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방에서 만난 소년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묻는다. 울 아버지 못 보셨어요? 두번째 방의 청년은 왜 우리가 이곳에 있을까? 우린 왜 이곳에 있지? 그건 참 이상한 일이야, 하고 뜬금없이 중얼거린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치매 노인의 몸을 깨끗이 씻기고 노인의 흰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겨내리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날 수 있다. 욕실을 뽀얗게 채운 수증기. 백 살이나 먹은 노인은 관목처럼 마른 몸을 여인에게 맡기고서 고즈넉한 표정으로 여인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어쩌면 우리는 잠시 그 노랫소리에 취해 나른함에 빠질 수조차 있으리라.
최인호의 소설은 수많은 미로를 가진, 수많은 타인들의 방이다.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번차례로 찾아오는 희열과 전율에 몸을 떤다. 마치 귀신을 만나러 간 소년처럼.
--- 서하진(소설가)
작고 평범한 일들이 산산조각나고 재구성되며 마침내 그것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때, 그것들이 별안간 이야기의 빛나는 뼈대로 모아질 때 느끼는 희열과 감동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대단히 현대적이며 젊은 감각의, 조용하면서도 슬프고 정열적인 소설을 읽다가 나는 이 책이 어느 누구의 야심만만한 첫 소설집이구나! 싶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고자 책 맨 앞장을 펼쳐봤다. 그것은 최인호 선생이 이미 25년 전에 쓴 소설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옛 소설을 읽자마자 어릴 적 지붕 위로 던져버렸던 이빨이 생각났고 마치 지금은 있는 힘껏 두레박을 올려야 할 때이듯, 그것을 찾으러 지붕 위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자못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최인호, 그는 문장을 대패처럼 쓸 줄 아는 작가다.
--- 조경란(소설가)
이번 중단편 소설전집의 발간은 소위 최인호 문학의 정리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마지막 주자로서 스타트 라인에 서 있다. 헐떡이면서 달려오는 지친 내 모습을 나는 고개를 돌려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다. 그는 내게 조금이라도 빨리 배턴을 넘겨주려고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있다. 나는 이 순간 손을 뻗어 그 배턴을 마악 받으려고 하고 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결승점일 뿐, 0.01초를 단축하려는 기록도, 1등이라는 등수도 이젠 내게 상관이 없다. 결승점을 통과하여 테이프를 끊을 때까지 심장이 파열되어 찢어질 것 같은 치열함 속에서 달리는 것. 그 문학의 비등점을 향해 나는 다만 끓어오를 것이다. 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날아오를 것이다.
--- '작가의 말'중에서
『깊고 푸른 밤』이후 이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선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채로운 소설들이 긴 시간을 아우르며 섞여 있는 작품집 {달콤한 인생}을 읽다보면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대숲을 통과해 부는 바람 소리를 들었고 소리없이 밀려오는 검은 비구름을 보았다. 이윽고 후둑후둑 나무 잎사귀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요란스럽더니 지금은 온통 비 비린내와 흙 냄새뿐이다. 우산 하나를 받쳐들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산자락 어딘가에 발을 담그고 싶어졌는데 문득 시 구절이 떠올랐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이여. 나는 최인호 선생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좀 앞질러 태어나거나 선생이 좀 참았다 태어나서 같은 레이스를 뛸 수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한 젊은 작가가 어디 나 혼자뿐이겠는가. 하지만 선생은 여전히 같은 레이스를 달리고 있었다. 아주 저 멀리 선생의 등에서 팔락이는 번호표가 보이는 듯하다.
--- 하성란(소설가)