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不識玄旨(불식현지) 깊은 뜻을 알지 못하면
徒勞念靜(도로염정) 한갓 수고로이 생각만 고요하게 하고자 할 뿐이다.
깊은 이치를 제대로 알지 않으면 앉았을 때는 잠깐 조용하다가 금방 흔들려버립니다. 그게 무슨 공부겠습니까? 불교 공부는 그렇게 마음 가라앉혀서 겨우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그런 공부가 아닙니다.
깊은 뜻을 알지 못하면 마음을 고요히 하려고 그저 앉아 있어 봐야 내내 그대로입니다. 평생 그렇게 10년, 20년, 30년 앉아 있으면 내내 그 모양일 뿐입니다. 처음 했을 때 망상이 부글부글 끓듯이 30년, 60년 해도 망상은 부글부글 끓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본령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렇게 생긴 것을 한 곳에 붙잡아매려고 하니 그게 될 일입니까?
--- 본문 중에서
14. 견유몰유(遣有沒有) 유를 보내면 유에 빠지고
종공배공(從空背空) 공을 따라가면 공을 등진다.
지금 이 구절은 있고 없음에 대한 불교적인 안목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지나치게 있음에 걸려 있으니까 불교에서는 있다는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공(空)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유(有)보다는 훨씬 다른 차원의 경지이기 때문에, 유에 걸려 사는 우리로서는 유를 초월해야 합니다. 유를 초월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것이 공의 경지입니다.
유의 병을 치료하는 데는 공이라는 약이 좋지만, 그 약은 마치 맛을 내는 데 필요한 소금과 같아서, 맛을 낸다고 많이 먹으면 결국은 공도 하나의 병이 됩니다. 그래서 유도 좇지 말고 공에도 머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에 빠지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둬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그 나름의 가치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각각 가지고 있는 뛰어난 공능을 잘 이해하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어느 것을 더 낫다고 추켜세울 것도 없습니다. 유도 공도 역시 그런 원리입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