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부가 징그럽고 꺼림칙하다며 피하는 아이들 앞에서 늘 무력해졌다. 그 후로 나는 성이 백씨이고, 얼굴이 건조하고 주름져서 할머니 같다는 이유로 ‘백 살 먹은 마귀할멈’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 사실이 별로 슬프지도 않았다. 나는 이미 내 피부를 혐오하고 있었고, 이어서는 나 자신을 혐오했고 그래서 다른 이들이 내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 pp.26-27
나는 내 몸을 사랑하는가, 내 몸을 긍정하는가에 관해 오래 생각했다.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오래 보류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나는 여전히 내 몸을, 내 피부를 사랑하거나 긍정하지 못한다. 그럼 나는 나를 실패한 걸까? 사랑하거나 혐오하거나, 둘 중 하나만 있는 것일까? … ‘내 피부를 사랑해야 한다’라는 미션은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절대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는 산이었다. 내 생각은 ‘내 피부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두 가지에만 매몰되어 있었으니 어떤 짓을 해도 결국 내 피부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없었다.
--- pp.41-42
이상하게 먹어도 마음이 허했고, 배가 부르지 않았다. 계속 배가 고팠고,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날이 갈수록 예민해지고, 사람들을 피하고 싶어서 집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먹은 것을 토해낸 뒤 지쳐서 방에 앉아 있었다.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정상인가? 진짜 이대로 지속되어도 괜찮은가?
--- p.53
다시 하고 싶은 것들이 생각났다. 다이어트뿐이었던 스물네 시간이 다채롭게 나눠지고 있었다. 식욕이 하루 동안 가졌던 욕구의 전부였다면, 이제 다른 것들이 욕심나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데 1년 조금 넘게 걸렸지만 균형적인 일상을 되찾았다. 그리고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지금의 내 모습으로도 당당하게 모델이 되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꿈은 나를 망쳤지만, 다시 또 살아갈 힘을 주었다.
--- p.57
남도 아닌 딸에게 보이지 못할 몸이란 대체 무엇인가. 딸에 대한 걱정과 자신에 대한 자존심, 부끄러움, 고통이 뒤섞였을 저 연두색 타월 뒤의 몸. 그게 뭐 어때서, 라고 내가 아무리 생각해봤자 그건 내 가슴이 아니다. 그건 부끄러울 일도 뭣도 전혀 아니야, 라고 내가 아무리 얘기해봤자 그건 내 몸이 아니다. 나는 모르는 일인 것이다. … 그 후로 나는 엄마의 가슴 쪽으로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어느 쪽이 수술한 가슴인지 잊을 정도로.
--- pp.75-76
여행의 핑계 말고 이유는 비교적 정확하다. 이제야 갈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리고 자유롭게 갈 수 없을 날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어느 때부터인가 나와 위아래 다섯 살 안쪽 나이 범위에 있는 친구들과 모이면 새로 발견한 영양제와 최근에 받은 검사에 대한 것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어떤 주제로 시작하든 늘 귀결은 몸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그런 나이인 것이다. 하루 종일 걸어도 그저 즐겁기만 한 여행과는 멀어진 나이.
--- p.84
학교에서 남자아이들이 몽정과 발기에 관해 배울 때 여학생인 나는 생리와 임신에 관해 배웠다. 신체의 발달과 함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으나 클리토리스가 가진 멋진 기능을 알지 못했던 10대의 나는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 pp.94-95
우리는 코도, 입도, 성격도, 피부색도 하다못해 점의 위치 하나도 다 다르게 생겼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성기도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어쩌다 우리의 아랫도리는 이름도 다양성도 잃어버린 것일까. 성인 여성의 생식기는 종종 핑크빛으로 표현되며, TV 화면 속 사람들에게서 겨드랑이 털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영화 속의 정사는 남자가 앞뒤로 몸을 몇 번 움직이면 여성은 강력한 흥분을 느끼곤 하며, 청소년의 성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때는 대부분 남학생이 등장한다. 이런 비현실적인 현실이 오늘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닐까.
--- p.108
타투는 우리가 살며 하는 수많은 선택들 가운데 몇 안 되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벽은 너무나도 높게 느껴진다. 어느 정도의 고통이 수반되는지, 이 타투가 정말 상상하는 모양대로 내 몸에 남을 것인지, 늙으면 어떻게 될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과정 끝에 내 몸에 남는 것은 나이테와 같은 기억의 흔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잉크는 내 몸과 함께 늙는다. 햇볕과 시간에 의해 톤이 변하기도 한다. 작업을 받고 아무는 과정에서 조금 많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냥 그대로 둔 경우도 있다. 내 몸 몇 군데에 같이 늙어가는 친구를 두는 것이다.
--- pp.128-129
웜업을 할 때는 시선이 많이 쏠리진 않는다. ‘여성들이 할 법한’ 동작들로 하기 때문이다. 인치웜, 마운틴클라이머, 팔벌려뛰기와 같은 간단한 맨몸운동과 3킬로그램 핑크 덤벨로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사회적 문법에 딱 들어맞아 튈 일이 없다. 하지만 웜업이 끝나고 트랩바에 능숙하게 원판을 꽉 채워 고중량 데드리프트를 하고 있으면 별종 여성으로 프로파일링되기 마련이다. 꼭 한 번은 남성 트레이너가 다가와서 말을 건다. “회원님, 원래 운동하는 분이세요?”
--- pp.157-158
팀버에서는 각 멤버의 체형에 따른 운동 동작의 유불리함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외에 별다른 사회문화적 맥락에서의 몸매 평가는 없다. 몸매가 사라진 공간에서 각 회원들은 수업이 진행될수록 어떻게 하면 더 잘 움직일 수 있을지 고민하며 몸을 기능적으로 해석하는 법을 배워간다.
--- p.166
막상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노력이 주는 결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밤에 30분씩 달린다고 해서 몸에 다이내믹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살이 조금 빠진 게 아닐까, 스스로 믿게 되는 정도다. 그렇다면 온몸에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은 그녀들의 노력은 대체 얼마만큼의 고통이 수반된 것일까. 왜 그렇게까지 운동을 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단지 건강을 위해서라기에는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너무 큰 것 아닐까? 그 해답을 탐구하기 위해 출발한 이야기가 [아워 바디]였다.
--- p.174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유일하게 뜻대로 되는 내 몸을 움직여보고 싶다는 누군가의 말에 강하게 공감한 동시에 연민을 느꼈다. 어느 자리에 있어도 인생은 다 힘든 거구나, 다 벽에 부딪히는구나 싶었다. 이야기를 써서 누군가를 섣불리 위로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는 답답한 현실을 인정해주길 바랐다. 가시화된 성취를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사회에서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젊은 몸뚱이밖에 없으니 이렇게 매달릴 수도 있는 거라고. 하지만 이것마저 답이 아니라면 그땐 어떻게 살아야겠느냐고 묻고 싶었다.
--- p.189
상처 난 마음과 몸을 묻기로 결정한 나는 침묵했다. 이 시간만 잘 버텨내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꾸만 삐져나오는 감정을 더 깊이 묻어두기 위해 노력했고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에게 더 가혹해졌다. 진솔한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 인내해왔던 모든 시간과 노력이 무용지물이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이해받지 못한 마음과 몸은 알 수 없는 곳에 파묻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갔고, 그런 몸은 다른 몸에 온전히 자리를 내어주지 못했다. 빈 공간. 애써 채우려 했던 빈 공간은,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 pp.2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