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마흔을 앞둔 비혼 여성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과, 프리랜서로서 삶의 균형을 잡고 내일을 준비하며 일하는 팁, 독립노동자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담겼다. 프리랜서는 누구인지, 비혼 프리랜서나 기혼 프리랜서는 어떤 차별에 노출되는지, 나이가 들고서도 일터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프리랜서는 노동의 리듬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왜 자주 쉬어줘야 하는지, 어떻게 돈을 벌고 모아야 하는지, 자신만의 브랜드를 쌓아 나가야 하는 이유는 뭔지 적었다. 모두가 프리랜서가 된다는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연대는 무엇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의 글이 대대손손 남아 정철의 「관동별곡」처럼 읽히지는 않겠지만 이 여행지에 막 도착한 여행자가 넘겨보는 족보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
--- p.10
여성 혐오 사회에서 여자로 일하면 매 순간이 ‘미션’이다. 어디까지 용인하고, 어디서부터 화를 내야 할지 테스트를 받는다.
일하는 곳에서 상대방의 혐오 발언에 대처하겠다고 마음먹어도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여성이기도 하고, ‘을’이기도 해서 이중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게는 늘 ‘부드럽게 대처할 것’ 혹은 ‘유머 있게 받아칠 것’이 권장된다. 그건 조직에 있을 때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였다. 조직에 있으니 안전할 거라는 건 착각이다. 조직 안에서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따돌림을 받거나,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되어 자기가 원하지 않는 부서로 옮겨지는 사례는 너무 많다.
화가 나서 쏘아붙이면 ‘드센 여자’가 되고, 부드럽게 유머로 승화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이 좋은 대처 방안인지 고민하는 것도 권력이 없는 자의 몫이다. 내가 상대의 혐오 발언에 대해 반발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나를 이상한 여자 취급할 뿐 변하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그 상황에서 발끈하는 이유는 ‘그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화를 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상대가 뼛속 깊숙이 반성을 해서 새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지도 않거니와, 내가 그런 선도자의 역할을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는 그런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다는 걸 상기시켜주고 싶다.
물론 모든 여성에게 일터에서 강경한 태도로 할 말을 다 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자신의 사회적 상황과 맥락이 있을 테니까. 다만 어떤 식으로든 여성 혐오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드러낸다면 좋겠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 사람들이 다 혐오 없는 선인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걸 드러내며 살지는 않도록.
--- p.48~49
여성 근속 연수 최장 기업에서도 마흔 넘은 여자가 흔치 않은데, 프리랜서의 세계로 오면 말해 무엇할까? 한 번은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내게 관내 문화예술 커뮤니티 조사원 추천을 부탁했다. 나는 그 지역에서 꽤 오래 활동한 사십 대 활동가를 추천했는데, 담당자의 반응이 시원하지 않았다.
“이 분야에서 일도 오래 하셨고, 지역 활동 경력도 있으셔서 딱인 것 같아요.”
“나이가 좀 있으시던데….”
“네, 경력도 충분하시고요.”
“경력이 너무 충분하신 것 같아요. 마지막 이력이 팀장님이시던데 이러면 저희가 일을 시키기가.”
나는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뱉었다.
“부담스러우세요?”
“좀 그렇죠. 어린 분은 없을까요?”
나이와 경력이 많은 게 거절의 이유가 되다니! 내가 일자리에서 거부당한 것처럼 마음이 쓰렸던 건, 솔직히 말해 추천인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의 모습이 내 미래기 때문일 거다. 서른이 넘은 내가 미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건 경력 쌓기뿐인데, 경력을 쌓아도 일을 얻을 수 없다면 지금의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인가? 자기만족? 자아실현?
나이가 많은 게 함께 일하기 부담스러운 조건이 되는 건 남자든 여자든 매한가지다. 그러나 남자 경력자와 일할 때 우리는 쉽게 그를 ‘형님’으로 모시거나 ‘선배님’으로 우대하는 것에 반해, 여자 경력자와 일할 때는 적당한 포지션을 찾지 못해 쭈뼛거린다. 그가 이름 들어본 어딘가에서 한자리하고 왔다면 또 모를까. 익명의 생계형 프리랜서는 심지어 ‘여사님’이나 ‘이모님’이 되기도 한다. (좋은 의도에서 나온 단어라는 게 슬플 뿐이다.) 한국에서 ‘여자’는 낮은 계급이지만 ‘연장자’는 높은 계급! 일터에서 ‘연장자’인 ‘여자’를 만난 우리는, 그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를 못 본 체한다. “부담스럽다”는 간단한 말로.
--- p.69~71
솔직히 말해 마흔이 넘고, 쉰이 넘고, 예순이 넘도록 계속 일하고 싶지만 그 나이까지 업계의 트렌드를 읽고 누구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체력과 에너지가 여위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프리랜서 새내기에게 좋은 일감을 양보하며 오래 일한 선배로서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고 싶다. 일이라는 작은 조각을 트렌디한 감각으로 멋들어지게 그리기보다, 그림이 그려지는 큰 판을 설계하고 싶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모두가 같은 운동장에 머물러 있다. 운동장에 새로 들어오는 프리랜서는 늘어나는데 운동장의 크기는 그대로고, 모두의 역할도 비슷하다. 사실 문제는 좁은 운동장인데, 싸우다 보면 서로를 원망하게 된다. ‘이제 좀 물러나지’와 ‘그렇게 가격을 후려치니까 다 같이 망하는 거 아니냐’가 맞붙는다.
곧 모두가 프리랜서가 된다고 예측하는 시대, 이제 이 운동장은 좁다며 문 닫고 싶지 않다. 막 프리랜서를 시작한 사람들이 노동권을 보호받으며 건강하게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고,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은 그만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혹은 그 세계의 프리랜서들에게 조언을 하거나, 계획을 짜거나,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맡았으면 좋겠다. 경력이 화려한 프리랜서 언니들을 으쌰으쌰 떠받들고 싶다.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이제 막 운동장에 도착한 프리랜서들에게도 힘이 되지 않을까?
--- p.72~73
내 일의 대가를 높이고, 나를 대체하기 어렵게 만들려면(대체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란 거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자신이 브랜드가 되는 일에 희망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가? ‘연반인’이나 인플루언서처럼 나 자신이 브랜드가 될 수도 있고, 나의 작업물이 나를 대신해서 브랜드로 살아남을 수도 있다. 『며느라기』를 그린 수신지 작가처럼 자신만의 그림체를 구축해서 어디다 그려도 ‘저건 수신지 작가님 그림이구나’라는 걸 느끼게 할 수도 있고, 하나의 키워드가 제작자들을 대표하게 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혹은 어떤 작업물이 대중에게 알려진 하나의 브랜드가 되면, 클라이언트와의 협상에서 조금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다. 단순 연차로는 보장받지 못했던 급여가, 브랜드가 쌓이면 조금 올라간다.
내 사례를 들어보자. 나의 프리랜서 생활의 기반은 ‘딴짓’이라는 콘셉트이다. 이 콘셉트가 구축된 출발점이 독립 잡지 『딴짓』이다. 내가 운영하는 딴짓 출판사는 『딴짓』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지만, 사실 책을 팔아 수익을 얻는 것은, 게다가 독립 잡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건 백 명 중 한 명도 채 되지 못한다. 사실 많은 독립 잡지 발행인들에게 자신의 책은 클라이언트를 향한 포트폴리오 기능을 한다. 『딴짓』을 보고 비슷한 책을 만들고 싶은 업체나 관공서들에게서 연락이 종종 온다. 서울시 청년청과 함께 아카이빙북을 만들고, 남양주시도시재생센터와 함께 지역 잡지를 만든다. 영월군을 홍보하는 책 『그렇게, 영월』도 『딴짓』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인상 깊게 본 담당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독립 잡지를 만들어 서점에 뿌리는 발행인들은, 자신의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들고 제작사들을 방문하던 1990년대 뮤지션을 닮았다.
--- p.200~201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다고 여겼던 프리랜서들도 ‘그것을 과연 전문 분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나의 쓸모는 무엇일까?’라는 질문 속에서 산다. 평생 드럼 치는 일을 하고 살았지만 그게 정말 ‘대체 불가능한 전문’ 분야였는지, 영상 찍는 일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그 기술 하나로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묻게 된다. 이런 질문은 단순히 프리랜서에게만 국한된 질문은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여행·관광업에서 일하던 직장인들 역시 이 세계에 안전지대는 없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 팬데믹에서 타격을 입었던 건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업계 종사자들이었지만, 다음 팬데믹의 모습은 어떨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위기에 빠졌을 때 살아남는 방법이 아니라, 누군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 사람을 보호할 수 있을 만한 시스템을 그 사회가 갖췄느냐다.
--- p.260~261
노동자도 변하고, 노동 환경도 변하고,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도 변하고 있는데 세상의 변화는 아직 더디다.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기존의 제도를 그대로 확대하는 것은 해답이 아닌지도 모른다. 정부가 현실을 따라가는 속도가 느릴 때는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프리랜서를 위한 제대로 된 법을 만들지 않는다면, 프리랜서의 권익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내 표는 당신에게 가지 않는다는 걸 정치인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리랜서들에게도 연대가 필요하다.
--- p.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