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회사의 불합격 메일은 일관된 형식을 띤다. 시작은 언제나 내어 준 시간에 대한 심심한 감사와 지원자의 역량에 대한 입바른 칭찬이다. 본론은 ‘대단히 유감이지만(誠に?念ではございますが)’이라는 말 뒤에 등장한다. 거듭 탈락 통보를 받다 보니, 나는 메일을 받으면 ‘유감’이라는 단어부터 훑는 경지에 도달했다. 이 단어가 포착되면 십중팔구 불합격이라는 뜻이다. 상냥함에서 비롯한 인사치레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유감이면 뽑아 주지.’라는 원망부터 생겼다.
(……)
콜센터에 입사하자 ‘대단히 유감이지만’이라는 문구를 습관처럼 쓰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취업처럼 삶을 좌지우지하는 대단한 안건은 아니었다. 객실 층수를 미리 지정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고객에게 “대단히 유감이지만, 호텔에 문의하니 사전 지정은 어렵다고 합니다.”라고 안내하거나, 환불 불가 상품을 무료로 취소해 달라는 고객에게 “대단히 유감이지만, 예약 시 동의하신 규정에 따라 환불은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합격 의자에 앉지 못한 내게」중에서
자존심만 강했던 유년기의 나는 사과에 참 서툴렀다. 한 달 넘게 방학 숙제를 미뤄 온 걸 부모님께 들켰을 때나 연년생인 오빠와 싸우다 홧김에 심한 욕을 했을 때, 섬세하지 못한 말로 반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도 사과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타인의 심정을 헤아릴 만큼 성숙하지 못한 데다 지는 듯한 기분이 싫었기 때문에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버티기 일쑤였다. 나이가 들어도 이 못난 성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직장 동료와 친구, 그리고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변명하기 급급했다.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지금껏 살아오며 괜한 고집 탓에 매듭짓지 못한 실수와 떠나보낸 인연이 숱하게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콜센터에 들어온 뒤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숨 쉬듯 용서를 비는 인간이 되었다. 고객이 각양각색의 사연을 들고 마치 맡긴 물건을 찾는 양 사과를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새롭게 발견한 사과의 이유」중에서
상담원의 입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습니다.”는 대개 ‘안 된다’의 완곡한 표현이다. 여행을 잘 다녀와서 운전 기사의 태도가 기분 나빴으니 전액 환불해 달라는 고객에게, 객실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벽에 구멍을 뚫어 놓고 보상은 못 하겠다는 고객에게, 실수로 취소 버튼을 누른 뒤 홈페이지 오류라며 생떼를 쓰는 고객에게,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하고 운을 떼는 식이다. 듣기 좋은 포장을 한 겹 들어내면 결국 당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는 규정대로 처리하겠다는 선언이다. ‘부득이하게’라는 표현은 고객의 요구를 받아 줄 수 없거나 그럴 필요가 없을 때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 인사팀에서 발송한 전체 이메일에 이 ‘부득이하게’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들었다. 미사여구를 헤치고 다급히 확인한 본론은 이랬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로 부득이하게 인원 감축을 결정했습니다. 본인이 대상자인지 여부는 몇 시간 내에 발송해 드릴 이메일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찾아온 정리 해고」중에서
“고객님, 그럼 제가 더 도와드릴 부분은 없을까요?”
“없어, 없어. 늙은이가 귀찮게 했는데,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 줘서 고맙네. 또 전화해서 아가씨를 찾으면 통화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상담원 지명은 받지 않는다고 양해를 구하며, 그래도 언젠가 또 인연이 닿았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덧붙였다. 그러자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그분의 한마디.
“이치고이치에 같은 거구먼.”
“정말 그렇네요.”라며 태연히 통화를 마무리했지만 생전 처음 듣는 표현이었다. 찾아보니, 한자로 일기일회(一期一?),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을 뜻하는 사자성어였다.
다도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다회를 열 때는 다시없을 소중한 자리로 여겨 성심성의껏 임해야 한다는 의미라나.
---「목소리로 만나는 인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