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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여기는 지금 어디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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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여기는 지금 어디쯤인가

: 장재인 유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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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20*195*20mm
ISBN13 9791160350173
ISBN10 116035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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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오늘도 가고 어제도 갔다
시간만 가고 마음은 남는 자리
내일을 캐면 토라지는

그대여 여기는 지금 어디쯤인가

보는 이 없어 아직은 수줍은
핼쓱해진 뜻 언저리
어이해서 무쇠 같던 몸
안개처럼 녹아내리고
오늘도 생가지 하나
거덜이 나지만 아픔을 잃어
저어하는 고목

그대여 나는 이제 누구인가
대답하라

지금 여긴
마른 바람이 종일 덜컹거린다
도시를 휘감은 산줄기

거대한 숯덩이로 꺼지며
죽는 연기를 뿜어대고

무덤 같은 살덩이들이
감히 나를
샛길 모르는 천치 바보라고
빈정대다 잠이 들었다
캄캄해질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어두움에 빛나며
나는 묻노니

그대여 대답하라



별을 알기 전
가득함을 알았지만
별을 알고 나서
빈 마음을 알았습니다

별을 알기 전
신념의 풍요를 알았지만
별을 알고 나서
풍요는 갈증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던가 별이 들어온 날
가슴은 별로 가득하였지만
그때부터 한구석 빈 마음임을
깨달았습니다
별을 알기 전
고요인 줄 알았던 것은
별을 알고 나서
그것이 소용돌이임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가슴에는 별을 향하여
길이 생겼습니다

유서

세상을 붙잡으려다 처자를 버리고 이제는 처자를 부여안기 위하여 세상을 버리려 합니다. 불행한 사람의 삶에 뛰어들어 고생만 하던 고마운 아내, 아들의 뒤를 따라 다시 강으로 뛰어들어갔다는 아내처럼 저도 처자를 찾아 떠나려 합니다. 이것은 사고 현장에 도착한 이래 강물을 바라보며 제 마음에 살아오는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행여 살아남아 보람된 일을 해야 한다는 생의 의무감을 생각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지만 저희 세 식구가 지금 쓰라린 사랑의 메시지보다 더 생생한 경종이 어디에 있겠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일깨우고자 하는 생을 초월한 선택이 어찌 소극적인 결심일 수 있겠습니까?
처자의 삶의 자리를 차분히 정리하여 복받치는 설움으로 그들의 냄새를 흠뻑 마시며 남은 분들에게 짐을 덜어 드리고 싶었지만 저의 자리마저 그대로 남기게 되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처자를 실어간 섬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제가 기원한 것은 처자를 다시 만나고자 하는 소망이 동요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러한 결심 이후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유대가 저를 괴롭힙니다.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 양가의 아우들, 친척 어른들, 부모 이상으로 저의 삶을 지탱하여 주시던 서울 인헌고둥학교 류길상 교감 선생님, 덕수상고 이종성 교무주임 선생님,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정든 벗들, 친지들, 사랑스런 제자들. 저희 학급 학생들을 이종성 교무주임 선생님께 부탁 드립니다. 그동안 저의 수업을 대신하여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부디 처자를 따라간 저의 죽음을 애통해 하지 말 것을 이분들에게 당부 드리며 오히려 세 식구의 하늘나라에서의 다시는 헤어짐 없는 만남과 행복을 기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분들은 제가 없어도 능히 견디실 수 있지만 저희 세 사람은 함께 있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략)
저의 죽음으로 인하여 야기될지도 모르는 책임문제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죽음은 저의 간곡한 소망이었으므로 어느 누구라도 이에 대하여 문책하는 것은 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며, 특히 여주군 관계자를 문책하는 일이 없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사랑스런 아내와 자랑스런 아들을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더 없이 평온하고 즐겁습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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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떠나고 한 권의 시집으로 우리 곁에 남았던 그는 새로워진 시집으로 다시 우리에게 다가온다. 변함없는 32살 청년의 환생이다. 그가 중시하거나 이루려고 몸부림쳤던 민의, 민권, 자유, 평화, 외세 없음(자주), 민족, 통일 등은 일부 개선되었거나 진전과 후퇴를 거듭하며 아직도 우리의 과제로 남아 있다. 좋은 세상을 열기 위해 그가 걸었던 길을 우리는 다시 마주하게 된다.
- 개정판 발문 중에서(백우선 시인)

너무나 허망하게 이 세상을 하직한 그에 대한 분노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 완벽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 사회에 대한 저주 때문일까? 가족, 친구, 제자들의 오열 속에서도 이상하리만큼 나는 냉정해졌었다. 그의 동생 재을로부터 생전에 그가 썼던 노트들을 넘겨받아 이 책의 원고 정리를 끝낸 날 새벽, 나는 마침내 오열을 터트리고 말았다. 너무나 견고하고 흔들림없는 그와의 대결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 초판본 편집후기 중에서(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재인이 죽고 난 후 병원 영안실로, 장례식으로 여성잡지들 따위에서 취재를 왔을 때 그 잡지와 찾아온 기자들을 나는 경멸했다. 재인의 죽음 역시 순애보 어쩌구하며 결국 잡지를 잘 팔기 위한 자본 증식의 도구여야 한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내심으로는 또 재인의 일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랐다. (중략) 이 자기모순을 나도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지금 나는 나의 글쓰는 행위가 그의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면서 나는 그가 아내와 아들을 따라간 순결한 남편으로도 남기를 원하지만 이 땅에 한 사람의 시인으로도 남기를 원한다.
- 초판본 발문 중에서(신현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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