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식물과도 특별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아름다운 것을 사면 머지않아 죽어갔고, 시간이 지나 그 사실을 잊고 또다른 식물을 샀다. 그래도 식물을 곁에 두고 싶은 건 서툴지만 알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은지, 무엇을 하면 슬퍼지는지 관심을 갖고 매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때쯤이면 나도 어떤 식물과 특별한 사이가 되지 않을까.
글을 쓰는 손, 머리를 쓰다듬는 손, 어깨에 묻은 작은 먼지를 떼어주는 손, 책장을 넘기는 손,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있는 손, 슬퍼하는 친구의 등을 두드리는 손, 서툴게 무언가를 만드는 손, 이름 모를 풀을 그리는 손. 손으로 느끼는 삶을 살고 싶다.
홀로 존재감을 풍기는 꽃, 화려하지 않지만 어떤 것과 함께해도 어울리는 꽃, 기분 좋은 향기를 가진 꽃, 향기는 없지만 고운 빛깔의 꽃, 활짝 피어 있는 꽃, 망울만 맺히고 아직 피지 않은 꽃.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함께하는 건 서로 다른 색, 모양, 향기, 시간이 어우러져 하나의 꽃다발을 완성하는 것. 혼자여도 좋지만 함께해서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일.
친구들이 “어떤 사람이 좋아?”라고 물을 때마다 “소년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것을 아이처럼 신나서 말하고, 그 눈빛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 그런데 오늘 누군가 내게 말했다. “좋아하는 걸 말할 때 당신 눈이 반짝거려요.”
스치듯 지나가다 마주치는 식물들을 우리는 무심히 지나친다. 예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롭지도 않은, 때로는 죽어 있는 듯한 식물들을 볼 때마다 이름이 있는지, 혹여 이름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조용히 존재하는 식물들. 그들의 모습에서 기묘한 생명력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제목처럼, 우리가 느리다고 알고 있는 거북이도 사실 빨리 헤엄치듯이 산책하며 우연히 발견하는 야생식물에게서 평범함과 더불어 비범함과 특별함을 느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