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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국어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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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국어시간

김우전 | 애지 | 2020년 11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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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260g | 128*188*20mm
ISBN13 9788992219952
ISBN10 8992219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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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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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모였어
멧돼지 빼곤 다 왔니더
그래, 이놈 어디 오기만 와 봐라
작년엔 고구마도 반 넘게 캐 먹고
옥수수는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치우더니만
어쭈, 이젠 지각까지 해?

다른 건 안 가르치고
출입을 금합니다만 가르칩니다
그 글자 눈에 박히도록
그 구절만 보면 발길 절로 돌려지도록
백 번씩 외게 해놓고
참나무에 등 대고 참바람 소리 안주삼아
나는 막걸리를 마실 겝니다
음주 수업인 셈이지요

막걸리 냄새 맡고 지각생 멧돼지 킁킁거리며 오겠지요
벌주를 먹여야겠지요
나는 잔에, 놈은 병째
주거니 받거니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지요
잠결에 볼 핥는 축축하고 뜨듯한 기운에 실눈 뜨면
샘요, 종례 안 합니꺼 아-들 다 가뿌렀니더
둥글고 새까만 눈망울의 고라니만 남아
시큰둥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겠지요
---「숲 속 국어 시간」중에서

담배 생각 꾹 눌러가미 참고 있는데 믄 시커먼기 떼거리로 기들어와가 고구마 이랑을 파디비기 시작하는데, 저놈이구나 싶어 몽디를 꽉 쥐고 후라시불을 쏘았다 아인교 바로 그 때, 하이고 내사 마, 환장하는거 - 따라 놓은 막걸리를 벌컬벌컥 들이켠다 - 너구린지 멧돼진지 잔뜩 웅크리고 날 노리보미 도망도 안 가고 씩씩 거리는데, 아 그 배때지 밑으로 갓난쟁이 머리통만한 새끼들이 종종거리며 기어드는데 - 철철 넘치는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켠다

내 그걸 보고 우예 두억시니맹키로 몽디를 휘두르겠능교 내사 기인긴 겨울밤 어무이캉 내캉 심심풀이로 깎아 묵고 삶아 묵을라 카는 긴데 아, 지놈들은 목심이 걸린 일 아이겠능교, 아 목심 말입니더 그걸 아는 내가 우예 그라겠노 말입니더 내도 명색이 사람 아임니꺼 -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울대뼈 오르락내리락 들이켠다 - 그래가 고마 후라시 끄고 사알살 나와삣다 아임니꺼

오늘, 날 새는 대로 밭에 안 가봤심니꺼 또 및 구딩이 파디비 났데예 쪼맨한 발자국들은 큰 발자국 따라 쫄래쫄래 산으로 올라갔고 마, 한 잔 더 따라 보소 내 안직 안 취했구마 마이 묵고 너그 새끼들 잘 건사해라 내 인자는 너그 묵는 거 간섭 안 할 끼구마는 내가 심은 고구마 먹고 크니까 너그는 내 새끼도 된다 아이가 마이 무라 어무이캉 내캉 긴긴 겨울밤 깎아 묵고 삶아 묵을 꺼는 남기 나야 된데이 카고 웃고 말았심더

보름 가까워 오는 달은 오늘밤 고구마밭 품에 안고 탱탱 불어오른 젖 물릴 것이다 너구린지 멧돼진지 그놈 식구들 오늘밤도 배가 든든할 것이다 김 형 흥얼흥얼 갈지자걸음으로 돌아가는 길, 달이 따라가며 처진 어깨 두드려주고 있었다 달은 방까지 따라가 엉덩이 둥실한 색시처럼 그의 넓은 품에 안겨 막걸리 냄새에 더불어 취할 것이다
---「고구마 밭에서 생긴 일-유금리 시편」중에서

1
엄마 아빠 이혼한 뒤 외가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지내다 굶주린 개에게 물려 죽었다 살점 천 갈래 만 갈래 뜯겼단다 아홉 살이었단다 개는 경찰이 쏜 총알 받고 죽었다 한다 하느님 나라에서 둘은 다시 만났단다 아이는 꿰맨 자릴 보여 주며 씨익 웃었고 개는 송곳니 드러내며 총구멍 보여주고 멍 웃었다 한다 때때로 아이는 총알 지나간 구멍 막아주고 개는 꿰맨 자릴 핥아주며 구름 들판 뒹굴며 논다더라
---「오늘」중에서

여자는, 누레진 수건 머리에 두른 여자는 작은 몸 콩벌레처럼 말고 산비탈 콩밭을 맵니다 아이는, 밭두렁에 퍼질러 앉은 코찔찔이 아이는 개미 몇 마리 손바닥에 올려놓고 놀다 산도라지 몇 뿌리 캐먹습니다

목이 마르고 혓바닥 알싸해서 뱀딸기 몇 알 따 먹고 근처 옹달샘으로 가서 엉덩이로 하늘 보며 아이는 개처럼 물을 먹습니다 헛헛한 배가 출렁출렁 달고 맑은 샘물로 채워졌습니다

아이는 샘물에 어른거리는 낯선 얼굴을, 나뭇가지로 찌르자 달아났다 이내 나타나는 땟국물 흐르는 둥글넓적한 얼굴을 보며 같이 킬킬거리느라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도 대답을 안 합니다

엄마 혼자 집에 간다는 말에 나뭇가지 던지고 뒤뚱뒤뚱 달려갑니다 여자의 등에 업혀 좁은 산길 내려오며 먹다 남긴 감자떡이 떠올라 군침 삼키다 산골짜기 옹달샘에 홀로 남은 아이가, 많이 본 듯한 그 아이가 가엾다 생각하며 잠이 듭니다

잠에서 깨어나니 아이는 어느 낯선 집에 부려져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했습니다 옹달샘에 혼자 남은 아이는 잊어버렸습니다 안경 쓴 얼굴에 시계가 손목을 죄고 있었습니다 개처럼 물을 먹지 못하고 술 먹는 개가 되어 있었습니다
---「개처럼 물을」중에서

소나기 그치고 일광욕하는 굴참나뭇잎들
멸치떼 몰려다니는 것 같다
나는 삐걱삐걱 기어들어 벌거숭이로 눕는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비릿한 내음
나는 태아같이 웅크린다
양수처럼 에워싸는 나무들의 그림자

숲의 뿌리 깊은 묵언에 등 대고
아득하게 흘러가는 구름같이 헤엄쳐본다
풍선처럼 떠오른 나는
향 맑은 바람에 섞인다
나뭇잎에서 햇살은 탭댄스 추며
온몸 반짝이게 한다

경계 없는 허공 누비던 새들은
깔리는 어둠 들추며 돌아오리라
숲은 오늘 가장 먼저 당도한
일억 년 전의 외로운 별을 마중하리라
별들은 떼를 지어 날아와
주렁주렁 반짝이는 잎으로 걸리리라

밤이 되면 빛잔치 흥성이리라
갓난이처럼 말랑말랑해진 나를 태우고
숲은 거대한 배가 되어
허공 바다로 떠오르리라
뿌리들은 배를 저어 가리라
고래등 같은 무덤들은 헤엄치며 따르리라
---「숲에 눕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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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자연의 이법(理法)을 살피고 따르며 자연계와 인간계를 하나로 아우르는 시의 온축(蘊蓄)이 여사여사한 동리(洞里)를 이루고 있다. 장삼이사의 삼이웃들과 너나들이하는 마음의 지극한 심경(心經)이 자연의 풍정(風情)과 어우러져 늡늡하고 여여하다. 이는 천민자본주의에 매수당한 속악한 마음에 맑은 풍경소리를 틔우는 일만 같다. 강퍅한 마음, 그 이기심이 횡행하는 세상에 주변과 천지본성을 살피려는 헤아림이 얼마나 종요롭고 미쁜 것인가를 김우전의 시편은 맑고 웅숭깊게 밝혀 심감(心感)하게 한다. 무엇이나 같이 살려는 것은 그 죽음을 멀리하듯 같이 살피고 그 미만(彌滿)한 고통의 여줄가리에 꽃을 던져 미소를 건지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이는 시인 김우전의 무구한 속종과 자연에의 친밀감과 기꺼운 노동과 인간에의 긍정이 그의 시업(詩業)의 본령과 맞닿아 있음이다. 김우전이야말로 너나들이하는 자연과 순정한 이웃과 혈연이 하나로 갈마드는 진정한 공동체적 선의(善意)를 우주의 지구 분대장처럼 가꿔내려는 시의 목자이자 경작자가 아닐 수 없다.
- 유종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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