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손 가득 알록달록한 풍선을 들고 있는 어르신을 만났다.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 주실 건가 봐요?”
어르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누라 줄 거예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깊게 주름이 팬 어르신의 얼굴 위로 수줍은 미소가 떠올랐다.
“어쩌겠어요, 좋다는데.”
(……)
우리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 모습에 거부감을 느껴서가 아니라 조금 낯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바라던 모습이기에 오히려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낯설고, 꿈처럼 좋아 보여서.
---「사랑이 낯설게 느껴질 때」중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란 우리 손에 놓인 막대 사탕 같은 것이다. 추위와 배고픔은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용기와 희망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나에게는 풍족한 물건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게 필요한 물건일 수 있다.
내가 하하 웃고 있을 때 누군가는 끝없는 나락 속에서 고통과 막막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에는 영혼을 두드리는 짧은 이야기가 지푸라기가 되고, 등대가 되고, 사탕이 된다. 너무 작아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어쩌면 위력 없는 위로일지라도, 때론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을 위한 닭고기 스프」중에서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은 굉장히 빈약하다. 대여섯 살에 꼭 흙장난만 하고 노는 것도 아니고, 대학에 갔다고 해서 반드시 연애를 하는 건 아니며, 졸업을 했다고 바로 취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서른 살이라고 해서 무조건 시집을 가는 것도, 결혼했다고 무조건 아이를 낳는 것도 아니다. 예순 살이 되면 일을 못 하게 하고, 백 살 먹은 노인에게 ‘이제 그만 가셔야죠.’ 하고 죽음의 시기를 규정해줄 수는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무슨 일이든 내 마음이 원해서 해야 한다. ‘때가 돼서’ 혹은 ‘남들도 하니까’를 이유로 무작정 쫓아가서는 안 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없다」중에서
소설을 쓰는 후배가 한 명 있었다. 원고를 읽어보니 문체도 나쁘지 않고, 아이디어도 좋았다. 괜찮은 출판사에 연락을 넣어줄 테니 원고를 보내보라고 권했다. 미디어 회사를 통해 대본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줬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는 게 싫다고 했다.
“만약 책으로 출판했는데 판매량이 별로거나 영화로 만들었는데 인기가 없으면, 너무 창피하잖아요.”
(……)
반드시 완벽한 결과가 보장돼야만 해보겠다는 걸까? 최고가 못 되면 나 자신한테 미안해질까 봐? 많은 사람들이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수많은 선택을 포기한다. 나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중에서
세상에는 분명 하늘의 총애를 받고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돈 많고 사랑스러운 배우자를 만나고, 평생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끄떡없이 풍족하게 사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돈 때문에 머리를 앓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너무 오래 쳐다볼 필요는 없다. 그건 내 삶이 아니니까.
고개를 돌려 스스로를 들여다보자. 흙수저를 물고 위태위태하게 굴곡진 다리를 건너면서 대다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무작정 뭘 기대하고 있는가. 하늘을 날던 새가 내 눈앞에 빛나는 금수저라도 떨쳐줄 것 같은가?
멍하니 기약 없는 행운이나 바라며 사는 것은 진짜 삶이 아니다. 우리에겐 기적을 만들어 낼 시간이 있다. 정신 차리고 내일부터 밖으로 나가서 일을 찾아보자.
일을 하다 보면 사장이 괴롭힐 수도 있고, 동료들과 부대낄 때도 있을 거고, 온갖 어려운 문제에 숨 막히고, 분노하고, 눈물 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피할 수 없다.
한평생 갑부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겪고 나면, 땀 흘려 얻은 보상으로 지갑이 두둑해지고, 갖고 싶은 것들을 손에 넣고, 따듯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다 보면, 느끼게 될 것이다. 일을 하는 동안 물질적인 것 말고도 지금껏 알지 못하고, 접해보지 못하고, 가져본 적 없던 많은 것들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누구’의 돈을 쓸 것인가」중에서
적당한 ‘인정’은 합리적인 양보와 닮았다. 괜한 불편과 상처를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나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때로는 작은 힘으로 큰 힘을 물리치는 우아한 기술이 된다.
우리는 슈퍼맨도 아니고, 동풍을 빌려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는 제갈량도 아니다. 매번 승리만 할 수는 없다.
자신의 위치를 바로 보고, 정도를 지키는 선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도 좋다. 에너지 소모와 심리적 부담을 한층 덜 수 있고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패배를 인정해도 좋다. 정해진 운명이라 단념하지만 않는다면.
오기를 부려도 좋다. 고집부리며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믿어도 좋다. 세상은 당신을 도울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다.
---「인정하면 간단해지는 것들」중에서
적극적인 자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번 게으름을 핑계로 피하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이루는 것 없이 심연의 밑바닥으로 떨어져버릴지 모른다.
끝없는 행복은 믿지 않으면서 끝없는 절망은 또 왜 믿는단 말인가. 살아있다면, 궁지에 몰린다 해도 반드시 벗어날 수 있다.
---「한번 해보는 거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