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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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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사회과학

: 사회과학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5월 광주의 삶과 진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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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478g | 153*224*30mm
ISBN13 9788996687580
ISBN10 8996687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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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최정운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거쳐 시카고대학 정치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지식국가론》(1992), 《근대 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공저), 《21세기 한반도 백년대계》(공저), 《사회과학 명저 재발견》(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미국법의 전문화: 1870-1920년대 미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푸코의 정신병 역사의 사상적 의미』, 『푸코의 눈: 현상학 비판과 고고학의 출발』, 『새로운 부르주아의 탄생: 로빈슨 크루소의 고독의 근대사상적 의미』, 『권력의 반지: 권력담론으로서의 바그너의 반지 오페라』, 『국제정치에 있어서 문화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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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이라는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피해의 규모 문제 외에 특이한 차원이 있다. 5·18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처음부터 되돌아보게 한다. 5·18은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든 사건이며, 아울러 우리 모두에게 각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단적으로 5·18은 구조주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만든 사건이었고 모든 인간적 사회적 요인들을 다시 배열시킨 사건이었다. 5·18은 우리의 몸에서 출발하여 영혼을 일깨운 사건이었다.---p.26

광주 시민들이 ‘폭도’라는 말에 그토록 격분한 것은 바로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싸운 존엄한 인간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동체 차원의 투쟁의 동기는 생명의 보호였다. 광주 시민들의 공동체는 삶과 죽음을 공동체 차원에서 정의했고 광주 시민들은 서로가 모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젊은이들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연약한 아녀자들을 지키고, 어린아이들을 지키고, 광주 땅과 그 땅의 모든 생명을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 공포와 분노와 해방감에서 이루어졌다면 생명을 보호하고 고향을 지키는 투쟁은 냉철한 결의에서 일관되었다.---p.113

광주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그런 행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국군 병사들이 대도시 중심가에서 백주에 보이는 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 끔직한 진압봉으로 패고, 대검으로 찌르고, 발가벗긴 채 비인간적인 기합을 주고, 트럭에 짐짝처럼 실어가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시민들의 눈에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공수부대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실제로 1979년 부산에서 불과 10여 분 만에 시내를 무인지경으로 만들었던 행위가 광주에서는 잠시 후 다시 시위대가 출현하고 다음날에는 더 많아지고 급기야는 전 시민이 똘똘 뭉쳐 저항하는 사태가 전개되었으니 현장에 있던 군인들이나 후에 5·18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신비스러울 뿐이었다.---p.122

또한 시민들의 저항도 합리적인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5월 18일 저녁 무렵에는 진압이 끝난 것처럼 보였으나 19일 아침 다시 시작되었고 19일 정오 무렵에도 시위는 끝난 것처럼 보였으나 오후에 들어서는 더욱 거세게 재개되었으며, 19일 저녁에는 비가 내려 모든 것이 다시 한 번 끝난 것으로 보였지만 다음날부터는 본격적인 항쟁이 전개되었다.---p.127

금남로에서 또 유사한 시간에 시내의 다른 곳에서도 시민들 간에는 구체적인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전통적 공동체와는 다른 절대공동체였다. 이 절대공동체는 마이크를 잡고 선동한 어떤 리더가 이루어낸 것이 아니었다. 모든 시민들이 각자 지도자였다. 절대공동체는 군대와 같이 누군가 투쟁의 목적을 위해 개인을 억압하여 만든 조직이 아니었다. 그것은 폭력에 대한 공포와 자신에 대한 수치를 이성과 용기로 극복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민들이 만나 서로가 진정한 인간임을, 공포를 극복한 용기와 이성 있는 시민임을 인정하고 축하하고 결합한 절대공동체였다. 시민들이 공포를 극복하고 투쟁하며 추구하던 인간의 존엄성은 이제 비로소 존엄한 인간끼리의 만남 그리고 바로 이 공동체에서 서로의 인정과 축하를 통해 객관화되었다. 절대공동체에서 시민들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았고 그들은 다시 태어난 것이다.---p.171

어떻게 보면 해방광주는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너무나 비참하게 끝났다. 그리고 아까운 젊은 인재들을 너무나 많이 쓸데없이 희생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오히려 종합해보면, 매정한 말일지 모르지만, 항쟁파나 수습파나 모두 각자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살고 싶은 사람들은 다 살았고 죽기를 작정한 사람들도 반 정도는 살았다. 최후의 한판은 실컷 싸워보지 못했는지 몰라도 그 젊은이들의 피어린 항쟁은 결국 광주의 진실을 지켰다. 철저하게 포위된 절해의 고도에서 그들이 세상과 교신하는 방법은 시간의 차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은 스스로 까만 화석이 되어 이 땅의 진실을 그들을 핍박하던 자들이 다 재가 되어버린 지금, 자유로 부활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웅변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이 그 어떤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도, 몇 천 명의 예비군을 동원했거나 모두 살아남기 위해 총을 버리고 도청을 비워줬더라면,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5·18의 유산은 이만 못했을 것이다.---p.275

더불어 상무대 영창에서 괴로웠던 일은 학생들과 노동자 출신 시민군들의 갈등이었다. 모진 매질이 한 차례 지나간 후 그들은 서로가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들 간의 맃 번째 갈등은 바로 음식이었다. 학생들과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그들의 가족들과 친지들이 사회관계의 그물망을 동원하여 사식도 들여보냈고 비밀리에 면회도 했지만 노동자들은 늘 그래왔듯이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에 의존해 살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이 당장 살기 위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해왔다면 지식인 부르주아, 대학생들은 자신들끼리만 어울려 그 알량한 사식을 노동자들과 나누어 먹는 일이 없었고 그들은 자신들만 생각하는 개인주의자들이었다.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은 서로 나누어 앉기 일쑤였고 그들은 서로 취미도 다르고 그 지옥에서 생존해나가는 방식도 달랐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계급으로서 평생 처음 살을 부비며 겪어본 것이다. 물론 해방광주에서도 그들은 이미 갈등을 겪었지만 콩나물시루처럼 같이 살며 철저하게 그들의 다름을 몸으로 느낀 것은 상무대 영창에서 처음 겪은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실망, 원망 그리고 적대감을 안고 현실로 돌아갔다.
---p.33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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