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사의 재구성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거대 서사의 정교한 재구성이다. 남녀 사이의 다양한 차이, 여성 사이의 차이, 그래서 생겨날 수 있는 서로 다른 정체성 등 결국 여성사는 이런 차이들을 어떻게 역사화할 것이냐 하는 난해한 과제에 도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층적인 접근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특정 여성 집단이 지닌 독특성뿐 아니라 비교 가능한 타 여성 집단과의 공통성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들이 처한 현실적인 조건의 차이나 복수적 정체성에 민감하면서도 동시에 여성들 사이의 공통성을 찾아내고, 나아가 역사 속에 존재했던 여성 사이의 집합적 행위들, 즉‘수평적 연대의 정치’를 복원해내야 할 것이다. 지금껏 진행된 역사의 세분화나 해체는 많은 경우 비정치적인 전문성에 근거한 것이었고, 이는 현행 역사 연구나 역사 교육에서‘불길한 무책임의 시대’를 낳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서는 여성사 연구도 예외일 수 없다. 새로운 거대 서사의 구성을 위해서는 정교한 역사 연구와 그 전망에 기초한 새로운 합의의 도출이 필요하다. --- pp.10~11「들어가는 말」중에서
전투적인 아마조네스 국가는 아킬레스에게, 그리고 테세우스에게 패하고, 마지막으로 단행한 아테네 원정에 실패함으로써 주변의 부권제 국가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러한 설화는 특히 소아시아 일대에 널리 퍼져 있다. 바흐오펜은 이로부터 모권제 사회의 근거를 찾아내고, 일련의 잔학한 행동 끝에 여성들이 패배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확실히 아마조네스 설화에서는 정치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의도가 짙게 배어나온다. 여성의 잔혹성에 대한 과장이나 그 드라마틱한 패배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신화는 한편으로는 여성의 반란에 대한 두려움을, 다른 한편으로는 정의와 질서와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아테네 사회는 여인이 지배하던 야만사회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 p.91 「여성 업악의 기원을 찾아서-원시 고대사회의 여성들」중에서
노동, 자기 규율, 감정 통제를 높이 평가하는 시민사회는 인간의 성을 통제하기 위해 ‘정상성’의 개념을 규정하고, 일탈 행위를 진단·제한·치료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성은 남성의 경우보다도 훨씬 많이 논의되었는데, 특히 논쟁적인 점은‘여성이 강한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있는가’였다. 다양한 반론이 있기는 했지만 19세기의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여성의 성욕은 남성보다 약하다’는 것이었다. 여성은 남성보다 성행위에 관심이 적고, 정신적 관계나 다정다감한 배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해서도 다양한 토론이 있었고, 이미 설정된 성 경계로부터의 일탈은 병리적인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 pp.188~189 「자본주의와 노동, 그리고 가족 속에서-근대의 여성들」중에서
새로운 소비문화는 여성의 지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물론 새로운 가전제품에는 여성의 노동력을 절약시켜주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여성의 가정적 역할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베티 프리단에 따르면, 새 가전제품을 가동하면서 미소 짓는 행복한 가정주부를 보여주는 광고는 이 시기를 상징하는 이미지인데, 이는 여성의 가정 내 역할을 강화하는 기능을 했다. 광고는 남편에게 아내의 세탁을 돕기 보다는 세탁기를 사줄 것을 촉구했다. 광고는 이런 식으로 여성의 전통적인 의무를 더 확대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새로운 기술은 가정 내 노동 분업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250 「4장 타자에서 주체로-현대사 속 여성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