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점을 네 머리 속에 잘 기억해 두어라. 인종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간들만이 유일하며, 지구상에는 지구인들만 존재한단다. 지구는 공동의 장소이다. 그러나 공동 장소의 드라마는 습관과 망각이다. 건망증 환자들을 경계하라. 그들은 인류의 문둥병 환자들이다. 가장 어리석은 동물들조차 그들보다는 더 영리하다. 우리는 사자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자기 털이 다른 사자보다 더 윤이 난다고 해서 다른 사자를 죽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금조새가 그의 동생이 자기와 다르게 노래 부른다는 이유로 교살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그가 강가에 서 있다. 내가 찾고 있던 사람이 바로 저 소년이다.

그를 관찰해 봐라. 그는 15살이다. 그런데 나이에 비해 훨씬 어려 보인다. 그는 키가 크지 않다. 그는 미소를 짓는다. 항상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가 웃고 있는 모습 이외에 다른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역설적으로 가난한 어린이들이 부유한 나라의 어린이들보다 더 잘 웃는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을 때 모든 것에 만족해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네 엄마와 내가 카이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조그마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쉴새없이 요란하게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주의가 끌렸던 적이 있었다. 이집트의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마을이었다. 흙으로 이겨 만든 집들로 이루어진 흙내 나는 마을, 우리는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즐거움이 배어있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곳으로 갔다. 작은 길을 돌아서자 자그마한 안 뜰이 나타났다. 여자들은 땅바닥에 둥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들 주위에는 눈가에 검은 점들이 다닥다닥 박혀있는 맨발의 아이들이 녹슨 통조림통을 두들기고 있었다. 나는 그 날 이후 그 아이들처럼 밝게 빛나면서 참된 행복을 보여준 어린이들의 표정을 본 적이 없다. 가난은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기쁨이 존재할 이유가 전혀 없는 곳에서 기쁨을 퍼내는 기적 같은 기능' 말이다.

새로운 천년의 벽두에 선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과연 희망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가. 자연은 문명이라는 미명하에 피폐해지고, '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며 이웃의 빈곤을 외면하며, 자본과 제국주의의 폭력에 끌려다니고 있다. 이 책은 희망과 절망의 혼재 속에 미래를 맞이하는 우리와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현실을 응시하며 내일을 준비하자고 외치고 있다. <br/><br/>저자는 이 천년 벽두에 아들과의 여행을 준비한다. 아들은 다른 여행에 그랬던 것처럼 흥분해서 신나는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금 하고 싶은 말과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이 여행은 사뭇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비장함으로 아들과의 여행을 시작한다. 글은 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아들이 때로는 질문하고 때로는 두려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시키고자 많은 수치들을 인용한다. 때문에 글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사랑으로 아들에게 당부하며 부탁하는 뉘앙스를 놓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하려 한다. <br/><br/>저자는 아들과의 일주일간의 여행을 통해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요소 요소의 문제들을 지적해준다.<br/><br/>월요일에는 아랄 해의 변해버린 현장에서 바다가 오염되기까지의 경로와 물의 중요성 등을 설명하고 화요일에는 자연과 환경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는데 자연신을 섬겼던 조상들의 모습을 그리스와 이집트의 신화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과거의 인류는 미지의 것에 대한 겸손함이 있었던 반면 오늘날의 우리는 자연을 혹사하여 결국 온실효과로 인한 이상기온 등의 피해를 입게 되었으며 이는 결국 자연이 그 위엄을 돌려 받고자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여행 장소는 대서양이 바라다 보이는 바닷가에서 빙하가 녹아 내리고 있는 북극에까지 이르며 다양한 자연 현상과 법칙에 대한 설명도 함께 있다. 수요일, 시선을 다시 인류에게로 돌려 생명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리며,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실-빈곤, 기아, 비인간적 처우, 전쟁의 잔혹상 등을 자세한 수치와 함께 알린다. 목요일에는 지중해 연안을 둘러보며, 어린 세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일깨운다. 금요일, 독일에서 발흥하고 있는 인종 차별 문제, 종교 대립의 문제, 그리고 최근의 미국에서 일어났던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등의 내막을 자세히 파헤쳐본다. 이 모든 문제는 사랑의 결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토요일에는 복제양 돌리를 들어 인간의 생명복제권리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한다. 일주간의 여행으로 우리와 밀접하지만 그 근원을 파헤치지 않았던 것들까지 다양한 주제를 놓고 아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일요일 여행이 끝나면서 아들은 변화하기 시작한다.<br/><br/>여기서 아들은 결국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쁨과 기대로 21세기는 밝았지만, 아직도 그늘진 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구속을 풀어야 한다. 세번째 천년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