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유진을 빤히 바라봤다. 보답으로 우유를 가져다준 게 인연이 되었지만 너무도 많은 걸 베풀어 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마음씨 좋은 청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할머니는 몇 번 망설이다가 결국 이번 기회를 빌려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는 거유?” “제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태 염치없이 받기만 했는데 이건 아니야. 자꾸 이러면 부담 돼.” “압니다. 하지만 그냥 받으셔도 됩니다.”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에 할머니가 먼저 입을 다물었다. 유진은 은은한 미소를 뿌리며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응?” 할머니가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이 유진의 입이 열렸다. “한 갓난아이가 있었습니다. 생후 두 달이나 됐을까요? 그 아이는 이름도 없었습니다.” “…….” 할머니는 느닷없는 유진의 말에 의아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인지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던 할머니가 이내 유진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유진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아이는 추운 겨울날 버려졌습니다.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으로 가야했지요…….” 그렇게 시작된 유진의 이야기가 조용한 병실을 울렸다. 모든 이야기를 쏟아 낸 유진이 마지막 말을 꺼냈다. “……그 아이가 이젠 가족을 만들려고 합니다. 연로하신 할머니를 모시고 싶고, 두 조카도 키우고 싶어 합니다. 그들이 허락해 줄까요?” 유진은 질문을 마지막으로 말을 마쳤다. 그리고 진중한 눈빛으로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의 눈에는 옅은 물기가 머금어지고 있었다. 툭툭. 아주 작게 그리고 부드럽게 손을 토닥인 할머니가 촉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어린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꼬.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꼬.” “이젠 웃고 살려고요. 새로운 가족들하고 환하게. 그리고 행복하게요.” 유진은 울지 않았다. 울면 자신의 과거를 미워하고 부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은 웃어야 했다. 누구보다 밝은 얼굴로 자신이 얼마나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지 내보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