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부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흥부전》
놀부와 흥부의 재산 분배에 관해서는 세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어.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가설은 부모가 공평하게 유산을 분배하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놀부가 부모의 뜻을 무시하고 재산을 혼자 차지했다는 거야. 예나 지금이나 부모는 죽기 전 자식들에게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지 유언을 남기거나 평소에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 두잖아. 욕심 많은 놀부라면 부모의 유언과
상관없이 재산을 혼자 차지했을 수도 있어.
두 번째 가설은 이거야. 조선 시대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경국대전》을 보면 재산의 분배는 부모의 삼년상을 마치고 나서 형제자매들이 모여 결정한다고 되어 있는데, 놀부와 흥부의 경우 너무 착해서 어떤 주장도 하지 못하는 흥부를 무시하고 놀부가 재산을 독차지했을 수도 있어.
세 번째 가설은, 놀부와 흥부의 부모가 살아생전 놀부에게 거의 모든 재산을 주기로 하고 흥부에게는 쥐꼬리만큼 주기로 했는데 놀부가 이마저도 흥부에게 주기 아까워서 모두 차지했다는 거야.
추측은 다양하게 할 수 있지만 이 모든 상황에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어. 이 세 가지 가설 모두 놀부가 장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거야. 부모가 놀부에게만 재산을 물려줬다면 그가 장남이기 때문이고, 부모의 뜻이 아니었어도 그가 장남이기에 흥부를 윽박지를 수 있었던 거야.
(본문 29-30쪽에서)
찰스 디킨스와 찰리 채플린은 닮았다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가 활동할 당시에는 낭독회가 작가들의 중요한 수입원이었어. 작가가 청중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는 거지. 디킨스는 말솜씨도 좋았대. 낭독을 어찌나 실감나게 잘했던지, 그가 낭독회를 하면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해.
어릴 때 가난에 시달렸던 탓에 어른이 되어서는 병적으로 돈에 집착한 디킨스는 돈이 되는 낭독회를 염두에 두고 유머러스한 필체를 고수한 것인지도 몰라. 낭독회 내내 진지한 글만 낭독하면 청중이 지루해할 것 아냐. 찰리 채플린이 자본주의나 독재와 같은 거대한 사회문제를 비판하면서도 시종일관 관객을 웃겨 부와 명성을 얻은 것처럼, 찰스 디킨스도 아동노동이라는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올리버 트위스트》에 유머라는 양념을 넣어서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잡았다고 볼 수 있어.
(본문 60쪽에서)
가난은 정말 예술가의 원동력일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도스토옙스키는 마흔여섯 살에 스무 살의 안나와 결혼했어. 그러면서 그의 인생은 장밋빛으로 변하기 시작했지. 사치와 당구를 좋아하던 철부지인 그를 대신해 현명한 안나는 각종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경제적, 심리적 안정을 찾아. 안나는 도스토옙스키가 걸어 다니면서 중얼거린 원고 내용을 받아 적은 뒤 정확하게 다시 정서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인쇄해 판매하는 수완도 발휘했어. 스무 살 안나가 마흔여섯 살의 철부지 도스토옙스키를 빚에서 구출해 난생처음으로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게 해 준 거야. 안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저작물을 관리하는 출판업자가 되었고, 인세를 고정적인 수입원으로 만들었어.
(본문 64-65쪽에서)
농약에 중독된 세상을 구하는 법 《침묵의 봄》
어쨌거나 농산물을 공산품처럼 대량생산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농약은 필요악이라고 봐. 그나마 살충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않도록 규제하고, DDT처럼 인체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는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은 《침묵의 봄》의 공이 커. 1939년만 해도 DDT는 해충을 박멸해 인간의 식량을 보호하는 기적의 살충제로 여겨졌어. DDT를 개발한 스위스의 화학자 폴 멀러는 노벨상을 받았지. 이 살충제는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광범위하게 쓰였는데, 전쟁 중에는 수천만 명의 피난민과 군인의 몸에 뿌려 이를 제거하는 데 쓰이기도 했어. 1950~60년대 우리나라 기록영화를 보면 군인들이 사람들에게 하얀 약품을 마구 살포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그 약품이 바로 DDT야.
당시 사람들은 DDT를 마법의 약처럼 여겼어. 당장 부작용도 없었고. 그런데 《침묵의 봄》을 통해 DDT가 인체에 서서히 흡수되어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는 사실이 밝혀졌어. 먹이사슬을 따라 다른 생물체로 전해질 뿐만 아니라 모체에서 자식 세대까지 전달된다는 사실도 알려졌지. 게다가 DDT에 내성을 가진 해충이 등장했고, 독수리와 같은 맹금류가 DDT에 피해를 입는 문제도 발생했어.
농약업계는 이 책이 판매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했어. 레이첼 카슨은 굴하지 않고 대중에게 계속해서 살충제의 위험을 알렸지. 《침묵의 봄》이 출간되고 몇 년 뒤 DDT가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공론화되었고, 마침내 사용이 금지되었어.
(본문 166쪽에서)
재미없는 책은 읽지 않아도 된다 《말하는 보르헤스》
주석은 본문의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하게 해 주고, 좀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어. 하지만 보르헤스는 주석과 참고 문헌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더구나. 문학 교수로 일할 당시 그는 학생들이 참고 문헌을 알려 달라고 하면 참고 문헌은 중요하지 않으니 작품을 직접 읽으라고 권했다고 해. 셰익스피어든 존슨이든 작가들은 자기 작품에 대한 참고 문헌을 알지도 못했고 예측할 수도 없었으므로 읽을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 작품을 쓴 작가도 모르는 참고 문헌을 읽을 필요가 있냐는 것이지. 주석과 참고 문헌은 애초에 작가가 쓴 것이 아니잖아. 작가가 남긴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즐기면 그만이지, 주석에 매몰되어서 읽는 즐거움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어.
또 보르헤스는 재미없는 책은 억지로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 나한테는 이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몰라. 사실 나는 재미없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책이라도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어. 아직도 읽던 책을 던져버리는 것은 내게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 그래서 흥미를 끌지 못하는 책은 나를 위해 쓴 작품이 아니니 한쪽에 그냥 놔두고 재미있는 다른 책을 찾아보라는 보르헤스의 충고는 특히 통쾌하게 느껴져.
(본문 195-196쪽에서)
수집을 위한 수집은 하지 말자 《수집이야기》
2015년 한국코카콜라에서 코카콜라 100주년 기념으로 그간 출시된 한정판 코카콜라 병 전시회를 열었어. 이 행사에서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 병들은 전부 김근영 씨를 비롯한 국내 수집가들의
수집품이었지. 그들이 없었다면 이 행사 자체가 열릴 수가 없었어. 수집은 다른 사람과 함께 보는 즐거움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게 되지?
스타벅스 텀블러를 수집하는 추형범 씨도 다른 사람과 함께 보는 즐거움을 실천한 수집가야. 2013년 〈여가의 새 발견〉이라는 전시회가 열렸어. 스타벅스 텀블러, 레고, 바비 인형, 구체관절인형 등의 개인 수집품을 전시했지. 이 행사에 추형범 씨도 참가했어. 수백 개의 텀블러가 전시된 모습을 보고 관객들은 하나의 예술 작품 같다며 감탄했어.
추형범 씨는 개인 블로그 대문에 “스타벅스 텀블러는 절대 팔지 않습니다.”라고 써 두었을 만큼 텀블러에 대한 애착이 대단한 사람이야. 수집품을 팔기도 하는 수집가도 많은데, 추형범 씨는 자신이 입수한 텀블러는 절대 팔지 않는다고 해.
전시회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추형범 씨 입장에서는 전시를 위해 이동하거나 배치하는 과정에서 소장품이 파손될 가능성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기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한 것이지. 야나기 무네요시의 지론을 실천한 모범 사례야.
(본문 201쪽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의 힘 《소년기》
넌 잘 모르겠지만 네 할아버지, 즉 내 아버지는 내가 군대 생활을 하던 중에 돌아가셨어. 살아계실 때 어떤 주제를 두고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지. 경상도 산골에서 자란 내 나이 또래에서는 그리 특별한 경우도 아닐 거야.
지금도 안타까운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키울 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예를 들면 이런 거야. 나에게 아버지는 늘 무서운 존재였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나가시면 울면서 동네 어귀까지 쫓아갔어. 그게 늘 이상했어. 언젠가 요양원을 찾아서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이야길 여쭤 봤어. 수십 년 묵은 수수께끼는 금방 풀렸어. 아버지는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다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셨대. 나는 그 기억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울면서 아버지 뒤를 쫓아간 것만 기억한 거야.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았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아버지를 엄한 분으로만 알았을 거고, 그런 분을 왜 그렇게 울면서 쫓아갔는지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해.
(본문 222쪽에서)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