념을 늘어놓을 친구 등 모든 사회관계가 부락 안에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곳은 따뜻한 보금자리인 동시에 철창 없는 감옥이었다.”

피차별부락 출신 여성 8명의 글이 수록되었다. 작은 마을을 의미하는 부락部落은 중세 일본에서 도축?피혁 등에 종사하는 천민 계급의 집단 거주지를 가리키는 차별의 용어로 사용되었다. 1871년 메이지 일본은 피차별부락민을 지칭하는 호칭을 폐지하고 신분과 직업의 차별을 철폐하는 해방령을 포고하였으며, 전후 일본 정부는 부락의 생활 향상을 위한 제도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이름 또한 동화同和대책사업으로, 일본인(和)과는 다른 부락민을 일본인과 같게(同)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도적인 개선에도 불구하고 부락민에 대한 차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국의 부락명과 주소, 상호 등을 적시한 ‘부락지명총람’이 기업 취업에 부락 출신자를 배제하거나 혼인 시 상대방의 부락 출신 여부를 확인할 때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특히 내 안에는 여성은 ‘선택받는 성’이라는 잘못된 젠더 의식과 부락이라는 출신에 의한 이중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혼재되어 있었다. 나는 피차별부락 출신이 아닌 남성과 결혼할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치 왕자에게 선택을 받아야 인간이 될 수 있었던 인어공주처럼 말이다. 인어공주는 왕자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왕자를 죽이든 아니면 자신이 바다의 거품이 되어 사라져야 했다. 가족의 반대로 결혼 상대와 헤어진 부락 여성 중에는 실제로 자살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 p.130

내가 자란 부락에서는 가혹한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그냥 내버려둬라”, “우리는 부락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주민도 있었고 부락해방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할아버지는 오랜 기간 부락해방동맹 임원을 맡았고 도쿄에서 열리는 집회에도 참가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국경일에 히노마루日の丸(일본 국기)를 게양하는 것이 어릴 적부터 의아했다. ‘천황 숭배’,‘국가에 대한 봉사’와 ‘부락 차별 반대’ 사이에는 괴리가 있는데, 할아버지의 마음속에서는 두 가지가 공존했다. --- pp.149~150

엄마가 건축회사에서 일하던 무렵은 동화대책사업이 막 시작되어 도로 공사가 늘어난 시기였다. 회사에서는 “부락은 왠지 꺼림칙하다니까”, “부락엔 들어가기 싫어”라는 말들이 난무했다. 집은 다쓰러져가는데 도로만 번지르하게 정비해서 뭐하느냐는 멸시와 질투의 말을 내뱉는 상사에게 엄마는 “저 부락 출신이에요. 이런 곳에선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항의했다. 엄마는 한 사람의 부락민으로서 시대에 맞서 싸워온 선배 부락민들의 존재를 경외하며 현실에 당당히 맞섰다. 이후 여러 직장을 전전했지만 차별 발언은 끊이지 않았다. --- p.158

부락해방동맹 효고현연합회의 여성부장은 “당신의 아이도 언젠가는 결혼 차별을 당해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한 채 자란다면 차별을 받았을 때 어떻게 자신을 지키겠습니까. 최악의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도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소중한 내 자식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남편이 부락민이라는 사실을 알고 결혼했지만, 내가 부락 문제를 배울 필요는 없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부락민과의 결혼이 나를 차별의 단상 위에 세우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 「다니조에 미야코(1945년 생)의 글」 중에서

울보였던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가 울 때면 “뭐가 슬픈지 말해볼래?”라고 물었다. 그 질문을 받으면 울음이 그쳤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울지 않는 아이가 됐다. 아버지를 삶의 모델로 삼아온 나는 그것이 남성 모델임을 알지 못했다. 페미니스트 상담가를 만나면서 젠더 개념과 그것의 심리적 영향을 알게 되었다. 나의 갈등의 뿌리에는 성역할 규범과 서열화, 이성애 강제라는 권력관계로 이루어진 사회가 투영되어 있었다. --- p.189

3장. 아이누?오키나와?필리핀?베트남 여성

“현재 일본에는 일본 국적이 아닌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삶을 통해 마이너리티로 통칭되는 이들이 처한 상황에 ‘같음’보다 ‘다름’이 많음을 절감하게 된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편입된 아이누(훗카이도와 사할린 일대에 살던 한 종족), 오키나와(옛 류큐왕국) 출신 여성과 외국인 이주 여성 6명의 글이 수록되었다. 1903년 오사카에서 열린 내국권업박람회 때 인류관에 오키나와, 아이누, 타이완, 인도, 자바, 조선 등지의 원주민을 전시한 충격적인 사건은 일본의 인종 차별 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금도 화和(일본어 발음으로 ‘와’)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정서는 일본 안의 디아스포라 민족에게 더욱 힘겨운 삶을 강요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감기에 걸려 학교를 하루 쉬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교실 분위기가 이상했다. 한 남자애가 나를 “아이누!”라고 불렀다. 내가 아이누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날부터 매일 아이들의 괴롭힘이 이어졌는데, 사실 나는 아이누가 뭔지 몰랐다. 그저 같은 반 친구들의 태도에서 아이누란 뭔가 더럽고 냄새나고 기분 나쁜 것이구나, 하고 짐작해볼 따름이었다. 왠지 창피한 느낌이 들어 부모님이나 언니에게 묻지도 못했다. 사전을 찾아봐도 “홋카이도, 가라후토(사할린) 등에 사는 종족”이라고밖에 쓰여 있지 않았다. --- p.216

1945년 3월 18일 미군이 (필리핀) 파나이섬에 상륙했다. 일본군 수비대는 산속으로 퇴각해 지구전에 들어갔다. 그날 밤 약 250명의 일본인 이민자도 군대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도피 사흘째인 3월 21일 심야, 정글에 있는 스야크라는 마을에서 노인, 부녀자, 어린이가 함께 자결하는 이른바 ‘집단 자결 사건’이 일어났다. ‘군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였다. (…)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현장에 남았던 부상병이 수류탄을 던졌고 죽지 않고 버둥거리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총검으로 찔렀다고 한다. 현장에서 10여 명의 아이가 구출되었다. 그 가운데 3명은 수용소로 돌아갔지만 나머지는 마을 주민이 데려갔다고 들었다. --- pp.227~228

자세히 들여다보면 70년 전 오키나와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전투를 벌일 때도 오키나와인은 우치나구치(오키나와의 말)를 썼다. 일본어가 오키나와인의 일상에 스며든 것은 전쟁이 끝난 후의 일이다. 역사 연표의 숫자만 보면 놓치기 쉬운 사실이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와 고모, 삼촌들은 지금도 모이면 이에지마의 언어로 대화한다. 그들에게 모어는 이에지마 말인 셈이다. 나의 일본어가 서툰 이유를 변명하기 위해서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내 안의 오키나와를 멸시하는 잠재의식을 냉철하게 직시하기 위해서다. 본래 이곳에는 일본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 p.238

오키나와에서 ‘나이차’처럼 보이면 따돌림당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가능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부모님이 우치난추임을 주위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나이차는 일본 본토 출신을 가리키는 말로서 지금도 오키나와에서 널리 쓰인다. ‘오키나와 평화학습’을 받으며, 또 친척들과 교류하면서 오키나와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배웠다. 짓궂은 친구들은 ‘후라(바보)’ 같은 우치나구치의 나쁜 말부터 가르쳐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우치난추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 p.252

진로, 친구 관계로 고민하던 시기에 일본의 문화와 풍습을 모르는 부모님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점점 골이 깊어졌습니다. 성장하면서 베트남인이라는 사실이 콤플렉스가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학교에 신문을 가져가야 할 때도 우리 집은 신문을 읽지 않으니 윗집 할아버지에게 빌려야 했습니다. 일본인에게는 당연한 것인데도 부모님은 모른다는 사실에 늘 답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밖에서 바보 취급당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 pp.26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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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일본에서 처음 이 책을 발견하고 손에 들었을 때 반가움과 낯섦을 느꼈다. 재일조선인과 피차별부락, 아이누와 오키나와, 그리고 동남아 이주 여성들의 가족사진과 가족 이야기를 하나로 묶은 이 책은 평범하지 않은 얼굴과 이름, 의상들이 콜라주처럼 합쳐져 다양하고 풍성한 자기서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과거에 이런 책을 본 적이 있었던가?’ 신기한 마음으로 책을 넘기다보니 페이지마다 이질적인 냄새가 풍겼다. 재일조선인들의 사진에서 김치나 참기름 냄새가, 피차별부락 출신자들의 사진에서는 소고기나 가죽 냄새가 전해졌다. 특정 집단과 냄새에 대한 상상력은 사회적 편견과도 깊이 연관된 것이지만, 그만큼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과 그 가족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생생하며 울퉁불퉁한 감촉이 느껴졌다.
전후 일본의 강고한 단일민족 규범 속에서 살았던 마이너리티 여성들의 일상은 상상 이상으로 다이내믹하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반드시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사진이 보여주는, 또는 감추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가혹한 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추체험하게 된다. 해방 후에도 돌아가지 못한 고향에 보내려고 찍은 가족사진, 자이니치 2세인 어머니가 기모노를 입은 사진이 그렇게 자랑스러웠다는 어린 시절, 피차별부락 출신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가족이 겪은 중첩된 차별, 필리핀 집단 자결 현장에서 벗어나 오키나와로 이주한 어머니의 이야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통의’ 일본 사회 혹은 한일 관계에서 떨어져나가는, 그러나 더 일본 근현대의 본질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이다.
나에게도 소중한 가족사진이 있다. 1980년대 일본, 할머니의 환갑잔치 때 가족과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촌스러운 치마저고리를 입은 언니와 내가 머쓱하게 웃고 있다. 이 사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지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서가 아니라, 사진에 찍힌 그 시간이, 그 모습이 현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사진은 가족의 존재의 증거이자, 부재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사진은 이동과 이산을 경험한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책임편집자인 황보강자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재일조선인에게 가족사진은 현해탄을 건너, 또 휴전선을 넘어 가족을 연결해주는 소중한 매체였다. 이 책에 수록된 가족사진들은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향해 찍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보여주는 사진과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진 밖의 일들을 끊임없이 상상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 조경희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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