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목표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자와 다수파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나는 사회의 발전과 역사의 진보를 갈망하며, 국민 개개인의 사상적 개안과 정신적 진보가 이루어지는 바로 그만큼 사회도 발전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구사독재 시절이나 '국민의 정부' 시대에나 변함없이,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고방식과 문화, 법률, 제도가 우리 국민의 정신적 개안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일사불란주의', '국론통일주의'. '발본색원주의', 그리고 '광신적 반공주의'와 '연고주의'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도 사회정의도 제대로 실현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나는 이책에서 더러는 진짜 내 생각보다 더 과격한 견해를 일부러 내놓기도 했다.
--- p.머리말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정부가 북한 텔레비전 시청을 허용한 지 몇 달이 지났다. 국민의식의 혼란을 걱정한 반대론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 같지는 않다. 처음에는 반짝 호기심을 보였던 국민들은 벌써 관심의 끈을 놓아버린 듯하다. 그렇다. 문제는 원래부터 북한 텔레비전 방송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의식과 태도에 있다.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데 '안보 담당자' 들은 여전히 '냉전의식이라는 정신적 감옥'에 들어앉아 쓸데없는 사회적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슬픈 일이다.
--- p. 60-61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나는 15년 전 감옥에서 쓴 항소이유서에서 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의 이 싯귀를 인용했는데, 이것이 예상치 못했던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p.332
경제학은 돈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학문이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 이후 주류경제학이 연구의 대상으로 선택한 인간은 '이기적 개인'이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모든 개인이 오직 자신의 이기적 욕망만을 충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국부의 증진이라는 사회적 공동선이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이끌어준다. 그것도 일부러 공동선을 위해 노력할 때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그런데 보안사 지하실의 가련한 학생들에게는 이 '진리'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이 징역을 하루라도 덜 살려는 이기적 욕망만을 추구할 경우, 친구야 어찌 되든 우월한 전략을 선택하는 편이 '합리적(rational)'이다. 하지만 둘 모두 이 전략을 택할 경우 그들은 각각 징역 10년을 받고 저마다 씁쓸한 배신감과 양심의 가책을 안은 채 10년 징역을 살게 된다.
반면 둘 모두 의리를 지키면서, 내가 고생을 하는 한이 있어도 친구를 위해 허위자백을 거부하겠다는 '비합리적 행동' 또는 '이타적 선택'을 할 경우, 그들은 가슴 뿌듯한 우정과 동지애를 확인하면서 3년만 징역을 살아도 된다. 이기심을 버림으로써 두 사람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보다 유리한 결과를 얻는 것이다. 앞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했는데, 이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도 허위자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징역 3년만 살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 p.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