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국정원이나 검찰이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간첩 만들겠나 싶죠? 그렇게 의심하는 게 당연할 거예요. 그래서 친구들이 등 돌리고 떠나도 저는 잡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국정원이랑 검찰이 하는 짓을 계속 보다 보면 어리 씨도 곧 알게 될 거예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그리고 정말 죄 없는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요.” --- p.8
무엇보다 나는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상처를 씻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피해자들을 트라우마(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길이다.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 여타 정신과 질병과 달리 트라우마는 외부적 원인이 있는 질환이다. 외부적 문제 때문에 삶이 망가지고 고통받는 이들은 그 외부적 요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치유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진실 규명’을 외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책에는 국가가 기억하는 진실 대신, 그들이 기억하는 진실이 담겨 있다. 책 출간이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짐작했듯, 이 책의 기본적인 틀은 ‘인터뷰’다. 피해자 당사자나 유가족의 증언만큼 사건의 실체와 피해의 정도를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 p.12
딱딱하게 악수를 청하는 그를 한 번, 그리고 장 변호사를 한 번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멸북滅北’을 주장하는 한 보수단체의 간부였다고 소개했다. 그런 이와 ‘종북 변호사’가 한 공간에 있다니, 이 얼마나 낯설기 짝이 없는 조합일까. 이상한 눈초리를 느꼈는지, 그가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말을 이었다. “내 너무나 억울한 사연이 있어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김관섭(81). 그는 과거 반공교육 강사였다. 30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의 품에 안겨 행복하다”라고 외치고 다녔다. ‘자유 수호’를 입에 달고 다니던 그는 사실, 고문 피해자였다. --- p.19
가장 먼저 받은 것은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이었다. 조사관들은 독방에 1미터 높이의 백열등을 매달아 놓고 그 밑에 누워 있게 했다. 눈을 감아도 강한 빛과 열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뒤에 이어진 ‘간지럼’ 고문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람 미치게 만드는 고문 기술이에요. 온몸을 간질이는데, 처음에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나중에는 정신이 나가고 비명이 터져요.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르는 엄청난 고통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종일 서 있기도 했다. ‘박 대통령 죽이러 왔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하면 맞고, ‘그렇다’고 하면 매질이 멈췄다. 어느 날에는 서너 시간 동안 곤봉 등으로 구타를 당해 허벅지에서 피가 터지고, 또 어느 날에는 포승줄에 손목 피부가 다 벗겨지기도 했다. --- p.25
“얼마 전 희생자 유가족이 언론에 보낸 글 중에 정말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과거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충 넘어가서 이번에 더 큰 피해를 보았다’는 겁니다. 세월호 사고나 제 사건이나 마찬가지라고 봐요. 20~30년 전에 바로잡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이 재발했듯,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바로잡지 않으면 나중에 또 발생할 겁니다. 지금의 국정원과 검찰을 그대로 놔둔다면, 30년 뒤에 지금 저와 제 동생에게 벌어진 일들이 누군가에게도 일어날 겁니다.” --- p.84
‘제대로 혼쭐이 났으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겠지…….’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유우성 간첩 조작극’으로 나라가 들썩이던 2014년 3월, 검찰은 또다시 ‘북한 보위사령부(보위부) 직파 간첩 사건’을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건의 피의자 홍강철 씨는 유우성 씨와 마찬가지로 1심, 2심, 3심에서 전부 ‘간첩죄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내민 증거는 오로지 홍 씨의 자백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자백은 과연 어떻게 나온 것일까? --- p.87
고문 받은 기억을 떠올리자면 한숨부터 나온다. 뺨 맞기, 물고문, 전기 고문, 다리 사이에 몽둥이 끼우고 밟기, 그리고 ‘통닭구이’까지. 영화 [변호인]에 나온 그대로였다. 수사관들이 얼굴에 주전자로 물을 붓고 “북한 갔다 왔지”라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면 물 붓기를 네다섯 차례 반복한다. 그러다 기절하면 수사관들이 허위 진술서에 지장을 찍는다. 정신이 들면 다시 수사관이 읊는 대로 자신이 북한에 갔다 왔다는 ‘소설’을 달달 외웠다. 영장 한 번 본 적 없이 그렇게 39일간 불법 구금되었다. 저항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 p.117
“21세기에 간첩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전 그러려니 해요. 하지만 사건의 전말이, 그것도 재판 중에 드러났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죠. 예전엔 다 묻혀버렸으니까요. 30년 만에 밝혀진 것들이, 지금은 3개월 만에 드러나고 있어요.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유우성 씨는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택에 한국 사회가 조금이나마 민주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 p.123
‘아니’라는 말을 할 때마다 조사관들은 태룡 씨를 구타했다. 엎드리게 한 후 허벅지를 두들겨 팼다. 나중엔 하도 맞아 살갗이 다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어 화장실도 갈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고등학교 등하굣길을 오가며 보았던 해안 경비초소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했다. “근덕면 궁촌리 원평과 문암 부락 사이 해안에 원평 쪽 해안선 모퉁이에 군인 경비부대 막사 1개소가 있는데…….” 그 근방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후일 이러한 진술은 ‘국가 기밀’로 둔갑하고 만다. --- p.154
“이놈 자?”
“오늘 정리할 게 있어서 제가 일찍 좀 재웠습니다.”
주변이 고요했다. 그들의 대화가 창식 씨 귀에 박혔다.
“이놈이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시나리오를 작성하라고 하네. 이거 골치 아프게 생겼는데?”
“그럼 올 여름 휴가는 틀린 것 아닙니까?”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지만, 창식 씨 역시 그들의 ‘시나리오’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란 대로 말하고, 쓰란 대로 썼다. 그래야 끝도 없이 쏟아지는 폭행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올 여름 휴가는 틀린 것 아니냐’라는 말이 도저히 잊히지 않아요. 저는 그 ‘시나리오’ 때문에 억울하게 죽게 생겼는데 그자들은 고작 본인들 휴가 걱정이나 하고 있으니, 그걸 듣고 있는 제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 p.156
조사관들의 구타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더욱 못 견디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한 협박이었다. 태룡 씨는 “지금도 비명 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고문당할 때 한밤중이 되면 옆에서 전기 고문 소리가 들려요. 서울에선 문을 열어야 다른 방 소리가 들렸는데, 춘천에선 문을 안 열어도 다 들리더라고요.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다 누구겠어요. 다 우리 가족들 아니겠어요. 똑바로 안 하면 네 아버지, 네 누이 다 죽는다고 해요. 그러니 가슴이 안 찢어집니까.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위에서 시켰다고 해도, 인간이 그럴 수 있습니까. 짐승도 그렇게는 안 할 겁니다.” --- p.158
“재판은 정말 엉망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중에 두어 명 빼고는 다 초등학교만 나오거나 초등학교도 못 다닌 일자무식들입니다. 조카(김태룡 씨)네 삼촌(김달회 씨)한테 ‘노동당에 어떻게 가입했느냐’고 물으니까 ‘반장하고 리장이 하라고 해서 가입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공화당을 생각하고 말한 건데, 한글도 못 읽는 분이 노동당이나 공화당이 뭔지 구분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노동당을 반장이나 리장이 시켰다는 게 말이 됩니까. 판사들이 그 이야길 듣더니 웃더라고요. 그렇게 웃어놓고, 어떻게 징역을 줍니까. 아마 그 사람들은 우리가 간첩이 아닌 걸 다 알았을 겁니다.” --- p.161
“변호사들이 저항해야 한다. 변호사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야기라 민망하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저항할 줄 모른다. 자꾸 제한을 받으니 변호사들도 위축되는 것이다. 국정원 출입할 때 나는 ‘변호인은 보안 검색 안 받는 것’이라고 하고 피의자를 데리고 나와버린다. 어떤 변호인은 안내받은 대로 보안 검색을 다 하고 들어간다. 이미 보안 검색을 마친 피의자들은 사실상 변호인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국정원 직원이 시키는 대로 먼저 차에 타거나, 조사실에 가서 앉아 있다. 그러다가 국정원 직원들이 ‘조사 받겠습니까’라고 하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네’ 하고 변호인도 없이 조사받는다. 우습지 않나.” --- p.222
갈 길이 멀다. 나는 기자로서 고작 4년을 살아왔을 뿐이다. 짧게나마 4년간 갈고 닦은 무기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기자 생활 처음부터 늘 염두에 둔 게 있다. ‘진실’과 ‘진심’이다. 진심을 다해 진실에 다가서려 노력할 때 생명력 있는 기사가 나온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p.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