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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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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의 노래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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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12쪽 | 54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894223
ISBN10 8989894220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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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세상이 끝나고 나만 살아남은 것인지, 내가 끝나고 세상이 저 홀로 남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한 소설의 얼개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단순한 상징들 속에 숨어 있는 철학적 물음은 복잡하다 못해 난해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줄거리로 읽으면 재미없다. 그래도 간략한 줄거리를 살펴보자.

일단의 병사들이 섬이 된 산에 갇혔다. 화악산 고지에 주둔한 정보부와 전자통신대, 그리고 벙커를 지키는 육군 경비소대가 그들이다. 산이 섬이 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어떠한 첩보나 정보도 그들에겐 없다. 어떠한 통신수단도 없다. 다만 산이 바다에 갇혀 있다는 것만 예감할 수 있다.

적이 필요한 경비소대장은 북쪽의 핵공격을 상상한다. 반면 첩보와 정보만을 믿어야 하는 정보부 파견대 지휘관은 자연재해를 생각하지만 판단할 수 없는 징후에 혼란만 거듭한다. 종교를 상징하는 전자통신대 지휘관은 판단 없이 휩쓸린다. 문명을 상징하는 군무원의 역할도 바람처럼 가엾다.

섬에서 선임지휘관은 정보부 파견대 지휘관이지만 벙커는 경비소대의 보호만 믿고 사는 더부살이 신세다. 판단과 선택을 주도해야 할 정보부 파견대 지휘관은 생존법칙에 길들여 지지 않은 책상머리 군인이다. 그런 탓에 벙커는 경비소대의 판단과 보호에 의지한 채 고립을 풀어나가려 발버둥친다. 가진 자와 빼앗긴 자를 상징하는 두 그룹은 그래서 이질적이다.

고립이 길어지고 한 달이 넘자 진지에 식량과 기름이 떨어진다. 경비소대장은 식량보급을 위해 유일하게 통신이 열린 인접 고지로 뗏목을 타고 떠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이기적인 생존을 위한 비열卑劣과 비겁卑怯의 결과는 허망하다.

결국 진지는 경비소대 지휘관을 잃은 채 배고픔과 공포로 혼란에 휩싸인다. 할 수 없이 정보부 파견대 지휘관은 섬을 포기하고 탈출을 결심한다. 그러나 지휘권이 흔들리는 경비소대를 통제하지 못한 채 떠난 유랑은 우여곡절의 고통을 겪는다. 휴전선 북쪽의 적들 역시 같은 유랑을 선택했을 가능성, 그래서 표류는 더더욱 두렵다.

전투병이 아닌 벙커의 요원들, 그리고 경비소대 사이에 놓인 불평등은 현대사회의 물질적 계급과 상통하는 문제점이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경비소대 병사들, 혼란 속에서도 지휘권과 계급을 앞세우는 이기적인 전자통신대, 그리고 나약한 지휘관의 본능적인 갈등이 얽혀 거듭된 반목을 경험하게 된다.

그 모든 과정에서 정보부 파견대 지휘관은 선택의 기로를 강요받지만 그에겐 병사들의 목숨을 책임질 방법이 없다. 더욱이 적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도 시시각각 목을 죄어온다. 적인지 아군인지 판단할 수 없는 혼돈과 표류가 시시각각 생명을 위협한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에 의해 흔들리는 현대사회를 상징한다.

그 과정에서 식량이 있는 암자를 확보하지만 결국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육이 벌어지면서 병사들은 분열된다. 폭력과 살육의 원인은 알 수 없다. 누가 누구를 죽이고, 누가 아군이고 적인지 가늠할 수 없는 교전, 죽음 역시 실제인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주인공 곁에 남은 아군의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만 확실하다.

결국 병사들의 운명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교전 속에서 모든 것이 수수께끼처럼 막을 내린다. 주인공인 정보부 파견대 지휘관 역시 생과 사를 구분할 수 없는 결론에 봉착하면서 끈질긴 두려움의 고립을 마감한다.

그러나 결론은 반전을 암시한다. 데자뷔D?ja-vu와 자메뷔Jamais-vu의 혼돈 속에 카그라스증후군Syndrome de Capgras으로 끝난 여정이 모두 허상의 실루엣일 수도 있다는 자백, 그것은 고립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고립의 원인이 되었던 단초들은 멸의 증거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시사한다.

즉, 산이 된 섬은 세상을, 고립과 표류는 인생을, 갈등과 폭력으로 그려진 정치, 경제, 사회, 외교적 사건들은 허망한 현상임을 상징한다. 아울러 암자의 비구니들은 저승사자 혹은 선악의 상징이고 고립된 병사들의 역할 역시 세상살이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그려진다.

결국 병사들의 고립 49일은 49재 동안 상상한 사후일기라는 마침표를 예감하게 한다. 인생이라는 유한의 몸부림이 만나게 될 끝, 주관적인 시각으로 다투는 세상의 신기루가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일기 속의 상징들이 멸로 대변하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화악산 병사들의 참혹한 유랑을 통해 현재 우리의 가벼운 삶을 비판적 시각으로 지적하고 있다. 삶과 인간에 대한 탐구를 잃어버린 채 물질적 풍요에 갇혀 사는 현대인의 헛헛한 삶을 날카로운 필치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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