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젊은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젊은 여성들의 능력을 탓하기 바빴다. 구색 맞추기로 딱 한 명, 아주 소수의 여성이 정치에 진입하는 것을 허가하고 그들이 여성혐오와 외롭게 싸우는 동안에는 방관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마침내 나가떨어졌을 때 “거봐, 여자들은 멘탈이 약해서 안된다니까”라는 말을 뒤에서 했다. 나는 정치하는 이대녀가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 언제까지 자원과 동료 없는 판에 이대녀를 밀어 넣고 그들을 탓하고만 있을 것인가.
--- p.24
페미니즘 때문에 이대남이 떠나갔다고 하지만 정작 떠난 건 이대녀였다. 낮은 출생률은 여성 탓을 하면서 여성의 건강권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해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평생 여성운동과 함께했다면서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무책임한 죽음을 택해서 이대녀는 떠났다. 그래서 대안적인 정당, 새로운 후보, 다른 정치를 찾아 이것이 ‘우리의 정치’라고 말했던 거였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아니라 정치가 우리의 문제를 소외시킨 것이라고. 이것이야말로 아주 정치적인 일(…)이라고, 이대녀의 표는 말하고 있었다.
--- p.32~33
청년 여성들도 심상정 후보와 김재연 후보가 거대 양당 후보에 비해 당선 확률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여성 후보들을 지지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많은 언론이 분석하는 대로 ‘거대 양당 체제에 대한 분노’도 시사점이겠지만, 나는 이대녀가 분노로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것은 이대녀의 새로운 투자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맞다.
--- p.49~50
정치권이 번역하고자 하는 ‘남초’의 합의란 ‘평등은 불공정하다’는 믿음,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그리고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 ‘역차별’이라는 믿음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이 믿음들 속에서,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은 체계적으로 무시당하고 배제당한다. (…) 남초의 지향을 수식하는 ‘공정, 합리성, 경제적 이득 논리, 실용주의’ 등의 말들은 결국 차별과 혐오의 논리에 맞닿아 있다.
--- p.57~58
책상을 치며 호통치고, 폭탄주를 돌리며 남자들끼리만 으쌰으쌰 하는 호모소셜(homosociality, 같은 성끼리의 강한 유대감) 정치는 여성이 주요한 결정권을 갖는 것을 막았다. 남성이 싸우는 동안 여성은 뒤에서 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 역할을 거부하는 사람은 별종 취급을 당했다.
까놓고 말해, 엄마도 책상을 치며 호통칠 수 있고, 폭탄주를 돌릴 수 있고, 다정하고 온건한 말투 대신 강하고 사나운 말투를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폭력적이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리더십은 끊임없이 탐구되어야 하지만, 그 리더십이 여성의 ‘선천적인 능력’에 기반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한 믿음은 여성의 성역할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 p.82~83
선거에서 차악을 선택하긴 쉽지만, 최선을 택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그 2600명이 용기 내어 자신들의 최선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안다. ‘버려질 표’라는 말을 듣고도 그들은 선거에서 자신의 미래를 선택했다.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정치는 나에게 등을 돌렸지만, 은평에 사는 한 줌의 페미니스트들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 이름을 가진 여자들과 세상에 없는 선거를 했다. 정치가 등을 돌릴 때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정치는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92~93
알페스 처벌법이 문제적인 것은 그런 기획을 국회 차원에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국회는 ‘여성’들의 문화에도 (마치 남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는 요구에 응답하면서, 디지털 성폭력의 지난한 역사를 일종의 영역 싸움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켰다. 알페스 처벌법은 그 모욕의 증거다.
--- p.111~112
‘멘토스 혁명’. 에브리타임에선 우리 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을 이렇게 불렀다. 총학생회에서 투표 독려를 위해 멘토스라는 이름의 사탕을 나눠 주어서 붙은 이름이었다. (…) 많은 사람들은 곧바로 이어진 다른 대학들의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에서도 투표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민주성보다는 투표의 결과가 담보하는 민주성에 집중했다. 그리고 총여학생회라는 형태가 낡아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말 그 역할을 다해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것이었다면 ‘혁명’이라는 말까지 동원될 필요가 있었을까.
--- p.118
국회에서 허용하지 않는 것이 바지인가 원피스인가는 다르지만 분명 그 두 시대는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여성 의원은 한 사람의 정치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여성으로 먼저 간주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겪는 일들은 이 세상에서 수많은 여성이 겪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 p.173
‘그런 게 아닌 정치’, 가혹한 선택을 필요로 하는 정치는 그들의 정치다. 예전에 선배가 나에게 “정치는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그런 게 아닌 정치’에 나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 물론 이대녀들의 정치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최소한 그런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변덕스럽거나, 이해할 수 없거나, 궁금하지도 않거나, 중요하지도 않은 의제들에 휩쓸려가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우리의 정치를 하고 있었다.
--- p.200~201
이런 이야기를 하면 50대 정치인들은 혀를 찰 것이다. 현실을 모르고 이상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들이 살아낸 현실에서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나의 현실이 있다. 그리고 나의 현실에서 성평등은 이상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과 가장 가까운 정치다.
--- p.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