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가슴 아픈 현실은 한때 문화의 화두였던 사랑이 그 권위를 잃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보를 얻어 박학다식해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무엇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지 궁금해할 겨를이 없다. 지금 문화계에서 공식적으로 중요하게 다루는 분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화려한 말솜씨로 전달되는) 부수적인 일화뿐이다. 잠시라도 허심탄회하게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로 인해 공격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은 게임의 규칙에 어긋난다. 물론 어떤 학교 시험에서도 중요한 질문은 등장하지 않는다. “정말 솔직하게, 피카소(또는 플라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가?” 하지만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서로 주고받아야 할 질문이며 함께 의논해야 할 문제다.
---p.29 「우리에게는 더 많은 사랑 이야기가 필요하다 - 존 암스트롱」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무언가를 갈망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을 싹틔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찌르르함을 갈구하고 느끼고 싶어 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짜릿함을 느끼려면, 꽃처럼 만개해야 한다. 즉 우주의 필수 성분인 질을, 태고의 핵융합 과정에서 탄생한 그 본능적이고 경쟁적인 불꽃을 찾아 나서야 한다.
---p.59 「저마다 다른 사랑의 방식 - DBC 피에르」
나의 희망은 내가 물려받은 이성애적, 가부장적, 자본주의적 사랑을 무너뜨리는 이론들이 계속해서 힘을 얻는 것이다. 또한 내가 주장하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랑은 개인주의적 소유를 규범으로 삼는 낭만적 이데올로기와 상반되는 유형의 사랑이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이해하려면, 상호 연계성에 함축된 심오하고 감동적인 의미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사랑을 재화처럼 쌓아두고 경쟁적으로 연애 시장에서 거래하기보다 선물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나눌 때 상호 간의 유대감을 돈독히 쌓을 수 있다.
---p.66 「선물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나눌 때 - 캐리 젠킨스」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특징은 따로 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속 빈 강정 같은(그래서 손가락만 까딱하면 지울 수 있을 만큼 피상적인) 아바타와 비대면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데이팅 앱 이용자들은 미래의 연인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서 서로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도덕적 책임을 망각하기 쉽다. 직접 대면하면 상대방에게 의무감이 생긴다. 대화하다 싫증이 나거나 몇 번 만나본 후에 실망해서 관계를 끝내고 싶을 때도, 우리는 배려심을 발휘하고 처세술을 염두에 두면서 진지하게 상대방을 대하게 된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장차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상대에게만 그런 배려를 하는 경향이 있다.
---p.100 「사랑을 이어주는 데이팅 앱? - 매슈 비어드」
이렇게 멍든 제 가슴이 수면에 일렁이던 물결 속에 아른거리자, 나르키소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황납이 불에 녹아내리듯 아침 서리가 햇살에 녹아 사라지듯, 그는 사랑의 고통으로 여위고 약해지다 보이지 않는 불길에 서서히 타들어 갔다. 홍조를 띠던 새하얀 얼굴이 빛을 잃고 생기와 원기도 사라지자, 보기에 좋았던 모습도 에코가 사랑했던 육체도 그를 떠나갔다. 그러나 에코가 이런 나르키소스의 모습을 봤을 때, 비록 받은 모욕이 기억나 화는 났지만, 연민을 느꼈다. 그래서 그 가여운 나르키소스가 “아아!” 하고 울부짖으면, 에코도 따라서 “아아!” 하고 울부짖었으며, 그가 손으로 자기 어깨를 치면, 똑같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마지막으로 나르키소스가 샘물을 내려다보며 “아아, 덧없다. 사랑하는 이여!”라고 외쳤을 때, 에코는 그 마지막 단어를 반복했고, 그가 “안녕!”이라고 말하자, 에코도 “안녕!”이라고 되울렸다. 마침내 나르키소스는 푸른 풀밭에 자신의 지친 머리를 대고 누워, 아름답게 빛났던 두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했다.
---pp.130~131 「에코와 나르키소스 - 오비디우스」
벤야민은 어른들에게도 환상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꿰뚫고 있었다. 위니코트보다 약 20년이나 앞선 대단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위니코트는 누구나 “내적 현실과 외적 현실”을 연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고 표현한다. 그는 어른도 아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방해 없이 환상이라는 중간 영역에서 현실의 고단함을 덜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성인을 위한 이행 대상으로 예술과 종교를 꼽는다. 정상적인 발달 과정을 거치면서, 담요나 인형 같은 물건은 금세 마법을 잃는다. 하지만 벤야민이 새삼 일깨워주었듯이,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대상을 매개로 하여 자기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다.
---p.155 「아이들이 담요를 사랑하는 이유 - 앙드레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