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JM은 2012년 7월 27일 사측이 노동조합을 깨기 위해서 용역을 고용해 폭력사태를 일으킨 사업장이었다. 경주 발레오만도를 시작으로 KEC,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등 노조파괴 전문회사 ‘창조컨설팅’의 개입으로 민주노조가 차례로 깨지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SJM의 727을 계기로 창조컨설팅의 실체가 드러나버렸고 대표는 감옥에 가야 했다. 이 작은 사업장의 노동조합은 용역에 비폭력으로 맞섰고, 59일 만에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공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잔업특근을 없애고 각종 수당도 통상임금으로 전환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프롤로그」중에서
야간작업을 마친 박선심은 평소처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카드를 찍었다. 막 퇴근하려던 참이었는데 누군가 현장으로 잠깐 모이라고 했다. 2012년 7월 26일 밤 11시 50분이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공장에 모인 사람은 대략 70여 명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긴장된 순간 앞으로 나선 사람은 김영호 SJM 노동조합 지회장이었다.
“지금 깡패들이 우리 회사로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순간 기계까지 작동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박선심은 배신감이 치밀어 올랐다. 20년 넘게 일한 회사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건 정말 아니었다. 어떻게든 공장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선심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깡패 새끼들이 우리 회사에 쳐들어온다는데 우리가 왜 나가요?” ---「727」중에서
작가 누락된 거, 기록하지 못한 것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거 있어요?
정용일 에피소드?
작가 어, 이건 내가 놓쳤다. 근데 되게 중요한 것 같다. 이런 거요.
정용일 용역 깡패하고 조합원들이 싸우는 거는 체크를 했는데, 우리 2층에 올라와 있던 조합원들의 움직임들을 많이 체크 못 했어요. 내가 보면서도 기록을 못 했던 거는……. 2층 사무실 안에서 조합원들이 일심단결해서 뭐 하나 말만 해도 바로바로 움직이는 그런 모습들이 되게 아름다웠어요.
작가 그건 상황일지에는 기록을 못 한 거죠?
정용일 네. 일례로 누가 다쳐가지고 와요. 나는 몇시 몇분에 다쳤다고만 적었지만 그 외적인 거는, 뭣 때문에 다친 건지는. 대충밖에는 못 적었어요. 한 분이 머리가 깨져가지고 왔어요. 왔는데, 여성 조합원이고 남성 조합원이고 모두가 달려와서 피 나는 거 막고 온몸에 피가 범벅된 거 보고 물을 가지고 와서 세수하라고, 피를 닦으라고. 제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조합원들이 스스로 움직여주니까 되게 감동먹었거든요
정용일의 상황일지에 건조한 몇 개 단어로 표현된 기록들은 시어(詩語)처럼 응축된 말들인 것이다. 나는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상황과 거기 있었던 사람들을 상상하기 위해서 정용일이 남긴 글자들을 몇 번이고 고쳐 읽어봤다. 이것은 내가 연극 대본을 쓰는 작가이자 연극 연출가로서 종이 위에 쓰인 글자를 가지고 피와 살을 가진 배우들과 작업할 때 늘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터뷰 하나, 정용일 이야기」중에서
박선심은 그때 상황이 떠오르는 듯 놀란 눈으로 말했다.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당시 혼란스러운 마음을 고스란히 전했다.
박선심 우리 회사 벨로우즈는 칼이에요. 던지기에 참 좋게 되어 있어요. 그놈 가져다 던지면……. 아주 남자들 잡기 좋지. 그걸로 휘파람 불면 쉬익 쉬익 귀신소리 같은 소리가 난다잖아. 그걸로 얼굴 맞은 거 아냐. 거기에 입술을 맞아서 언청이가 된 거 아냐.
박선심이 벨로우즈에 맞아서 ‘언청이’가 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조동주였다. 조동주는 다행히 성형수술이 잘되어서 지금은 큰 티가 나지 않는다.
박선심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차피 나는 그래. 회사가 그랬다고 해도 지금은 다시 들어와서 일을 하니까 이런 얘길 굳이 책으로 내야 하나 싶었는데…… 다음 세대에 남기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우리 회장님이 실수한 거는 안됐지만…… 이건 안 되잖아요. ---「인터뷰 둘, 박선심 이야기」중에서
조동주 1남 1녀예요. 큰애가 스물여섯, 작은애가 스물셋. 희한한 게 뭔지 알아요? 내가 감지를 했어요. 상황이 안 좋다는. 727 터지기 전 몇 개월 전부터 나는 불안한 게 감이라는 게 있더라고.집에서도 누누이 얘기했어. 아빠 회사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잘하라고. 그런데 우리 아들내미가 군대 제대하고 와선 휴학한다는 거야. 공부 안 되는 것 좀 더 해가지고 복학한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하지 말라고. 727 하루 전날 아들내미하고 그런 얘길 하다가 대판 싸웠어요. 아빠 회사도 어려우니까 휴학하지 말고 빨리 졸업해라. 하나라도 빨리 가르쳐야 하니까. 아들놈은 공부가 안 되니까 휴학하고 영어하고 기자 공부 좀 하겠다, 자꾸 강요를 하는 거예요. 주먹까지 가려고 하다가……. 우리 애들 내가 지금까지 종아리 열 대 딱 한 번 때렸거든요, 옛날에. 쌈하다가 잔 거야. 니 알아서 해라 승질내고. 우리 집사람이 맞벌이인데, 2교대라 한 주는 내가 애들 밥을 차려줘야 해서 휴대폰으로 알람을 켜고 자야 하는데 그날따라 알람을 안 켠 거예요. 그다음 날 새벽에 화장실 가려고 눈을 떴다가 휴대폰을 봤어요. 그런데 부재중이 몇 개 찍히고 문자가…… 새벽에 4시 반에. 이게 뭔 일이랴 봤더니, 역시. 야 이거 터졌구나. 아 이거 싸움해야 하는구나. 가슴이 벌렁벌렁하더라구요. 여름이었으니까 반바지 입고 갈까 했다가 아아 이건 아니다 싶어 추리닝 긴 바지에 샌들을 신으려다가 옛날 명동에 집회 갔다가 좆나게 도망간 기억이 나서 아들내미 아디다스, 거의 새거를 신고 간 거예요. (…) 아디다스 괜찮은 신발인데 그거 신고 차 끌고 허겁지겁 간 거야. ---「인터뷰 셋, 조동주 이야기」중에서
정준위 어차피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노동조합이라는 게 눈엣가시 같은 거잖아요. 얘네만 없으면 새로운 것도 해볼 만하고 다른 것에도 한눈팔 수 있는데 얘네 때문에 이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왜? 과도한 복지를 요구하고 과도한 임금을 요구하고 옆에만 둘러봐도 비정규직 파견직 쓰고 반값도 안 줘도 되고 생산비용이 줄어드는데 당연히 그런 생각들이 들지 않을까 싶은 거죠. 하지만 우리도, 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사람인데 사는 데 필요한 돈이 있는 거잖아요. 자본의 입장에서는 우리 노동자들이 도구로서의 역할이냐 인간으로서 존중하며 같이 가는 대상이냐, 도구와 인간 사이에 우리가 놓여 있는 거죠. ‘내가 너네를 먹여 살려야 되는데……’라고 자기들이 베푼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인터뷰 넷, 정준위 이야기」중에서
탱자 껍질 속으로 들어간 유자나무 순이 탱자나무 뿌리가 올려준 수분을 먹고 컸다. 탱자나무 뿌리가 유자를 키운 것이다. 유자나무가 접붙은 줄기 위로는 탱자를 모두 잘라냈다. 영양분이 유자에게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김태환은 탱자가 유자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태환의 형제들은 막내가 대학 가면 모든 것을 다 대주겠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 가려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씨 몇백 개를 갖다놓고 하나씩 구분하는 것을 배웠다. 50개 정도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그때 씨는 색깔을 보고 손으로 만져보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인물 에세이」중에서
2014년 4월 16일 아침, 공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탄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앞집에 사는 큰딸 친구가 수학여행을 가는 중이라고 했다. 아내에게 알아보라고 했더니 그 아이는 속리산인가 설악산으로 가는 중이었다. 얼마 후 애들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더니 다 살았다는 뉴스가 나왔다고 했다. 큰딸이 원래는 1순위로 단원고에 지망했다가 다른 학교로 배정된 터였고 작은애는 단원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큰애 친구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다. 세월호에 탔다가 돌아온 아이가 이따금 밤늦게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잠도 자고 갔다. _ ‘인물 에세이」중에서
Y도 김태환처럼 매형의 소개로 SJM에 입사했다. 그래서 해마다 설날이나 추석이면 배를 한 박스 사다드렸다. 그해 727 직후 추석에 배를 한 박스 사서 사촌누나네를 찾아갔다. 누나가 없어서 전화를 걸어 집 비밀번호를 얻었다. 배 상자를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매형이 싫으니까 가져가래.
그는 누나네 집으로 돌아가서 배를 다시 가져왔다. 가게에 가서 영수증을 보여주고 반환했다. 자신이 먹기에는 너무 좋은 배였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