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삶이라고 하고, 누구는 지옥이라고 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외롭거나 낙심하거나 우울하거나 한두 번쯤은 죄의식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또는 병든 것은 아니지만 인간관계의 바다에서 탈진했거나 그저 지쳐 있었다. 이런 것은 그들이 직접 자신의 문제를 말해 주었기 때문에 알게 되었지만, 어떤 때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헤쳐 나갈 수 없는 곤경에 처해 있는데도 눈은 사랑과 자유, 기쁨으로 빛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반면에 매력적인 외모를 지녔건만, 잔뜩 겁을 먹고 두려움과 고뇌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원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손쉬운 답은 없다. 고통은 나이나 사회적 지위나 수입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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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운명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 걸까? 그러나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장벽 몇 개만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 장벽들이 우리 삶에 불가피한 요소라고 체념해 버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각자가 존재한다는 기적 같은 사실과, 다른 이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기쁨같이 인간적 체험이 주는 풍요로움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나아가 공중에 떠다니는 미생물부터 상상을 초월하게 광대한 은하계와 별들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우주라는 위대한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어렴풋이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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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당신의 죄까지도 사랑하라. 그러면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 말은 죄악을 포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죄를 빨리 인정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치유가 필요함을 더욱 빨리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예수님도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오직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창녀와 세리, 눈먼 사람과 절름발이, 귀신 들린 이들을 위해 오셨다. 예수님 역시 결코 ‘좋은’ 분은 아니었다. 안식일에도 일한 노동자였으며, 성직자들의 가면을 벗겼고, 정치 지도자들을 여우라고 비난했으며, 성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 p.77
죽을 때는 당신이 누구인지, 어느 학교에 다녔으며 무엇을 성취했고 얼마나 벌었는지, 일을 아주 잘했는지는
털끝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죽음 앞에서는 강한 도덕적 의지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내면의 불안과 육체의 고통이 뒤섞일 때, 다가오는 죽음이 자아내는 두려움과 후회, 고뇌에 직면했을 때에는 아주 침착한 사람이라도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종의 순간에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다. 아주 구체적인 잣대로 잴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었는지 아니면 주지 못했는지, 하나님을 의지했는지 아니면 그분을 피하려 했는지, 사랑이 충만했는지 아니면 부족했는지, 겸손했는지 반대로 교만했는지 등이 바로 그런 잣대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반대로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
--- pp.106-107
인간은 변덕스럽기 마련이므로 깨끗한 도화지도 영원할 수 없고, 사랑이나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할지 몰라도, 실제 생활에서는 금방 비바람을 맞게 되므로 번쩍이는 메달처럼 수시로 닦아 주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진정 새로 태어나는 일이 ‘영생의 보장’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확신하는 이유다. 물론 죽음은 새 생명을 가져다준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기거나 서거나 걸을 수 없는 신생아 상태에 만족한 채로 있어야 할까? 아니면 그 이상의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닐까?
--- p.148
현재에 매여 있으면서 영원에 사로잡히려면, 종종 지옥 같아 보이는 세상에서 천국을 위해 살려면, 그리고 이기심과 탐욕, 권력욕이 보상을 받는 문화에서 사랑과 겸손을 위해 살려면, 분명 날마다 싸워야 한다. 이것은 영적인 싸움이겠지만, 그렇다고 덜 실제적인 것은 아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서로 타협할 수 없는 힘들은 자주 고통스럽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충돌한다.
--- pp.188-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