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치열한 세계를 향해 당당히 지각을 선포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났다. 나는 가방을 챙기던 손을 잠시 내리고, 나를 에워싼 정신없는 발걸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탈출한 세계를 제3자가 되어 바라보는 것은 꽤나 짜릿한 일이다. 나는 그곳에서 일어나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그 세계 속을 아주 천천히, 유유히 걸었다. --- p. 23 ‘#03 하노이, 지각생의 아침’ 중에서
사람마다 행복의 역치는 다르다. 하지만 아주 다행스러운 일은 행복의 역치는 노력과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행복의 역치를 낮춘다는 건 현실에 안주하고 체념한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똑같은 크기의 예쁨과 미움을 만났을 때, 예쁨에 조금 더 집중함으로써 나의 오늘을 조금 더 밝게 만드는 아주 작은 마법일 뿐이다. 혹시 지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면, 오늘부터 당장 그 마법을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 --- p. 55 ‘#08 행복이 헤픈 여자’ 중에서
괜찮지 않아서 괜찮기 위해 떠나온 이곳에서까지 나는 ‘괜찮다’ 말하는 강박으로 나를 동여매고 있는 걸까? 숨이 턱턱 차오르는 더위와 땀구멍을 막아버리는 습기, 거기다 곰팡이 냄새까지, 좋은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젠장.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말하다 보면 정말 매사에 감사한 사람이 되듯, 행복도 습관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라 굳게 믿지만, 그래도 ‘억지로’ 행복할 필요는 없잖아. --- p. 65 ‘#09 행복하지 않을 자유’ 중에서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감당해야 하는 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의 외로움이 있다. 그리고 오늘 나의 외로움은 대부분의 여행자 몫이 그러하듯 유난히도 컸다. 어쩌면 이것은 떠나온 이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유난히 덥고 고독한 오늘, 나는 이 작은 방 한가운데에 가만히 누워 있었고, 결국 내 방문을 두드리는 이는 없었다. “익숙한 것을 떠나온 대가야”라고, 누군가 내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 p. 81 ‘#11 그대 몫의 외로움’ 중에서
히말라야에서 가장 유명한 코스지만 결코 만만히 볼 것은 아니다. 사람은 해발 3,000미터를 넘어가는 순간부터 고산병 증세를 느낄 수 있는데, 이때 가장 위험한 것이 빠른 걸음이다. 몸이 높은 고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급하게 가다 보면 호흡곤란, 두통, 구토 등을 겪을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체력을 믿고 빠르게 올라가는 사람들이 도중에 고산병을 겪고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히말라야에서는 급히 가는 것이 오히려 산을 잘 탈 줄 모르는 것이라고들 한다.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보름을 넘어가는 기간 동안, 각자 자신만의 속도로 한발 한발 내디딜 뿐이다. (중략) 이곳은 누가 날 지나쳐가도 전혀 조급해하지 않고, 온전히 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곳. 뒤처진다고 해서 조금도 속상해할 필요가 없는 곳. 그리고 그 누구도 뒤처진 나를 비웃지 않는 곳. 심지어는 그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는 곳. 히말라야였다. 사실 특별한 이유도 목적도 없이 막연한 호기심에 올라온 산이었는데, 고산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버렸다. 나는 ‘앞으로 산을 참 좋아하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되뇌었다. 앞으로 살면서 지금 이 속도를 기억하자고. --- p. 91~96 ‘#13 나만의 속도’ 중에서
여행자에게 세상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래서 여행에서든 일상에서든 여전히 모두의 손을 덥석 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는 두려움에 눈을 감아버리기보다 마주 선 이의 눈동자를 똑바로, 찬찬히 바라보곤 한다. 그렇게 찬찬히 상대를 바라보다, 문득 내 마음이 그에게 한 발 다가선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 손을 꼭 잡는 거다. 그 순간 온 세상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당신도 꼭 알게 되기를. --- p. 113 ‘#15 네가 너무 작아서 그래’ 중에서
모든 사람의 여행 스타일은 각기 다르다. ‘이게 여행이다, 아니다’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각자 다른 곳에서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으면 그만인 거다. 누군가에게는 가이드를 열심히 따라다니며 이야기를 듣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혼자 모든 것을 헤쳐 나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많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 최고의 여행일지 모른다. 그 장소가 지구 반대편 남미든, 가까운 동남아든, 심지어는 내 집 안방이든 말이다. 혹여 그가 나중에 ‘그때 그런 식으로 여행하지 말걸. 내가 왜 그때 그렇게 여행했을까?’라고 후회한다 한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자신뿐이다. 그저 우리 모두는 여행자이고, 여행자를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현지법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 생각해 보면 여행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저 타인이 즐기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 그뿐이다. --- p. 139~141 ‘#18 여행 꼰대’ 중에서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이 길 위의 수많은 꽃을 지나치며 단 한 번도 가까이 다가가서 꽃향기를 맡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꽃나무를 보면 “예쁘네” 하고 지나칠 뿐, 단 한 번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의 상사에게 “옆도 살피고, 아래도 내려다보고, 가끔은 뒤도 돌아보고 싶다”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떠나온 이 길 위에서 나는 겨우 앞만 보며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에서 늘 그랬듯 말이다. 오늘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이 길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이 향긋한 꽃향기를 맡지 못했을 것이다. --- p. 154 ‘#19 신이 너를 좋아하나 봐’ 중에서
가난한 배낭여행자지만 가고 싶은 곳은 많던 내게 오스트리아의 물가는 실로 잔혹했다. 식사 때마다 당연하게 주문했던 콜라와 맥주를 시키려면 큰맘을 먹어야 했다. 고민 끝에 당시 나와 함께하던 이와 히치하이킹을 하기 시작했다. 빈부터 할슈타트, 그리고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와 프라하까지. 그리고 그사이의 수많은 마을들. 여느 여행자처럼 세상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끼고 싶다거나,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다거나 하는 멋진 이유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저 이곳에서 하루라도 더 버텨보겠다는 발악 같은 것. 하지만 그 결과, 나는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다채로운 동화를 만났다. --- p. 172 ‘#21 친절은 사양 대신 또 다른 친절로’ 중에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지구 반대편에서 먹는 국밥 한 그릇에 내가 떠나온 나의 일상이, 그리고 나의 그대들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여실히 느끼고 있듯 말이다. 나는 수많은 그리움을 삼켜내기 위해 잠시도 숟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국밥 한 그릇에 생각이 많아지는 밤. 나는 오늘, 따뜻한 집이 몹시 그립다. --- p. 229 ‘#26 국밥 한 그릇’ 중에서
내게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사람’이었노라고 답할 것이다. 내게 러시아어를 알려주던 할아버지와 아들, 어린 무용수 친구들, 정치 얘기를 좋아하던 아저씨, 너무나 사랑스러운 눈빛을 가진 홍콩 친구들, 말수가 적었지만 마지막에 잡은 손은 참 따뜻했던 할아버지, 직접 재배한 채소를 끊임없이 나눠주던 아주머니……. 감히 다시 만날 기약조차 할 수 없던 수많은 이들. 고작 하루하고 반나절이면 떠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내 앞자리에 앉았다면 우리는 분명히 친구였다. 그래서 슬펐다. 맞다. 어쩌면 우리 여행자는 P의 말처럼 슬픔에 익숙한, 혹은 익숙해져야 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 p. 282 ‘#32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