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하고 우디는 어디 갔지?”
오거스트가 물으면서 헨리와 눈을 맞췄지만 헨리는 바로 눈길을 돌렸다. 오거스트도 대답을 바라고 물었다기보단 그냥 혼잣말처럼 한 말이었다.
“산책하러.”
만화영화에 나오는 겁쟁이 생쥐가 내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헨리가 대답했다. 놀란 오거스트는 눈썹을 치켜올린 채 헨리가 또 다른 말을 하지 않을까 싶어 계속 주시했다. 헨리는 으레 그렇듯 그의 시선을 피했다.
“말할 수 있구나.”
헨리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하지 않기로 했던 거야?”
헨리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로 마음을 바꾼 거니?”
헨리는 어깨만 으쓱했다.
오거스트는 다시 누웠다. 헨리가 다가와 오거스트의 날갯죽지 사이에 이마를 댔다.
---「Part One: 6월 초 | chapter 8. 웨스의 말」중에서
“우리 아빠가 알코올 중독이라고 생각하세요? (……) 확실하게 말해주실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아저씨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요. 꼭 알고 싶어요.”
“좋아, 그럼 말해줄게. 난 음주운전 판결을 세 번이나 받은 사람은 거의 대부분 알코올 중독이라고 생각해. 알코올 중독이 아니고 그냥 술을 좀 과하게 마시는 사람들은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쯤 처벌을 받고 나면 둘 중 한 가지 태도를 보일 거야. 술을 끊거나, 술을 마시면 운전을 안 하겠지. 하지만 세 번이나 그런 판결을 받을 만큼 술에 미친 사람은 십중팔구 알코올 중독일 거야. 난 사실 네 아빠를 판단할 만큼 잘 알진 못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실로 추측한다면, 네 아빠는 알코올 중독이야. 그리고 내가 네 아빠를 알코올 중독으로 보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어. 바로 너 때문이야. 아빠가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면 네가 지금처럼 속상해하진 않을 거야.”
---「Part One: 6월 초 | chapter 9. 세스, 모임에 가다」중에서
“그냥…… 모르겠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난 여기 오고 싶었어. 너도 아는 것처럼. 그 애를 위해서 오고 싶었지. 그런데 막상 여기 와서 보니 내가 뭘 기대하고 온 건지도 모르겠구나.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고, 달라진 것도 없어.”
(……)
“아저씨, 슬퍼하지 마.”
오거스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염없이. 그는 눈물이 마를 때까지 마음껏 울었다.
두 아이는 여전히 오거스트를 감싸 안은 채로 있었다. 헨리는 한 팔로 오거스트를 꼭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오거스트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디를 쓰다듬을 때와 거의 똑같이.
---「Part One: 6월 초 | chapter 10. 네 번의 실형」중에서
“제가 하려는 말은, 제가 아는 한 우리는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전 아직 아이에 불과하고, 아빠만큼 많이 알지도 못해요. 아니, 아는 게 거의 없을 수도 있어요. 엄마가 떠난 얘기는 더 이상 안 할게요. 하지만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아이들이어야 한다는 말은 하고 싶어요. (……) 엄마는 떠났지만 아빠는 우리 곁에 있었어요. 저도 그걸 알아요. 아빠는 지금껏 우리와 함께했고, 다른 일을 좇아서 집을 떠나지도 않았다고 말씀하시겠죠. 네,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에요. 아빠는 일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만 집에 남겨놓고 술집으로 달려가곤 했으니까요. 아빠는 일곱 살인 저와 두 살인 헨리만 남겨놓고 때로는 몇 시간 동안, 때로는 밤새 집을 비우셨죠. 전 그때 두 살배기 동생을 돌볼 수 있을 만큼 큰 애가 아니었어요. 저도 그런 걸 알았는데, 아빠는 모르는 것처럼 술집으로 가셨어요. 그때 저는 집에 불이 나거나, 누가 문을 부수고 집에 들어오려고 하거나, 갑자기 헨리가 숨이 막히거나 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였는데도요.”
---「Part Two: 8월 말 | chapter 5. 아이들의 집으로」중에서
“만일 저희가 아저씨를 그토록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아빠도 아저씨를 그렇게까지 질투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
“너희가 나를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어.”
마침내 오거스트가 말했다. 하지만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즉시 그는 후회했다.
헨리가 들고 있던 컵과 그릇을 내려놓고 오거스트를 향해 돌아섰다. 두 손을 허리께에 얹고 입을 딱 벌린 채로.
“정말 모르셨어요? 아저씨는 저희에게 영웅이었어요. 슈퍼맨 같았다고요. 저희를 구해준 사람이었으니까요. 저희는 아저씨를 거의 신처럼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걸 모르실 수 있어요?”
---「Part Three: 8년 후, 5월 말 | chapter 4. 암벽 등반」중에서
“어떻게 달랐어요?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 여름이라고 생각하시면서 여행하는 기분이 어떠셨어요? 슬프셨어요?”
오거스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잠시 생각했다.
“때로는 그랬지. 하지만 대개는 모든 순간을 기억 속에 새기자고 계속 나 자신을 일깨웠어.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그 어떤 것도 잃지 말자고. 그래서 ‘이 순간을 즐기자.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말자. 기억에 새기면서, 감사하면서 보내자.’라고 되뇌었지.”
“아저씨가 이번 여름이 마지막이 아니란 걸 모르셨던 게 오히려 잘된 것 같은데요. 모름지기 여름은 그렇게 보내야 하잖아요.”
“맞는 말이야. 난 매년 여름을 그렇게 보낼 생각이다.
---「Epilogue: 8월 말의 어거스트 | 요세미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