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나라와 나라를 구분 짓는 국경선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국경선은 사실 지도에 그어진 선 또는 역사학자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선일 뿐이다. 이 깨달음은 지구를 하나의 나라, 하나의 여행지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달이나 화성을 처음 탐사할 때 달이나 화성 전체를 목적지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른 태양계에서 온 우주인이라고 가정하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다른 별에 가려던 우주 여행자가 지나는 길에 지구에 몇 년 들렀다 가기로 했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주 여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가 하나의 목적지가 아니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진다. 지구는 여러 나라의 집합체가 아니라, 다양한 자연 풍광과 아름다운 풍경, 셀 수 없이 많은 문화, 무수히 많은 동식물,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을 담아내는 하나의 여행지가 된다. 그러면 비로소 굳게 결심하게 될 것이다.
“지구 전체를 봐야겠어!”
---「PART 01 지구별 오디세이」중에서
“대체 이게 뭐죠?”
줄을 서 있던 중국인에게 물었다.
“두부죠.”
“두부 아니잖아요. 저도 두부 먹어봤는데 이렇게 생기지도, 냄새가 나지도 않았다고요!”
“아니, 이건 취두부(발효시킨 두부를 튀긴 것)요.”
나와 중국인의 대화를 들은 다른 중국인이 말했다.
“아오, 냄새가 정말 끔찍한데요.”
“그렇죠. 그렇지만 정말 맛있다오.”
내 뒤에 서 있던 중국인이 미소 지었다. 바로 그 순간, 여행의 요정이 속삭였다. ‘사람들이 30분씩이나 줄 서서 먹는 이걸 왜 먹는지 알아보지 않고 그냥 갈 수야 없지. 이건 꼭 먹어봐야 해!’ 그래서 나도 줄을 섰다. 배고픈 중국인들 틈에서, 악취를 맡으며, 누군가가 종이접시에 똥을 담아서 건네주기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첫 한 입은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두 입째에는 두부를 코앞에 가져가 가까이에서 냄새를 맡았다. 가까이에서 맡는 냄새와 멀리에서 나는 냄새는 완전히 달랐다. 단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라는 점에서 꽤 흥미로웠다. 멀리서 맡은 냄새는 두부를 튀기는 과정에서 기름과 아직 튀겨지지 않은 두부가 만나 내는 냄새임이 분명했다. 요리가 끝난 두부가 내는 냄새는 달랐다. 겪어 보니 가까이에서 맡는 발효 두부의 냄새와 맛은 조화로웠다. 코와 입으로 취두부를 탐색하자,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아로마가 서서히 느껴졌다. 점차 취두부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버리고 꽤 맛있다고 인정하게 됐다. 다 먹고 나니 초콜릿을 먹고 난 다음처럼 더 먹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첫 취두부를 다 먹고 노점상 앞으로 돌아갔다. 방금 튀겨진 취두부를 두 번째로 먹었을 때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거 진짜, 진짜 맛있는데?
---「PART 03 새로운 여행 철학」중에서
내가 지금 와 있는 곳은 파푸아뉴기니.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광경이라는 듯,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이들 눈앞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백인을 봤단다. 어떤 아이들은 내가 다른 세계에서 온 유령이거나 무서운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두 명은 잡아먹힐까 봐 무서워서 울기 시작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내게 까만 귀신이 잡으러 온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이들의 할머니 역시 하얀 귀신이 온다고 한 모양이다. 내가 그들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것보다 그들이 나에게 더 호기심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그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러 간 것이었는데, 나 또한 천 배는 더 많이 관찰되고 연구되고 있었다.
인도의 중심부, 데칸 고원을 집중적으로 여행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행자가 거의 찾지 않는 아주외딴 마을에 가게 되었다. 방향을 물어야 해서 타고 있던 택시의 창문을 내리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쏟아지는 빗속에 아이들이 택시 근처로 달려왔고, 창문 안을 들여다본 아이들은 다른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얼굴을 관찰하는 아이들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빗속에서 멍하니 최면이라도 걸린 듯 서 있었다. 아주 잠시 동안, 내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라도 된 기분이었다. 올림포스 산에서 내려와 인간에게 신의 메시지를 전하러 온 기분이랄까? 처음으로 만난 이 아이들이 신의 메시지를 들을 선택받은 인간이었다. 인도의 신들을 찾아 여행하는 동안, 기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이 아이들에게 나 또한 그런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라 생각하니 묘한 전율이 느껴졌다.
---「PART 04 여행과 인생의 평행관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