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주석가들이 신약성서 그리스어 관련 연구를 다룰 때 유념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최근 언어학 연구의 혁신 내용에 대한 숙지는 물론, 이런 연구 결과를 자신들의 주석 작업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이런 연구들의 색인을 훑어보며 주석 중인 관련 구절의 언급 유무를 확인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는 주석가들이 방법론적인 구조에 정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런 구조 측면에서 본문을 면밀히 분석하며, 그 결과로 주어지는 새로운 깨달음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주석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이런 주석의 결과가 전통적 방식의 주석이 다루는 기본적이거나 일반적인 질문에 답을 제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롭고 도발적인 관점과 결론을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주석의 목적이 기존의 검증된 결론을 단순히 재진술하는 데 만족해버리는 순간, 본문에 대한 새로운 통찰의 가능성은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복음주의 학자들이 최근에 이루어지는 이런 연구의 상당 부분을 최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연구한 결과물의 유효성을 시험하라는 도전 과제를 우리에게 떠맡긴다.
--- 「제4장 “그리스어 문법과 구문론”」 중에서
신약성서 저자들은 종종 구약성서 구문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부주의한 주석 작업 또는 무지가 아니라, 구약성서가 모든 중요한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특히 처한 상황이 종말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질 때 이런 현상은 뚜렷해진다. 따라서 구약성서는 상황에 대한 명료한 규명을 위해 탐구된다. 신약성서 주석은 과거에 발생한 일 혹은 본문의 일차적 의미와 관련해서는 좀처럼 질문하지 않는다. 신약성서 저자들은, 동시대의 유대교 주석가들처럼, 주로 구약성서의 의미와 적용에 관심이 있었다. 예수의 삶, 죽음, 부활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구약성서 이해와 적용에 대한 해석학적 열쇠가 되었다. 구약성서를 통해 종말론적 사건이 지닌 의미가 규명되었고, 예수는 종말론적 대리자였으므로, 구약성서가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명제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 「제7장 “구약성서 속 신약성서”」 중에서
21세기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도 역사적 예수의 기적과 관련하여 이루어져야 할 연구가 여전히 많이 있다. 복원된 예수의 생애에 기적이 포함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한 상태다. 다시 말해, 기적이 실제로 예수의 생애에 포함되는가? 그렇다면 이 기적은 예수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가, 아니면 부차적 의미를 지니는가? 또 기적의 의미는 무엇인가? 크로산의 말처럼, 기적은 억압받는 식민지 백성에 대한 예수의 반응으로 보아야 하는가? 스미스의 경우처럼, 기적은 예수가 마술사였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하비의 경우처럼, 예수가 일반적 개념의 메시아, 혹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바로 그 메시아였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또는 샌더스의 논의처럼, 우리는 기적으로부터 명확한 어떤 것을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가? 아니면 기적은, 라이트의 제안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라의 물리적 시작을 의미하는가? 게다가 예수는 대다수 학자가 인정하는 것처럼 단순한 치유자와 축귀자에 불과했던 걸까? 아니면, 예수는 인간의 숭고한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위업을 수행할 수 있었던 걸까? 하지만 이 질문에 확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학자는 거의 없다.
--- 「제10장 “예수의 역사 속 기적의 역사”」 중에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단언하고 있다는 점이다(롬 9-11장). 바울의 이해에 따르면, 이 부르심은 철회될 수 없다(11:29). 대다수 로마서 주석가가 인지하고 있듯이, 바울에게 자명한 이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란 이스라엘을 향한 그분의 신실하심을 의미하며, 이는 창조 세계 전체에 대한 그분의 신실하심 안에 포함된다. 비록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이스라엘을 포함하는 모든 창조 세계에 대한 그분의 책임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 이야기의 내용이 제한되거나 더 잘 규명되어야 하지만, 그리스도인인 바울에게 이스라엘 이야기가 지닌 기본 틀은 여전히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 「제16장 “바울 신학”」 중에서
베드로전서의 전승 사용에 관한 또 다른 요소는 베드로전서와 다른 초기 기독교 문헌의 관계다. 베드로전서 학계에는 베드로전서가 신약 성서의 책 중 한 권 이상에 의존한다는 주장이 넘치도록 존재한다. 이런 주장은 베드로전서와 이 서신이 사용하는 책 사이에서 발견되는 “병행 내용”에 근거한다. 그러나 성서 연구에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런 “병행 내용에 대한 열광”으로 인해 학자들이 해당 증거가 실제로 지지하는 내용 이상을 주장하게 된다는 점이다. 존 엘리엇은 이 병행 내용에 대한 유용한 개관을 제공하여 많은 학자로 하여금 문학적 의존을 주장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옌스 헤르처(Jens Herzer, 1998년)의 연구를 비롯한 가장 최근의 연구들은 베드로전서와 다른 신약성서 책 간의 문학적 의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베드로전서의 마태복음 의존을 주장하는 라이너 메츠너(Rainer Metzner, 1995년)와 같은 학자도 여전히 있지만 말이다.
--- 「제18장 “베드로 서신: 최근 연구의 발전과 동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