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라비아 여성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도 노동력의 주공급원이었다. 계층에 따라 여성이 살아가는 모습은 달랐지만 아라비아 여성은 자신의 고유 업무였던 가사와 육아 외에도 가족과 부족원을 먹여 살리며 돌보는 역할을 떠맡았다. 부족 간 전투가 없던 평화로운 시기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노동을 했다. 자유인 여성은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실잣기, 옷감 짜기, 천막 수선 등의 일을 했으며, 가난한 여성이나 노예는 주로 집 밖에서 하는 우유 짜기, 낙타나 양 돌보기 등 목축 일을 도맡았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아내들도 스스로 바느질을 하며 직접 자신의 옷을 짓고, 이를 시장에 팔아 생활을 유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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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패배가 예상되면 부족장은 ‘승리의 여성’이 타고 있는 낙타의 뒷다리를 잘라 부족 전사들의 후퇴를 막았다. 그러면 부족 전사들은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승리의 여성을 지키며 명예로운 죽음을 택했다. 즉, 전장에 부족 여성을 대동하는 것은 전의를 북돋우는 것 외에도 부족 남성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때 여성들은 부족 남성들의 용기와 명예를 보증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아랍 부족들은 자신의 여성을 전장 주변에 두지 않고 싸우면 겁쟁이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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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산업은 자본 집약적 분야로 이미 고용 창출에서 한계에 봉착했으며, 이제는 산업 다변화와 민영화 없이 노동시장에서 자국민 노동자를 흡수할 방법은 없다. 걸프 지역 젊은이들의 실업 문제는 정권 안정 문제와 직결된다. 따라서 걸프 정부는 노동력의 자국민화와 경제 다변화 정책을 통해 젊은이들의 실업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유휴 인력으로 간주되던 자국민 여성을 미래의 가치 있는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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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여성들은 국가의 현대화 과정에서 버렸던 아바야를 다시 입고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한때 무지와 미개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여성들로부터 버려졌던 아바야는 이라크의 점령 동안 저항과 도전의 상징으로 부활한 것이다. 아바야 덕분에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아바야를 입은 여성은 옷 속에 의약품과 음식물, 돈이나 중요 문서를 전달하는 메신저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는 길거리마다 배치된 이라크 병사들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집에만 머물던 남성의 상황과 대조적이었다. 이라크의 침략 동안 이라크 군인들의 감시를 피해야 했던 쿠웨이트 남성들의 활동은 줄어든 반면에 여성들의 활동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걸프전과 여성의 역할을 연구한 바드란(Badran)은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 여성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쿠웨이트 여성의 저항운동은 새로운 공적 여성과 사적 남성의 등장을 의미한다. 공적 공간에서 여성의 활동이 눈에 띄기 시작한 반면에, 남성의 활동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성은 보호하고, 남성은 보호를 받았다. 저항 기간에 젠더 역할과 공간의 이용은 반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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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프로 히잡은 무슬림 여성의 신체 활동에 부정적인 이슬람 사회의 논란에 대응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슬림 여성은 프로 히잡을 착용함으로써 터부시되던 공공장소에서의 체육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자신의 도덕적 이미지와 종교적 가치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즉, 나이키는 무슬림 여성도 여느 여성처럼 스포츠 활동을 즐기면서 동시에 문화적 가치를 수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글로벌하면서 동시에 로컬화된, 그리고 세속적이면서 동시에 종교적인 무슬림 여성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이키의 전통적인 캐치프레이즈 “저스트 두 잇(Just Do It)” 메시지를 통해 무슬림 여성이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임을, 의존적이 아니라 독립적임을, 주변인이 아닌 주인공임을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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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여성의 존재가 할랄 경제성장에 따른 이슬람 소비주의 확산으로 ‘보이지 않는’ 문화 코드에서 ‘보이는’ 문화 코드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슬람 소비주의 틀 내에서 무슬림 여성은 베일을 글로벌 패션 문화와 부합하도록 재해석해 새로운 스타일의 패션 아이템으로 창출하고 있다. 즉, 베일을 통해 젊은 여성들은 종교 문화와 세속 문화, 글로벌 문화와 지역 문화,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 보수적인 문화와 개방적인 문화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패션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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