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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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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걷기로 했다

: 네팔 히말라야 횡단 트레킹 2165킬로미터, 338만 걸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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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3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96쪽 | 790g | 160*220*30mm
ISBN13 9788958205166
ISBN10 895820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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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히말라야에 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그곳은 내게 너무 먼 세상이었다. 국내의 산들만 부지런히 다녔다. 그러다 인터넷에 떠돌던 네팔 무스탕 지역 사진에 반해 아무것도 모르고 떠났다. 자발적 백수가 된 첫해였다. 인연은 묘하게 흘러갔다. 무스탕에서는 폭설을 만나더니 이듬해 네팔에서는 지진을 만났다. 두 번 모두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다음해 다시 또 네팔을 찾았다. 세 번째 찾은 히말라야에서 막연하게 생각하던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히말라야가 어마어마하게 넓고 크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감했다. 그때부터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이미 네팔 히말라야의 3분의 1을 걸었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쪽에서 서쪽까지 길을 잇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네 번째 네팔 트레킹을 준비했다. 어떤 사람은 계절이 좋지 않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너무 성급하다고 했다. 그래도 가고 싶었다. 가고 싶을 때 가야 했다. 수도승처럼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사람처럼 그곳으로 떠났다.”

“걷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요동칠 때가 있다. 20년도 넘은 기억이 슬금슬금 기어나와서 어쩌라는 건지. 기억이란 무서웠다. 작은 머리통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생각이 때로는 끔찍할 정도로 지겹다. 그렇게 생각의 범람을 겪다 보면 어느 순간 고요해질 때가 있다. 한차례 몰아치는 폭풍우처럼, 그렇게 지나고 나면 걷고, 먹고, 싸고, 자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사람들의 고민이란 다 거기서 거기, 정말 위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고민이 더 커 보이지만, 다른 이들의 고민과 별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고민은 하찮은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같은 고민을 하겠지만 그것 역시 그러려니 한다. 나는 나 자신과 싸우기보다 설득하고 싶다. 내가 왜 이런 길을 걷고 왜 이런 수고를 하는지에 대해 나를 설득하면 나도 알아듣는다. 내 안의 나는 나일 것 같지만 내가 아닐 때도 많아서 가끔은 설득이 필요하다.”

“트레킹하면서 빨래를 하고, 널고, 개는 일이 꽤나 즐거웠다. 잘 말라가는 빨래를 보면서 상당한 위안을 받았다. 혼자 있어도 늘 방 안의 짐을 가지런히 정리했고 정리가 되어야 편안함을 느꼈다. 단 하루라도 휴식은 정말 중요했다. 적절한 휴식이 있어야 멀리 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살면서 휴식에 참 인색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허투루 쓰면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젠 가끔씩 시간을 허투루 써볼 생각이다.”

“6,000m가 넘는 고개를 넘겠다고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다. 무거운 클라이밍 장비를 여기까지 가져오느라 많은 사람을 고용했다. 마칼루를 등반하는 사람들에게 6,000m는 베이스캠프에 불과하다. 8,000m 넘는 곳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6,000m는 시작이지만 내겐 끝이 되는 높이다. 네팔 GHT 하이루트 구간에서 최고 높은 곳. 어쩌면 거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선 높은 곳도 낮은 곳도 모두 히말라야인데 높은 곳만 히말라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인생은 상상한 대로 흘러가는 게 맞을까. 내 인생에 히말라야가 있을 줄은 몰랐다. 가장 쉬운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조차도 어려운 곳이라 생각했다. 내겐 국내 산행이 전부였고 히말라야는 언제나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던 내가 네팔 히말라야 횡단을 하겠다고 길을 나섰으니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빈곤한 경험 덕분에 고생도 많고 돈도 많이 들었지만 모두가 경험을 얻기 위한 대가였다. 경험이든 깨달음이든 삶은 거저 주는 법이 없다. 경제적인 손실이든 마음의 상처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했다. 헉헉대며 걷다가 뒤돌아보면 꿈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고, 그때마다 마음은 날개를 달았다. 30센티미터쯤 되는 보폭이 하나하나 쌓여 몇 십, 몇 백, 몇 천 킬로미터까지 갈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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