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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첸의 세계명화 비밀탐사
중고도서

두첸의 세계명화 비밀탐사

모니카 봄 두첸 저 / 김현우 역 | 생각의나무 | 2002년 04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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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80쪽 | 101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4981287
ISBN10 8984981281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  판매자 :   rinx   평점4점
  •  특이사항 : 2002년판. 보관기간에 비해 좋은 상태입니다 .전체적으로 깔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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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머리에
1. 미켈란젤로 부나로티 : 다비드 David
2. 레오나르도 다빈치 : 모나리자 Mona Lisa
3. 프란시스코 데 고야 : 1808년 5월 3일 The Third of Maym 1808
4. 에두아르 마네 : 올랭피아 Olympia
5. 빈센트 반 고흐 : 해바라기 Sunflowers
6. 에드바르드 뭉크 : 절규 Scream
7. 파블로 피카소 :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
8. 잭슨 폴록 : 가을의 리듬 Autumn Rhythm
옭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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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모니카 봄 두첸 Monica Bohm-Duchen
런던에 살면서 프리랜서 작가, 강사, 그리고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오픈 유니버스티, 테이트 갤러리, 내셔널 갤러리, 왕립 예술학교와 쿠토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며, 《RA 매거진》 《아트 먼슬리》 《모던 페인터》 《쥬이지 쿼털리》 등에 글을 기고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 현대 예술에 드러난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응>(1995)을 기획했고, <1933∼45년 영국에 유배된 미술>(1985∼86) <루비와 반역 : 현대 영국 미술에서 유대인 여성의 정체성>(1996∼97) <삶? 혹은 극장?> <샤를로트 살로몬의 작품세계>(1998) 등을 공동 기획했다. 저서로는 『근대 미술의 이해』(1991) 『누드』(1992) 『샤갈』(1998) 등이 있다.
역자 : 김현우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2000) 『웬디 수녀의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2001) 『드림캐처』(200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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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성적 취향에 대해서는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그가 동성애적인 성향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당시에는 동성애와 이성애의 구분이 오늘날처럼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중략)..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근육질의 청년이 그 대상(동성애의)이 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들어서는 <다비드>가 동성애자들의 우상이 되면서 많은 게이 잡지들이 그의 자세를 흉내내고 있다. 또한 1970년대에 페미니즘이 생겨나면서부터는 여성들이 조각의 뛰어난 몸매에 대한 찬사를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매년 백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을 아카데미아로 불러들이는 <다비드>의 위력은 그 육체적인 아름다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작품을 통해 확신과 불안, 초인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그리고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켈란젤로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음미해 보기 바란다

"만약 인간 안에 있는 신성한 부분을 통해 누군가의 얼굴과 자세가 확연히 떠올랐다면, 그에 미치지 못하는 모델을 보고 작품을 제작한다 하더라도 신성한 힘이 돌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그건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죠."
--- pp. 60~61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1962년 <모나리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는데, 이는 문화가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된 대표적 예였다. <모나리자>의 대여가 있기 얼마 전, 미국 관광객을 태우고 애틀란타에서 파리로 가던 여객기가 르부르제 공항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프랑스는 나토와는 별도로 독자적인 방위 계획을 추진하고 있던 드골 장군 때문에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된 앙드레 말로가 미국에 취할 수 있었던 우호적 제스처는 <모나리자>를 대여해 주는 것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1962년 12월 중순, 드디어 그림은 프랑스의 르아브르를 떠나 뉴욕으로 향하는 항해길에 오르게 된다.
--- p. 105 다빈치의 <모나리자>
<절규>가 가지고 있는 극단적으로 주관적인 분위기와 표현주의적인 자유분방함에도 불구하고, 뭉크가 말로 묘사하고 그림으로 표현해 낸 무시무시한 하늘은(현대인들은 이 하늘을 보고 토마토케첩과 계란 노른자를 섞어 놓은 것 같다고 비꼬기도 했다) 북유럽에 종종 나타나는 '렌즈 모양의' 그림이라고 알려진 희귀한 자연현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늦은 가을에 비가 심하게 내린 뒤 차가운 공기가 습기를 서쪽으로 이동시키면, 이제 막 떨어지려는 햇빛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빨갛고 노란 띠 모양의 구름을 연출하곤 한다. 이러한 장관에 매혹된 예술가는 뭉크가 처음은 아니었다. 다비드 카스파 프리드리히의 추종자였던 J.C.C 달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 광경을 표현한 많은 작가들 중 한 명이다. 그 외에도 뭉크가 그 끔찍한 경험을 했던 장소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몇가지 단서들이 더 있다. (중략)

하지만 뭉크에게 있어 그 장소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지는 곳이었다. 언덕 아래에는 바로 정신병원이 위치해 있었는데,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병원에서 종종 미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화가의 동생 로라도 우을증에 시달리다 1892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떠한 근처에는 방목장과 도살장이 있어서, 이 역시 작품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뭉크의 절친한 친구였던 칼레 로헨이 문제의 장소 근처에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기로 뭉크는 많은 종류의 뿌리 깊은 두려움을 알고 살았다.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 여인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질병과 세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텅 빈 공간에 대한 두려움...... 사실 그는 발작성 공황을 동반하는 광장 공포증을 앍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상적으로 광장 공포증에 수반되는 불면증과 가슴의 통증 그리고 격렬한 감정의 변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가 매우 자주 겪었던 알코올 중독 역시 이러한 정신적 불안정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뭉크 자신이 적어놓은 그러한 감정 상태는 발작성 공황 증세를 잘 보여준다. 그 무렵 뭉크가 자신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은 작품의 맨 위에 가늘게 써놓은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거기에는 "광인에 의해서만 그려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적혀 있다. (이 문구를 정말 뭉크가 적어놓은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05년 어떤 글에서는 "몇 년 동안 나는 거의 미쳐 있었다. 그 때 광인이 무시무시하게 얼굴이 뒤틀린 머리를 내밀었다. 여러분도 나의 그림 <절규>를 알고 있겠지만, 당시 낭는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있었다. 내 피속에서 자연이 절규하고 있었고, 나는 터질 것만 같았다"라고 적고 있다.
--- pp. 266~269 뭉크의 <절규>
<절규>가 가지고 있는 극단적으로 주관적인 분위기와 표현주의적인 자유분방함에도 불구하고, 뭉크가 말로 묘사하고 그림으로 표현해 낸 무시무시한 하늘은(현대인들은 이 하늘을 보고 토마토케첩과 계란 노른자를 섞어 놓은 것 같다고 비꼬기도 했다) 북유럽에 종종 나타나는 '렌즈 모양의' 그림이라고 알려진 희귀한 자연현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늦은 가을에 비가 심하게 내린 뒤 차가운 공기가 습기를 서쪽으로 이동시키면, 이제 막 떨어지려는 햇빛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빨갛고 노란 띠 모양의 구름을 연출하곤 한다. 이러한 장관에 매혹된 예술가는 뭉크가 처음은 아니었다. 다비드 카스파 프리드리히의 추종자였던 J.C.C 달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 광경을 표현한 많은 작가들 중 한 명이다. 그 외에도 뭉크가 그 끔찍한 경험을 했던 장소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몇가지 단서들이 더 있다. (중략)

하지만 뭉크에게 있어 그 장소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지는 곳이었다. 언덕 아래에는 바로 정신병원이 위치해 있었는데,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병원에서 종종 미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화가의 동생 로라도 우을증에 시달리다 1892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떠한 근처에는 방목장과 도살장이 있어서, 이 역시 작품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뭉크의 절친한 친구였던 칼레 로헨이 문제의 장소 근처에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기로 뭉크는 많은 종류의 뿌리 깊은 두려움을 알고 살았다.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 여인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질병과 세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텅 빈 공간에 대한 두려움...... 사실 그는 발작성 공황을 동반하는 광장 공포증을 앍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상적으로 광장 공포증에 수반되는 불면증과 가슴의 통증 그리고 격렬한 감정의 변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가 매우 자주 겪었던 알코올 중독 역시 이러한 정신적 불안정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뭉크 자신이 적어놓은 그러한 감정 상태는 발작성 공황 증세를 잘 보여준다. 그 무렵 뭉크가 자신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은 작품의 맨 위에 가늘게 써놓은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거기에는 "광인에 의해서만 그려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적혀 있다. (이 문구를 정말 뭉크가 적어놓은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05년 어떤 글에서는 "몇 년 동안 나는 거의 미쳐 있었다. 그 때 광인이 무시무시하게 얼굴이 뒤틀린 머리를 내밀었다. 여러분도 나의 그림 <절규>를 알고 있겠지만, 당시 낭는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있었다. 내 피속에서 자연이 절규하고 있었고, 나는 터질 것만 같았다"라고 적고 있다.
--- pp. 266~269 뭉크의 <절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다비드 미켈란젤로 부나로티│1501∼04│대리석│높이 410cm(받침 제외)│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크기나 솜씨에 있어서 보는 이를 압도하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고대 이후로 나체의 남자 조각상 가운데 가장 커다란 작품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영웅을 기리려는 의도에서 제작된 작품이지만, 승산 없는 싸움에서의 승리를 암시하는 이 조각상은 메디치 가문을 위시한 정적들과 투쟁 중이던 피렌체의 공화파에게는 매우 적절한 상징물로 여겨졌다.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그리고 도도함과 소박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조각상은 제작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초월하여 믿음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1503∼06│패널에 유화│77 53cm│파리, 루브르 박물관
사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이 작품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림 속 인물의 수수께끼 같은 표정 때문에 말도 많지만, 끊임없이 다른 작가들에 의해 모방되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되면서도 원작의 독특한 분위기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 아름다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선구적인 작품이었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것이었던 유화 기법을 사용했고, 선을 부드럽게 하는 스푸마토라는 새로운 기술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의 진정 위대한 업적은 살아 숨쉬는 듯한 생생한 인물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이 신비스러운 여인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매혹시킨다.

1808년 5월 3일 프란시스코 데 고야│1814│캔버스에 유화│266 345cm│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여전히 개인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유럽의 예술을 지배하고 있던 19세기에 이 강렬한 그림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뒤늦은, 하지만 직접적인 반응으로 그려졌다. 그 사건이란 다름 아닌 민중들의 봉기와 핏빛 내전으로 이어진 프랑스 군대의 스페인 점령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한 고야의 극적이면서도 감동적인 묘사는 오늘날까지도 보는 이들을 흔들리게 한다. 그림의 메시지는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울림을 지니고 있다.

올랭피아 에두아르 마네│1863│캔버스에 유화│130.5 190cm│파리, 오르세 미술관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난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관습을 깨어버린 이 작품이 1865년 프랑스의 한 살롱에서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넘어 분노를 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2년 전 <풀밭 위의 점심>이라는 작품으로 이미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던 작가에 대해 평론가들은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올랭피아>에 대한 비판은 그 조잡한 조명이나 작품의 톤 등 형식적인 요소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볼 때, 진정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것은 당시의 사회적, 성적 관습에 대한 이 작품의 도전이었다.

해바라기 빈센트 반 고흐│1888│캔버스에 유화│93 73cm│런던, 내셔널 갤러리
단순한 형식과 열정적인 붓놀림 때문에, <해바라기>는 첫눈에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노란색 그림자와 다양한 표면 느낌을 통해 세심하게 이루어낸 조화로운 구성을 보면, 광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화가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모든 사람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기쁨에 넘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화가의 열망이 이 작품에서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 고흐 자신의 짧고 비극적이었던 삶처럼, 이 작품의 주제도 순간적이지만 매우 훌륭하다.

절규 에드바르드 뭉크│1893│마분지에 유화, 파스텔, 카세인│91 73.5cm│오슬로, 내셔널 갤러리
꺚悶Ю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비명소리꽭 들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그렸다는 이 작품은, 작가의 끔찍했던 개인적 경험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가 살고 있던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묵시록적인 분위기에서 이 작품은 여전히 날카로운 울림을 가진다. 이 작품은 바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소외를 표현하고 있는 현대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에서 빈번하게 이용되면서 그 효과가 미미해지기는 했지만, 근원적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 이미지는 아직까지도 보는 이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아비뇽의 처녀들 파블로 피카소│1907│캔버스에 유화│243.9 233.7cm│뉴욕, 현대미술관
생존해 있는 동안에 피카소만큼 일반인들의 상상력을 쥐고 흔들었던 화가는 없었다. 그는 가장 혁신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20세기 화가들 중 한 명이다. 뒤틀린 얼굴과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을 보여주는 <아비뇽의 처녀들>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몰이해와 혐오를 드러냈지만 그 이후로 줄곧 이 작품은 현대 회화의 시금석으로 받아들여졌으며, 큐비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가을의 리듬 잭슨 폴록│1950│캔버스에 유화│266.7 525.8cm│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잭슨 폴록이 1947∼50년 사이에 제작한 커다란 꺢湲?? 그림은 찬사와 조롱을 동시에 받았다. <가을의 리듬> 등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단순함과 자율성의 매력에 끌렸던 많은 사람들은 화가를 미국의 영웅으로 칭송하며, 작품의 장대한 스케일과 극적인 움직임, 그리고 혁신적인 표현 방법에 존경을 표했다. 반면 폴록의 작품을 경멸의 눈으로 본 사람들은 화가는 물론 그가 말하는 것까지도 모두 사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시대를 뛰어넘어 이제는 하나의 문화상징이 된 걸작들은 어떻게 탄생하여 어떻게 지금까지도 살아 숨쉬고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작품들은 아주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신비스러운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들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며, 또 그 이미지를 그토록 유명하게 만들어준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1501년에서 1950년 사이에 제작된 여덟 점의 미술작품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위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또한 갖가지 단서들을 맞추어가며 작품에 대한 구상에서부터 제작 과정을 거쳐 작품이 맞이하게 될 운명에 이르기까지를 검토한다. 그 과정에서 작품을 제작한 재원은 어디서 구했는지, 작가가 어떻게 그 작품을 준비했는지, 작업은 어떤 식으로 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또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다른 작가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레오나르도가 <모나리자>를 그리면서 새로운 투시법 형식을 고안해 냈으며, 그로부터 4백 년 후에 피카소는 루브르에서 그 초상화를 훔치려 했다는 혐의로 경찰 신세를 질 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 고야는 군주정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1808년 5월 3일>을 그렸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그림을 왕에게 선물했다는 것, 뭉크의 <절규>는 잉카 문명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며, 미국 CIA가 잭슨 폴록의 작품 제작을 지원했다는 사실 등도 알 수 있다. 그런 사실들 중간중간에 화가가 가족이나 연인, 후원자, 그리고 비평가들과 어떻게 지내왔는지 등 그들의 개인적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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