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 시대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요즘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꽤 오래 삽니다. 문제는 수명의 증가 속도만큼 인간으로 품위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건강수명은 빨리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평균 10여 년의 차이가 납니다. 우물쭈물하다 보면 중병에 걸리지 않는 행운이 있어도, 10년이 넘는 기간을 이런저런 병들로 고통을 받습니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건강한 삶의 바탕을 위한 지식은 고갱의 작품명처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기초해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 내는 지도 위에서 정확한 좌표를 설정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많이 축적할수록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다양한 환자분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저분의 병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간단히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과연 ‘인간이란, 생명이란 무엇인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면서 이른 생각은 인간이란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생태계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우리가 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구상에서 시작된 생명 역사의 최신판을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는 오랜 기간 생존하고 변화해 온 생명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따라서 건강하게 잘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이 생태계를 좋은 상태로 잘 유지해야 합니다. 건강에 어떠한 문제가 생겼다면 특히 중대한 문제일수록 문제 자체에 매몰되지 말고 내 내부의 생태계에서 어디에 불균형이 생겼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우리가 퇴행성 관절이라 부르는 질환도 절대적으로 많이 써서 수명이 짧아진 경우도 있지만, 한 부분에 일어난 문제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한 결과인 경우도 있습니다. 즉, 전체적인 물리적 구조의 일부에서 일어난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우리 몸은 그 상태에 적응해 나가면서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 균형은 틀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불안정을 가져오지요. 이러한 현상이 오랜 시간을 두고 도미노현상처럼 일어나면, 결국 특정 관절이 무리하게 되어 퇴행성 변화가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수술을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할 수 있지만, 전신의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해 주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 또 다른 관절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합니다.
--- 본문 중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변화하는 환경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아픈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지구적 수준의 환경재해나 핵전쟁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꽤 빠른 속도로 이번 알파고가 일으킨 긴장과 불안이 상상하는 그 방향으로 변화해 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낙오되고, 그로 인해 아파하겠지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그리고 연대를 통해 준비하지 않으면 조만간 꽤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 본문 중에서
현대인이 과거의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것 같지만 실제 절대수명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오래 살게 된 사람의 숫자가 증가한 것이라고 하지요. 같은 몸을 가지고(물론 진화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좀 더 오래 살게 됨으로써 증가하는 다양한 질환들이 있는데 요통 또한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직립보행이라는 모험을 선택함으로써 가해지는 구조적인 부담과 개개인의 체질적 소인과 누적된 생활습관적 요인이 더해져 요통이라는 또 하나의 의료 시장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 본문 중에서
현대인의 폐를 힘들게 하는 것은 공기의 질만은 아닙니다. 의서에서는 폐를 상하게 하는 요인으로 형한음냉形寒飮冷을 말합니다. 몸을 차게 하는 것과 냉한 것을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이 더워지면서 시작된 냉방 그리고 차가운 음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대표적이지요. 여름감기가 유행하는 것 또한 이러한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낮은 온도 자체가 주는 영향과 함께 호흡에 관여하는 근육들을 긴장시키기 때문에 충만한 호흡을 방해합니다. 여기에 심리적 스트레스와 커피나 흡연과 같은 신경계를 긴장시키는 요인들이 더해지면 폐는 더욱 힘들어집니다. 또한 과도한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사용은 구부정한 자세를 만들어 폐가 위치한 흉곽을 압박합니다.
--- 본문 중에서
넘치는 건강 정보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많은 분들이 특별한 무언가를 먹으면 병을 치료하고 좋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늘 먹고 있는 식사입니다. 그리고 그 식사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식재료입니다. 재료가 건강하지 않으면 입을 즐겁게 하는 맛을 낼 수는 있어도 건강에 도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병든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다 보면 내 몸과 마음 또한 병드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 본문 중에서
한의학에서는 울증鬱症이라고 표현하는 병증이 있습니다. ‘鬱’ 자는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이 술이 들어 있는 술독을 안고 숲속에 고꾸라져 있는 모습이라고 풀이 하는데, 가슴의 답답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글자이지요. 울증은 이처럼 속에서 뭔가 꽉 막혀서 소통이 잘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기의 흐름이 막히면 체액이 정체되어 습기가 생기고, 이것을 소통시키기 위해 우리 몸이 애를 쓰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합니다. 이 단계에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열이 체액을 졸여서(잼을 만들듯이) 담痰이 생기고, 이 담이 혈액의 흐름을 막는 상태가 오래되면 적취라고 불리는 유형의 덩어리가 몸속에 생긴다고 봅니다. 그래서 증상의 시발점이 되는 기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을 울증을 치료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기의 흐름을 막히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감정(七情, 칠정)의 부조화입니다. 따라서 치료를 통해 기를 소통시키고 화를 내리고 담을 삭이면서 환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불균형을 함께 해결해야 울증을 잘 치료할 수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한의학에서는 인간의 대표적 감정을 기쁨, 분노, 슬픔, 걱정, 생각, 놀람, 두려움의 일곱 가지로 대별하고, 이 칠정의 변화가 기의 흐름에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오장육부를 포함한 신체적 반응을 일으킨다고 봅니다. 좀 다르게 표현하면 감정의 변화는 뇌와 신경계가 반응하는 방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재구성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외부와 부딪칠 때 맨 처음 발생하는 것이 감정이므로 이것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하는 것은 곧 내가 경험하는 세상과 나를 규정짓게 되는 것이지요.
--- 본문 중에서
얼마 전에 아이와 함께 수족관에 놀러 갔습니다. 바다거북이 헤엄치는 앞에서 가이드분이 거북이가 토끼와의 경주에서 이기는 법을 설명했습니다. 내용은 ‘내리막길에서 경주를 한다. 물속에서 경주를 한다. 그리고 평생 오래달리기를 한다’였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피식 하고 웃고 말았지만,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때론 토끼처럼 순발력 있고 빠르게 때론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꾸준하게 노력하는 것 모두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몸의 리듬이 천천히 내리막으로 접어들고 앞으로 갈 길이 먼 중년 이후의 삶이라면 거북이의 지혜가 좀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 본문 중에서
환자분들 중에 병에 대한 진단을 받은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분들이 있습니다. 병이 중할수록 진단 자체가 갖는 충격이 커서 합리적 판단을 할 평정심을 잃게 됩니다. 한의학에서는 ‘膽담은 中正之官중정지관으로 決斷결단이 出焉출언한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 이성과 감정의 천칭이 균형을 잃어 제대로 된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환자분이 오면 먼저 기울어진 천칭의 추를 바로잡아 상황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병과 치료 자체에 매몰되게 되는데, 그 결과가 좋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 본문 중에서
우리가 오래 살게 되면서 생긴 문제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치매 또한 그중 대표적인 질환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독 빠르게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더 큰 문제가 되고 있지요. 특정한 질병에 의해 유발된 치매라면 원인 질환을 치료하는 것을 통해 호전을 기대할 수 있지만, 특정한 원인이 없는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대부분인 데다가 뇌혈관의 문제로 발생한 혈관성 치매의 경우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여러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치매를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은 없는 상태이고, 병의 진행을 조금 늦추거나 병의 진행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에 대해 대증적인 치료를 하는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치매는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한 질환(모든 질병이 다 그렇긴 하지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치료는 드러난 증상의 개선과 함께 환자가 자신을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설사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그 병이 나게 된 원인을 환자가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에 이르게 된 몸과 마음의 습관을 바꿔 나가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치료의 역할이 크겠지만 환자가 바뀌어 감에 따라 점점 치료는 줄어들고 삶의 영역이 커져 가야 합니다. 그래야 병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치료 과정이 단순한 증상의 개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좋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게 됩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