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민주사회주의 국가가 된다면?’, ‘미국에 보편적 기본소득제가 도입된다면?’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에서 타협점을 찾아낸다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중심부인 미국 사회가 받은 낯선 질문이었다.
이 책에서 애들러는 그 두 가지 중요한 질문 중 하나, ‘미국이 민주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매우 체계적으로 던진다. 그것도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 경영 체제라는 참신한 재료를 담았다. 자본주의를 이만큼 키운 주역이 가장 효율화된 대기업들이라면, 그들의 운영 체제를 국가에 적용하면 훌륭한 민주사회주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 5쪽
나는 경영대학 교수다. 사실 경영대학 교수 중에서 민주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나는 연구를 진행하던 중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몇몇 사업체의 경영 방식을 살펴볼 기회가 생겼고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자본주의 산업은 여러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으나 사업 부문의 민간 기업이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위기들을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경쟁과 이윤 추구, 자본주의 기업에 기반한 경제를 갖춘 사회에서 기업가, 고객, 투자자에게 더욱더 큰 사회적?환경적 책임을 져달라고 호소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게다가 어떤 사회라도 국가의 번영이 기업의 수익성에 달려 있으니, 정부 규제와 복지 정책, 국제 협력의 범위를 설정하는 데도 큰 제약이 따른다.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실현하려면 현재의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경제, 일자리, 정치, 환경, 사회적?국제적 목표를 위해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자원을 전략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민주사회주의로의 변혁이 절실하다.
--- 27~28쪽
경제의 핵심을 자본주의의 사유재산에 기반을 두는 한, 정부가 기업 이익에 종속되는 구조적 요인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다. 기업 로비, 정치 기부금, 회전문 취업 등을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언론이 자본주의적 이익에서 자유로워진다 한들, 자본주의 사회의 정부는 민간 부문의 수익을 증대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만 한다. 각 기업과 투자자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수익 전망이 어두워 보이면 투자를 줄이고 자금 축적을 늘리거나, 아니면 수익 전망이 좋은 다른 나라로 자금을 이전하기만 하면 된다. 입법자들은 해당 문제가 발생하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잘 인지하고 있기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민간 분야의 이해관계는 의회의 의제에 오르내리는 안건에 불가피하게 영향을 준다. 즉 이해관계는 법률이 시행되는 방식에 불가피하게 영향을 미친다.
--- 88쪽
자본주의 개혁의 주요 모델을 검토하다 보면 한 가지 강력한 결론에 도달한다. 현재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모델보다 진보한 여러 유용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개중 어떤 모델도 우리가 직면한 여섯 가지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기업들이 우리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한, 여섯 가지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의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도 없다. 실제로 생산의 진보적 사회화는 민간 기업의 존속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위기 상황이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임을 암시하는 현상이다. 우리는 기존의 시장 경쟁 체제에서 벗어나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지를 민주적으로 함께 결정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로 이것을 민주사회주의라 부른다.
--- 146~147쪽
나의 주장은, 이러한 고차원 기업들이 민주적으로 관리되는 경제에 필요한 새로운 조직 원칙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기업들에서 조금이나마 네 가지 기업 원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전통적인 자본주의에서 드러나는 독재적인 중앙집권화와 하향식의 혁신, 강압적인 작업 표준화, 경쟁적 개인주의가 다소 완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앞서 다뤘던 기업들은 제한적으로나마 네 가지 기업 원칙을 세우는 데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나는 민주사회주의에서 이러한 원칙을 더욱 넓고 체계적으로 실천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리하여 경제를 더욱 민주적이고 효과적으로 경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만약 기업의 의사 결정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고 지역, 산업, 국가 차원에서 상호의존적인 문화를 조성한다면, 꿈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진 것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 211쪽
민주사회주의 모델은 현재 미국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모델과는 너무나 다르다. 다른 어떤 나라의 모델과도 다르다. 그래서 민주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수많은 회의론자가 민주사회주의로 체제를 변혁시킬 방법이 없다며 민주사회주의를 단념시키고자 애를 쓴다. 자본주의 기업이 더욱더 강력해지면서 급진적으로 변화할 ‘기회’가 아예 사라졌다고들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생활 수준이 발전하고 사회안전망이 개선됨으로써 변화를 추구했던 사람들의 ‘동기’가 위축되었다고들 한다. 또한 교육 수준이 낮아진 데다가 각자의 업무가 단순화되고 쪼개지면서,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줄어들었다고들 한다. 더불어 민주사회주의로 향하는 급진적인 변혁의 ‘통로’는 대기업의 확고한 권력과 현 정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deep state(민주주의 제도권 밖의 숨은 권력 집단-옮긴이), 그리고 민간 부문의 노동조합이 사라지면서 막혀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 2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