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이 책에서 노리는 이론적 목표는 따로 있다. 현대예술은 ‘숭고’와 ‘시뮐라크르’라는, 서로 대립하며 보족하는 두 개념으로만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 소개된 텍스트들의 독해는, 개별 사상가들의 미학 속에서 ‘숭고’ 미학과 ‘시뮐라크르’ 사상의 계기를 찾아내 드러내는 하나의 일관된 전략에 따른다.
(……) 현대예술에는 ‘숭고’의 무거움과, 그것을 파괴하는 시뮐라크르의 가벼움이 또한 존재한다. 숭고와 시뮐라크르는 현대인의 세계감정이 가진 야누스의 얼굴이다.--- pp.10-11 「2판 서문」
주체의 죽음. 그러나 이는 모든 주체의 죽음이 아니다. 자신을 “궁극적인 것”으로 여겼던 어느 독단적 주체의 죽음일 뿐이다. 이 낡은 주체의 무덤에서 이제 새로운 주체가 걸어 나와야 한다. 이성의 폭력성을 철회하고, 인간화를 거부하는 자연이라는 타자에 귀를 기울이고, 동일화의 강박을 벗고 개별자들의 존재를 존중하며, 말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써,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사회의 비합리성을 비판하는 탈근대적 주체. 타자가 아니라 자신을 지배하고, 그렇다고 자기 안의 자연을 억압하지 않고, 비동일성 속에서 동일성(정체성)을 유지하는 주체. 섣부른 희망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절망하지도 않고, 역사에 최종목적(텔로스)을 설정하지 않으나 저항을 포기하지도 않고, 불꽃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포착할 감수성을 지닌 현대적 의미의 예술적 주체…….--- p.12 「3장 아도르노-진리, 가상, 화해」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에서 ‘유사’는 곧 재현관계의 ‘확언’이었다. 이 원리를 깨뜨린 것이 바로 칸딘스키다. 그의 작품 속에서 형과 색은 바깥에 있는 가시적 대상을 닮을 의무에서 벗어난다. 형과 색은 아무것도 묘사하지 않고 화폭에서 자유롭게 유희한다. 이렇게 유사가 포기됨으로써 그림의 재현 작용은 중단된다. 그의 그림은 가시적 대상을 가리키지 않고, 그저 “붉은 형태” “삼각형들” 혹은 “오렌지색 보랏빛”으로 남는다. 그리하여 누군가 “이게 무엇이오?”라고 묻는다면, 그는 다만 그것은 “즉흥”이나 “구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칸딘스키는 “그 선들과 그 색채들을 더욱더 고집스럽게 확인함으로써 유사와 재현 관계를 동시에 지워 버린다.”--- pp.175-176 「5장 푸코-위계 없는 차이의 향연」
기관 없는 신체는 의미 작용을 포기한다. 분열자들의 말은 그 신체 속에 들어가 파열되어, 무의미한 음성이 되어 나온다. 이 역시 말 못하는 아기들 수준으로의 퇴행이 아니다. 여기서 ‘무의미’란 글자 그대로 ‘의미 없음’이 아니라, ‘모든 의미’, 즉 다다이스트들의 무의미 시(물체적 무의미)나 루이스 캐럴의 난센스 놀이(비물체적 무의미)처럼 새로운 의미가 무한히 생성되는 잠재성의 영역이다. 나아가 기관 없는 신체는 새로운 주체를 준비한다. 여러 개의 인격을 바꾸어 갖는 분열자처럼, 이 신체를 바탕으로 하나의 정체성에 함몰되지 않고 끝없이 제 존재를 다양화하는 유목적 주체가 형성된다.--- pp.219-220 「6장 들뢰즈-감각의 논리: 새로운 유물론 미학의 정초」
리오타르는 숭고 체험에 수반되는 그 “모순적 감정”을 기대하지 않은 사건을 기다리는 두려움과 미지의 것을 느끼는 데서 비롯되는 기쁨의 혼합감정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스피노자의 언어로 이 혼합감정의 효과가 사건성의 체험을 통해 존재를 ‘강화intensification’시키는 데에 있다고 강조한다. (……) 숭고는 사건이 수반하는 존재의 강화를 낳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더 이상 인식의 문제가 아닌 존재의 문제, 더 이상 관념론적 현상이 아닌 유물론적 사건이 된다.--- p.266 「7장 리오타르-형언할 수 없는 숭고함」
「기술복제시대」 논문에서 베냐민은, 배우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공허감에 관해 말하는 어느 비평가의 언급을 인용한다. “이러한 공허감이 생겨나는 까닭은 그의 육체가 자신에게서 떠나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순간적으로 사라지며, 또 그의 실체, 그의 삶, 그의 목소리, 그가 불러일으키는 소음 등도 자신에서 이탈되어 (……) 스크린에서 명멸하다가 다시 정적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느낌……. 한마디로 복제 앞에서 실재가 아예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베냐민은 ‘시뮐라시옹’ 속에서 ‘실재의 사라짐’을 얘기하는 보드리야르를 연상시킨다. 베냐민의 복제가 원작의 아우라를 파괴하는 데에 그친다면, 보드리야르의 시뮐라시옹은 그 아우라를 자신이 뒤집어쓴다.
--- p.281 「8장 스캔들이 말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