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현재 기술을 통해 무엇이 가능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두고 논쟁하고 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혁신 기술들이 인간성에 봉사하려면 어떤 역할을 했으면 하는지 보다 근본적인 탐구를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든 우리가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p.17
인간은 현재나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은 지금까지 이롭게 작동한 것은 무엇이든 형태나 형식을 좀더 개선하면 미래에도 잘 돌아갈 거라는 가정에 기반을 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새로운 현실을 앞에 두고 있다. 기하급수적이고 조합적인 기술 변화의 충격이 점점 커지면서 미래는 현재의 단순 확장일 가능성이 아주 낮아졌다. 오히려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가정의 틀과 기반 논리가 변했기 때문이다. --- p.27
‘외장 두뇌’는 ‘나를 아는(knowing-me)’ 단계에 이어 ‘나를 대표(representing-me)’하는 단계를 지나, ‘나 자신(being-me)’이 되는 단계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현실에서 이미 그런 기술적 인공물들이 우리의 디지털 복사본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별로 걱정이 안 된다면 외장 두뇌가 5년 안에 100배 가까이 증폭된다고 한번 상상해보라. --- p.33
인류의 미래가 달린 중대한 결정을 자유 시장이나 벤처캐피털리스트, 혹은 기업의 기술자들이나 세계 최강의 군사 조직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이윤과 성장만을 최우선하는 산업 시대 패러다임이나, 1980년대에는 통했을 수도 있는 시대착오적인 기술 준칙에 인간성의 미래를 내맡겨서는 안 된다. 기술이 거대한 새로운 수입원과 막대 한 수익을 창출한다는 이유만으로 실리콘밸리나 세계 최강의 기술 선진국이 ‘인간성의 관제센터’가 되어서도 안 된다. --- p.37
나 또한 컴퓨터가 인간 두뇌 수준의 능력을 갖게 되는 시점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커즈와일 박사와는 달리, 우리가 무한 한 비생물적 지능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해 인간성을 자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주 나쁜 거래이며 향상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에 해당한다. --- p.40
미래를 규정해나가는 것들을 생각할 때는 기하급수성과 ‘조금씩 그러다 갑자기’라는 두 가지 요소를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조금씩 그러다 갑자기’란 보잘것없는 데서 시작해서 엄청난 기회가 되거나 위협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잊히고 말거나,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형태로 눈앞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 p.43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질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이 존재하거나 사물을 경험하는 방식과 기술이 그 순간을 포착하는 방식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사진이나 동영상, 데이터 기록이 아무리 최 상의 것이라 해도 실제 상황에 대한 근사치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 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 안에는 고유한 순간의 맥락과 체화와 완결성이 존재한다. --- p.71
인간과 기계 사이에 닥칠 충돌은 다음의 10가지 대전환이 합쳐지면서 더 격해지고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될 것이다. 10가지 대전환은 이렇게 명명된다.
1. 디지털화(Digitization), 2. 모바일화(Mobilization), 3. 스크린화(Screenificaion), 4. 탈매개화(Disintermediation), 5. 변형(Transformation), 6. 지능화(Intelligization), 7. 자동화(Automation), 8. 가상화(Virtualization), 9. 예견화(Anticipation), 10. 로봇화(Robotization) --- p.78
특히 정치인과 공무원, 정부 기관 등은 자동화가 야기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더 뛰어난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 사회는 모두 그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려 깊은 리더십이 가장 결정적 요건이다. ‘미래의 관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공무원은 미래를 설계할 때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제 정치인을 뽑을 때 주요 투표 기준은 ‘현재 상황이 무엇인지(what is)’를 잘 파악하는 능력이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what might be)’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높은 이해력이 더 중요하다. --- p.107
자동화 과정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누진적 악화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1. 자동화(Automation)
2. 영합(Assentation)
3. 양위(Abdication)
4. 악화(Aggravation)
5. 혐오(Abomination)
--- p.108
조만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는’ 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점차 ‘세상을 속이려 들’ 것이다. 이미 나는 내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볼 때마다 얼마간은 속았다는, 아니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지만, 조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 p.121
인간을 기계와 확연히 구분 짓는 특징은 질문하는 능력, 뭔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상상하는 능력, 비판 능력,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능력, 행간을 읽는 능력,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보는 능력 등이다. 이것이 바로 고품질의 콘텐츠, 미디어,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바다. --- p.125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핵에너지나 핵무기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술을 발명하고 시험하고 있다. 기술의 빠른 진전은 불가피하다. 신기술을 발명하는 사람이 그것의 무해성을 먼저 입증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당장 이런 예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이런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p.151
결론은 이렇다. 마법을 팔고 난 다음 점점 강도를 높여가면서 중독성 혹은 독성을 파는 일이 디지털 시대 최대의 사업 기회가 될 것이다. 이것은 최악의 경우 정크푸드나 담배에 중독 물질을 첨가하는 것과 사실상 같다. 이런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다른 것에 우선해 인간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에 이르려면 기술 일변도 전략은 재검토해야 하고 제한해야 한다. --- p.178
진정으로 “구글이 내 아내보다 나를 더 잘 안다”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누가 누구를 섬기는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146 인류가 디지털 비만 신세가 되어 시스템 안으로 편입되는 상황은 지금 디지털 생활을 지배하는 몇몇 주체의 숨은 의제일까, 아니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까? --- p.192
데이터는 새로운 원유다. 빅 데이터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를 먹여 살리는 회사가 차세대 엑손-모빌이 될 것이다. 이들은 대중에게 새로운 마약을 열심히 공급한다. 각종 디지털 먹거리, 완전한 인터넷 연결, 강력한 모바일 기기, 무료 콘텐츠, 클라우드에서 봇으로 연결되는 소셜-로컬-모바일(SoLoMo) 슈퍼접착제, 지능형 디지털 비서(IDA) 등이다. 이들은 이전까지 소비자로 알려진 사용자가 그들의 플랫폼에 출석하고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실제로 사용자가 만들고 공유하는 여러 공급물을 다른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 p.194
기술의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현대의 핵심 문제는 예방(precaution)과 전향적 대응(proaction) 사이에서 지속 가능한 균형을 찾는 일이다. 예방이란 과학적 탐구와 기술 개발의 주어진 경로에 따라 나아가기 전에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가능한 결과와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까지를 포함해서 적극적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반면에 전향적 대응이란 모든 잠재적 위험과 파생 문제가 확연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기술 진보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태도를 말한다. --- p.201
행복은 프로그래밍할 수 없다. 자동화하거나 판매될 수도 없다. 복제하거나 코딩 혹은 딥 러닝으로 처리할 수도 없다. 인간 내부와 인간 사이에서 발산되고 자라나야 한다. 기술은 인간을 돕는 도구로서 존재한다. 우리는 기술을 사용하는 종(species)이지, 기술이거나 기술이 되도록 운명 지어진 종이 아니다. --- p.241
윤리적 질문, 즉 목적과 의미에 관한 쟁점을 기술적 가능성과 비용의 문제보다 먼저 제기해야 한다. 앞으로 기술에 대한 주된 질문은 무엇이 실행 가능한지가 아니라 왜, 언제, 어디서, 누가 그것을 해야 하는지 여야 한다. --- p.265
기술의 개발과 실행에 관한 미래의 전략적 결정은 가능성과 비용, 규모, 이윤, 성장 기여도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타당성과 맥락, 목적, 의미, 적실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떻게’를 촉구하는 질문 앞에 ‘왜’라는 질문을 둬야 한다.
--- p.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