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5월 20일 경북 영천 출생, 어려서는 한문과 여학교 강의록으로 공부하였고, 뒤에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하였다. 영천공립보통학교 교원에 이어 자인공립보통학교(玆仁公立普通學校) 교원으로 근무하다 여성동우회(女性同友會)·여자청년동맹(女子靑年同盟) 등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이 탄로나 해임당하였다.
1929년 『조선일보』에 박계화(朴啓華)라는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식민지 조국의 민중들이 겪었던 궁핍한 삶에 대한 글과 여성의 능동성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억압에 대한 다양한 문제에 걸쳐 글을 썼다.
그 가운데에서 러시아 국경을 넘나드는 한국인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린 <꺼래이>와 가난하기 그지없는 두 며느리, 특히 맏며느리의 출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매촌댁 늙은이’의 애환을 그린 <적빈(赤貧)> 등은 여성 리얼리즘을 확보한 작품들로 이야기되고 있다.
1938년 중국 상해(上海)로 여행가기도 했으나 이듬해에 위장병의 악화로 작고하였다. 고향 영천에서는 백신애 문학상과 문학제를 운영하면서 그의 삶과 문학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